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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Nov 01. 2018

가을

만약 가을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예술가를 잃어버릴 거다.

가을은 사람의 감성이 이상할 정도로 깊어지는 계절이다. 쌀쌀한 가을바람은 몸을 움츠리게 만들면서도 가을을 맞아 오색으로 물드는 단풍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새빨갛거나 샛노랗게 물든 단풍을 구경하며 천천히 걷다 보면 추위도 잊은 채,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감상에 젖게 된다. 때때로 많은 문학가가 화려하게 물드는 단풍을 보며 시를 썼고, 많은 화가가 단풍으로 물든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고, 많은 연인이 단풍 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속삭였다. 모두가 가을이 사람의 감성을 자극한 탓이다. 단풍나무 아래에서 나는 스쳐 지나간 많은 시간을 떠올린다. 나는 이렇게 가을을 맞아 물들며 마지막 한 장 남은 잎이 떨어지기 전에 누군가에게 멋지거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많은 예술가가 가을에 깊은 사색에 빠진 이유는 겨울이 오기 전에 화려하게 물들며 떨어지는 단풍잎 탓일 거다. 떨어진 단풍잎은 낙엽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낙엽은 다시금 새 생명을 위한 영양분이 되어 다시 자신의 가장 화려할 때를 장식한 나무뿌리 속으로 들어간다. 어쩌면 단풍나무는 사람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대체 가장 화려할 때 인연을 맺어 연인이 되고, 연인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다시금 단풍나무를 올려다보는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사랑 또한 예술이다. 가을 단풍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읊조리는 많은 연인이 예술가다. 글을 잘 쓰지 못해도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예술가다. 나는 글을 쓴다고 말하지만,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해본 적이 없기에 예술가 실격일지도 모른다. 문득 상상해본다. 한눈에 끌린 이성이 있고, 그 이성을 단풍나무 아래로 불러 마음을 전하는 모습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망상이라 자다 몸부림칠 정도로 부끄럽다. 하지만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내가 지금까지 만난 많은 사람 중 누군가와 거리를 좁히고자, 살짝 마음이 흔들리며 눈길을 빼앗긴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가을은 참 희한하게도 평소에는 잊고 지낸 이러한 마음을 격하게 뒤흔든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단풍잎의 스치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사람은 저절로 한 명의 예술가가 된다. 만약 이 가을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을 많은 예술가를 잃어버릴 거다. 가을은 상실과 그리움의 계절이라 사람의 감성을 그 어떤 때보다 더 풍부하게 하는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하고, 나는 예술가의 계절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 이 가을, 나는 홀로 단풍 구경을 하며 '누군가 곁에 있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라며 눈을 감고 잠시 상상해본다.

나를 바라보며 함께 웃어주는 그 미소를, 색색이 물든 아름다운 단풍 같은 그 미소를, 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만나기 무서워했던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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