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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Aug 13. 2021

그림 같은 육아를 위한 엄마의 그림책 공부

달서 책사랑주부수필공모전 지원

    

아이의 낮잠시간이 다가온다. 이 때다 싶어서 아이를 유모차에 눕혀 길을 나선다. 집 앞 10분 거리의 도서관은 유모차에서 아이가 잠들기 딱 좋은 시간이다. 이제 갓 백일이 넘어 새근새근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잠들어있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이리저리 책을 둘러본다. 손가락으로 진열된 책의 제목을 건너보며 책을 골라본다. 어떤 책을 고르는지를 보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 담겨 있기도 하다. 아직 백일이 갓 지났지만 아이가 생각보다 작고 예쁜 만큼, 곧 복직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심란한 마음에 ‘워킹맘’이 들어간 제목에서는 손가락이 다 멈추고 있었다. 


 그중 ‘워킹맘 홈스쿨, 하루 15분의 행복’이라는 책을 뽑아 들었다. 이 책에서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은 워킹맘으로서 단 15분이라도 책을 같이 읽어주고 아이와 홈스쿨을 하면서 양보다 질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방법과 의미가 담겨있었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다른 책임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책을 함께 읽으면서 키우는 ‘책 육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복직 후 아이와의 밀도 있는 관계의 시간을 위해서 아이와 함께 이야기할 그림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꿈꾸는 그림 같은 육아     

“엄마, 우리 이 책 같이 읽자” 


쪼르르 자기 손보다 큰 책을 가지고 와서, 나의 다리 위에 앉아 폭 안긴다. 아이의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나의 턱 밑을 간지럽힌다. 정수리부터 신나 있는 모습이 느껴지며, 그 모습에 흐뭇해하며 아이의 머리를 가만히 보고 있다. 한참을 지나도 엄마가 책을 읽어주지 않자, 까만 눈동자로 뒤를 바라보며 왜 시작하지 않을까라는 눈빛을 보낸다. 그 모습을 귀여워하며 그림책의 표지에 똑똑 손 노크를 해본다.

 

 매일 아이와 출근 전과 퇴근 후 10분에서 30분까지 이렇게 같이 책 읽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와 책 육아를 생각하며 꿈꾸었던 장면은 바로 이 함께 책을 읽고 교감하는 그림 같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렇게 그림 같은 순간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비버도 아닌데 책 귀퉁이를 잘근잘근 씹어보기도 하고, 책을 가지고 오고 다시 꼽아놓기만 반복하고 놀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우리 아이는 책을 읽는 게 별로 재미있지 않은 걸까 라고 고민되기 시작했다. 유대인의 독서교육 이야기와 관련된 독서지도 책을 보며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책에 꿀을 발라놓기도 한다는 말에 놀랐다. 책이 처음부터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고 달콤한 것이라는 인식을 주는 것부터라는 점에서 ‘우리 아이는 책을 안 좋아해’라고 단정 지으려 했던 나를 반성했다. 그리고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나도 글씨만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애들 책인데 뭐’라는 마음으로 책을 아이와 읽어주면서 내가 처음 보았다는 것이었다. 나도 처음 본 책을 처음 읽어주니 아이가 흥미 있어할 만한 부분이 없었던 것이다. 그 뒤부터는  아이에게 보여줄 책을 내가 먼저 다 읽은 책부터 보여주기 시작했다.


 중고로 산 책은 알코올 솜으로 책 등과 책 속을 닦으면서 내용을 확인하고, 그림책 전문가들의 추천도서 책들을 도서관에서 찾아서 아이에게 읽어주기 전에 내가 먼저 읽었다. 아이가 요즘 나비를 좋아한다면, 나비가 있는 책 위주로 빌렸고 책 순서에 상관없이 나비가 나오는 장면부터 보여주려고 표시를 해두었다. 빨간색에 손이 많이 가고 있다면 빨간색 색채가 강렬한 그림책을 찾았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 생기면 그 책의 작가를 찾아보고 그 작가의 책으로 빌려왔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관심을 기록하는 ‘아이 관심지도’를 매 월마다 기록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책 육아 일기장이 되었다. 아이는 버스만 좋아했던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숫자에 빠져 있기도 했다. 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는 기쁨을 아이와 같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이렇게 노하우가 늘어나면서 아이도 엄마와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읽는 책이니까 라는 선입견으로 접했던 그림책이었는데,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도 아이가 읽는 그림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야기로도 의미가 있으면서, 그림에도 많은 부분이 담겨있다는 것을 많은 그림책을 만나고, 작가를 공부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왜 그림책의 한 페이지에 그렇게도 오랜 시간 이야기할 수 있는지, 책의 겉면으로만 생각했던 면지에 책의 예고와 결말이 숨겨져 있는지, 수상작 책은 그림 부분의 수상과 이야기 부분의 수상이 어떻게 다르게 있는지와 같은 것들을 알게 되면서 더욱 그림책의 깊이에 감동했다. 그림과 이야기가 종합된 종합 예술품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는 것을 발견한 보물 같은 순간이었다.      


그림 같은 육아를 꿈꾸며 시작한 엄마의 그림책 공부     


‘만족스럽다는 건, 

너랑 나랑 둘이서 쿠키 하나씩을 들고 계단에 앉아만 있어도 좋은 거야’

                                                                                          - <쿠키 한 입의 인생수업>의 글 중 -     

“엄마, 우리 이 쿠키 반으로 나눠서 먹자.”  <쿠키 한입의 인생수업>이라는 그림책을 보고 나서 아이는 쿠키가 보일 때마다, 나와 나눠먹는다. 그림책에 빠져들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된 순간이다.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전달해 주고 싶은 세상의 지혜를 아이의 순수한 생각으로 연결하는 힘. 그런 힘이 그림책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림책을 엄마와 아이가 함께 읽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내가 꿈꾸는 그림 같은 육아의 장면이다. 아이의 순수한 생각과 엄마가 세상을 전해주는 말들이 섞여있는 일상의 그림 같은 순간을 말이다. 그 순간이 아이와 그림책을 같이 읽으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림 같은 육아로 느껴졌다. 

 

 그렇게 그림책에 점점 더 빠져들게 되며 그림책을 좋아하는 엄마들이 서로 그림책을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같이 읽는 그림책들이 많아지면서 그림책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어 졌다. 아이와 그림책을 같이 읽다가 그림책에 빠진 엄마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언제나 우린 다시 만나’를 아이에게 읽어주다가 폭풍같이 울었다는 복직을 앞둔 엄마, ‘언제나 널 사랑해’를 읽으며 엄마가 아이였을 때와 아이가 자랐을 때의 엄마로서의 내가 그려지며 감동했다는 엄마, ‘고구 마구 마’를 읽으며 아이가 간지럽게 매번 페이지마다 웃어서 그림책을 더 찾게 되었다는 엄마. 각자의 사연들은 달랐지만 모두 같이 그림 같은 육아를 꿈꾸는 것은 같았다. 이렇게 그림책이 좋아서 하는 엄마들끼리의 그림책 공부가 시작되었다. 그림책 작가의 강연을 같이 가기도 하고, 유명 그림책 저자들의 작품과 저자가 담은 책의 의미 등을 같이 공부해갔다. 그러면서 ‘워킹맘에게 선물하고 싶은 그림책‘ ’ 아이의 감정을 엿볼 수 있는 그림책‘ ’ 할머니가 그리운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은 그림책‘ 등 주제별로 그림책도 골라보고, 그렇게 고른 책들이 도서관에 큐레이션 전시되는 영광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그중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중고서점에서의 그림책 쇼핑이었다. 중고로 들어온 책들은 또 그만의 매력이 있었다. 요즘 책과 옛날 책이 뒤섞여 있지만, 마치 보물 찾기처럼 우리가 공부한 작가의 책이 나오면 흥분해서 같이 읽어보며 작가의 일생을 공부했던 부분을 되뇌기도 하고, 구하기 힘들었던 절판된 책을 발견한 날은 정말 보물을 찾은 날이기에 그 사람이 점심을 사기도 했다. 그림책에 그림을 따라 그려보기도 하고, 그림책을 공부할 수 있는 자격증 공부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하려고 읽기 시작했던 그림책이었지만, 점점 더 그림책에 빠져 들어갔다. 

 

 그림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재미있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럴 때는 오히려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더 놀라운 것이 많기에 그림책에 빠졌다고 답한다. 그림책 작가들의 경력과 이력들은 다양하다. 네덜란드 출신의 그림책 거장 레오 리오니 작가가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한 나이는 50살이었다. 어린 손주들과의 기차여행에서 지루해하는 손주들을 위해서 잡지를 찢어서 노란 동그라미와 파란 동그라미가 주인공인 이야기로 만든 작품이 ‘파랑이와 노랑이’라는 유명한 작품이다. 이미 레오 리오니는 세계적인 화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였고, ‘포츈’지에 아트 디렉터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던 때가 바로 그 50세의 나이였을 때였다. <쿠키 한입의 인생수업>의 저자는 ‘뉴욕타임스’등 여러 잡지에 육아와 결혼생활에 대한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이기도, 시카고 공영방송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작가이기도 했다. 


 이처럼 그림책 작가들의 이력이 다양한 만큼 그림책은 어른이 되어서 아이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방법도 다양했기 때문에 어른으로서 내가 그림책에 감화되는 부분이 더 많았다. 협동과 인내라는 인성 교육의 틀에서는 고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쿠키 하나로 아이의 시선으로 쉽게 설명하는 법은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에게는 그 어떤 육아서보다 아이를 대하는 방법과 애정을 배울 수 있는 게 그림책이었다. 엄마로서 아이가 마주할 세상을 한쪽만 보지 않도록, 그래서 어떤 면의 세상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를 지켜갈 수 있는 자기 다운 힘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힘을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힘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내가 그림책에서 배운 아이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리의 그림 같은 순간을 담은 그림책을 꿈꾸며     

 유모차에 누워서 도서관에서 낮잠을 자던 아이는 벌써 6살이 되어 이런 말들을 함께 나누고 있다. 6살이 되며, 아이와 그림책을 읽는 시간은 또 달랐다. 그림책의 작가와 의도를 아무리 알아도, 아이가 그림책을 온전히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만큼은 이기지 못했다. 아이의 시선으로 온전히 이해하는 그림책은 같은 그림책이라도 또 다르게 보였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읽고 아이가 한 말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이와 많이 읽은 책을 쌓기보다, 한 권의 책이라도 우리 둘이서 온전히 읽고 받아들였을 때 나오는 아이의 말들을 기록했다. 아이와 하루 한 권 그림책 수다를 그림책 한편에 포스트잇으로 적어두기 시작했다.    

 

“엄마 크리스마스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산타할아버지는 코로나 안 걸렸겠지?”

“엄마, 이 쿵쿵 소리는 16층에서도 호랑이가 돌아다니는 거 아닐까?”

“아이스크림은 무지개로도 만들어, 우리가 어제 무지개 아이스크림을 먹었잖아!”     


아이와 읽는 그림책이 늘어갈수록 아이가 남기는 어록도 늘어났다. 그리고 같은 그림책을 읽어도 아이가 한 말은 매번 달랐다. 그림책에는 여러 장면이 있기에 그때 아이의 기분과 흥미에 따라 아이에게 유독 남는 장면이 있는 것이다. 포스트잇이 더 많이 붙어있는 그림책은 그만큼 아이가 좋아해서 많이 읽었던 그림책이라는 표시가 되었다. 이제 글씨를 읽고 쓸 줄 알게 되면서, 아이가 포스트잇에 같이 자기의 말들을 남기기 시작했다. 삐뚤빼뚤 왼쪽 오른쪽이 안 맞는 글씨라도 뭔가 쓰려고 꼬물 락 거리는 손가락이 귀엽다.  

   

 “엄마, 이리 와봐 이건 내가 만든 책이야, 이걸 읽어줘”    

 

어느 날, 아이가 흰색 도화지에 알 수 없는 상형문자가 가득한 종이를 가지고 왔다. 4번 반씩 접어서 제법 아코디언 접기처럼 책처럼 만들어왔다. 자기가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하는 아이의 모습에 놀랐다.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이렇게 기억해준다는 것이 고맙고 기특했다. 그렇게 아이의 첫 번째 그림책은 거실 한 벽에 전시해두었다. 집에 놀러 온 친구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시면 의례 전시회처럼 거실의 벽으로 안내되어 아이의 그림책 설명을 듣는 것이 의례가 되었다. 그렇게 아이는 두 번째, 세 번째 그림책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엄마, 이 달이 보여? 이 달은 보름달 사이 달이야.

보름달이 아직 조금 모자라서 보름달이 되기 전이 바로 보름달 사이 달이야 “


“엄마가 보고 싶을 때는 배꼽을 봐. 배꼽이 있지? 배꼽이 있다는 건 엄마와 재현이가 연결되어 있다는 거야. 배꼽이 바로 엄마 호출 버튼이야.”     


 그러면서 나도 아이의 말들을 기록하면서 아이의 6살을 담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하는 말들이 모두 그림 같은 순간들이기에 이 순간을 담고 싶었다. 아이가 흰 도화지에 4번 접어서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쓰면서 만든 그림책처럼,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흰 종이에 담아 보고 싶어 졌다. 아이가 유치원에 간 시간, 지금은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엄마로 글을 쓰고 있다. 직장인이지만 그림을 취미로 하는 사촌동생과 함께 ‘이모가 그리고 엄마가 들려주는 너를 위한 이야기’들을 만들고 있다. 배꼽에서 자란 포도씨를 먹은 여우 이야기, 단풍잎 이불 이야기, 붉은 노을 이야기 등 아이가 몇 살이 되었을 때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자라는 만큼 한 뼘씩 써내려 나가고 있다. 그림 같은 육아를 꿈꾸며 시작한 그림책 읽기가, 지금은 우리의 그림 같은 순간을 담는 그림책으로 완성될 수 있는 날을 꿈 꾸게 했다. 그림책을 통해 아이의 꿈을 응원하며 함께 꿈꾸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와 내가 만들어가는 그림 같은 육아의 순간에 그림책이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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