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인하여 생긴 많은 시간. 우선 그동안 미뤘던 그림을 그렸다. 한 달이 조금 지나자 갖고 있던 캔버스와 물감이 동이 났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며칠 사이. 마켓에서 우연히 눈에 띈 채소 모종을 만난 이후 식물에 마음이 쏠리기 시작했다. 식물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닌데도 이상하게 내가 만지면 시들어 죽는 일이 많다. 이런 나에게 친정엄마는 똥 손이라 놀리곤 했다. 우선 쉽다는 채소 모종을 시작으로 작은 사이즈의 식물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키우는 법을 배우고 삽목(꺾꽂이)하면서 가지 수를 늘리면 될 거라는 기대와 포부는 자주 물거품이 되었다.
식물마다 삽목 방법이 다른 것도 있지만 예상대로 식물이 내 손을 타는지 잘 죽는다. 식물의 곁가지 몇 개를 따서 물에 담그는데 이것을 삽수(물꽂이)라 한다. 2주에서 한 달이 지나면 대부분 뿌리가 나온다. 그때 화분에 옮겨 심으면 되는데 아직 성공률이 20% 안팎이다. 그나마 라벤더는 뿌리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수국과 키우기 쉽다는 다육식물조차 삽목 결과가 좋지 않다. 과한 습도로 죽거나, 빛 조절의 실패 또는 잦은 분 갈이가 원인이 아닐까 예상만 할 뿐 진짜 이유는 잘 모른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일지를 써서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몇 주 그들의 특징과 성장을 기록하다 보니 호기심에서 시작했던 처음과 달리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어느 사이 그들은 보통의 식물에서 반려 식물로 변했다.
식물 일지를 매일 쓰고 읽다 보니 33년 전 썼던 첫아이의 병상일지의 내용과 비슷한 점이 있다. 첫 아이는 생후 6개월쯤 뇌막염으로 한 달 넘게 병원 생활을 했다.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던 시간은 무섭고 길었다. 그때 벽에 걸려있는 십자가에 무릎 꿇고 기도했다. 아이를 살려 주시면 열심히 살겠으니 살려달라 애원했다. 그 병상일지엔 아이가 병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적혀있다. 대변의 상태에 따라 아이의 반응과 간호사의 처방들. 숨이 고르지 못할 때마다 울리는 기계음의 소리.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만 나타나면 목이 터지라 울 때면 내가 더 크게 울던 기록. 온몸의 주사 멍 자국. 다행히도 아이는 일 년이라는 주의 기간을 받고 퇴원했다. 나는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핸드백 속의 여권을 서랍장 속에 넣었다. 향수병이 심했던 그때 기회가 되면 한국에 가려고 여권을 매일 갖고 다녔었다. 일 년이라는 주의 기간에 나는 초보 엄마에서 벗어났고 아이도 그 기간을 잘 넘겼다. 식물 일지를 쓴 지 몇 주 된 것을 보고 있으면 식물에게도 지금 나는 초보 엄마다. 식물을 키우는 솜씨도 없으면서 보기 좋다고 사들인 것이나. 예쁜 화분에 넣고 물만 잘 주면 된다는 의욕과 미래의 풍요로운 정원만 생각한 것들만 봐도 그렇다.
지금은 아이들의 안색에서, 목소리의 톤이나 웃음의 깊이를 통해서도 그들의 고민을 대충 알 수 있는 중견 엄마다. 아이가 퇴원해서 1년이라는 주의 기간이 있듯, 나도 식물을 알아가는 주의 기간을 일 년으로 정했다. 이 기간을 잘 넘기면 식물에게도 나는 중견 엄마가 될 것 같다. 그때는 식물의 겉모습만으로도 상태를 알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좋겠다. 잎이 시들면 마음이 아프고, 잘 자라는 모습일 때는 기쁘다. 10년째 기르고 있는 고양이처럼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렇게 그들은 나의 반려 식물이 되어 생동감을 주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낡은 노트 속의 일지를 읽다 보면 아이도 그렇지만 나의 성장기도 녹아있어 애틋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먼 훗날, 식물 일지 속에도 나의 성장기가 닮길 것이기에 오늘의 내 삶에 책임감이 더 든다. 소홀히 할 수 없는 하루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