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회복시키는 루틴의 힘

‘쉼’이 아닌 ‘느림’을 배우는 과정에서 찾아낸 자기회복의 기록

by 하룰

나를 회복시키는 루틴의 힘

‘쉼’이 아닌 ‘느림’을 배우는 과정에서 찾아낸 자기회복의 기록


예전의 나는 늘 빨랐다.
사람을 만나도, 업무를 처리해도, 감정을 다뤄도
끊임없이 속도를 올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해왔다.


위기 가구 방문, 전화 상담, 보고서 작성, 회의…
하루의 업무는 끊임없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나는 그 파도에 떠밀리지 않기 위해
늘 한 박자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속도를 조금만 늦추면 뒤처질 것 같고
잠시 멈추면 무너지기라도 할 것 같은
이상한 불안이 내 안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쉼’을 시도했지만
휴식은 잠깐의 공백일 뿐
다시 속도에 휘둘리는 삶으로 돌아갔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필요한 건 ‘쉼’이 아니라 ‘느림’이었다는 것을.


1. 느림은 멈춤이 아니라 ‘나에게 돌아오는 속도’였다

휴직 후 어느 날
아무 일정도 없는 아침을 맞았다.
알람 없이 눈을 뜨고
천천히 일어나
뜨거운 물을 끓여 커피를 내렸다.


평소 같았으면 3분 만에 해치웠을 일을
그날은 10분 동안 천천히 했다.

그 작은 ‘느림’이
몸 안에서 낯선 따뜻함을 만들어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지쳐 있었던 건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충분히 머물 시간이 없어서였다는 걸.


2. 루틴은 의무가 아니라 ‘나를 되돌리는 길’이었다

회복의 시작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루틴들이었다.


나는 몇 가지를 만들었다.


-아침 10분 산책
목적 없이 걷기. 생각을 정리하지도, 해결하지도 않는 시간.
단지 바람을 듣는 시간.


-감정 문장 한 줄 기록
“불안했다.”
“은근히 웃긴 하루였다.”
“조용히 울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루의 감정에 이름 붙여주기.


-저녁 30분 정리 루틴
집안을 치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


이 루틴들은 규율이 아니라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한 작은 마중물 같은 것이다.


느림 속에서 나는
내 감정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내 몸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내 마음이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3. 느림을 배우자 일상이 나를 살리기 시작했다

느림을 배우기 전
나는 늘 타인의 시간을 먼저 챙겼다.
위기 가구의 일정, 회의 시간, 동료의 요청
상대의 상태에 맞추는 게 당연했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느림을 연습하니
내 시간을 먼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잠시 멈추자.”

“이건 천천히 해도 괜찮다.”

“내 감정이 따라올 시간을 기다려보자.”

누구에게도 허락받지 않아도 되는 속도
그 속도가 내 안에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느리게 밥을 먹고
느리게 길을 걷고
느리게 대답하고
느리게 살아보니
내 마음이 비로소 나를 따라왔다.


이전에는
마음은 뒤에서 헉헉대는데
나는 앞에서 계속 뛰어가고 있었다.


느림은
그동안 뒤처져 있던 마음을
나와 다시 나란히 걷게 만든 과정이었다.


4. 다시 일로 돌아갈 때 나는 더는 예전의 속도로 살지 않을 것이다

이 느림의 루틴은
내가 일에서 도망친 시간이 아니라
다시 일로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회복의 과정이었다.


앞으로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더라도
예전처럼 스스로를 쥐어짜며 일하지 않으려 한다.


느린 속도는 게으름이 아니었다.
오히려
스스로를 잃지 않고 오래 일하기 위한 가장 현명한 방식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회복은 ‘시간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느림 위에 쌓인 작은 루틴들이
내 삶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빠르지 않게


그러나 나답게 살아간다.


느림은 나를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다시 돌아오게 한 힘이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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