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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Jul 09. 2021

선물은 역사를 싣고

[글모사9기] 선물-도구이상의 가치로움

해마다 크리스마스, 생일 등 각종 기념일이 다가오면 아이에게 물어본다. 

"이번 기념일에 어떤 선물을 받고 싶어?"

"음.. 글쎄. 잘 생각이 안 나."

"생각이 안 난다고?"

간절함이 생기기도 전에 너무 쉽게 가질 수 있어서일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하고 처음으로 내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이 너무도 생생해서 감히 버릴 수 있는 그런 물건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원하는 것이 있다 해도 잠깐의 유행에 따라 가볍게 선택할 수 있는, 그러다가 쉽게 버리기도 하는 그런 선물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아이의 시시한 반응을 보니, 

생생한 기쁨으로 버릴 수 없었던 선물들

내게 주었던 소중한 선물들 

나의 선물 상자를 들춰보고 싶어 졌다.  



나의 어린 시절은 수많은 장난감과 함께 보냈지만 그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한 것은 소꿉놀이 도구와 미미의 집이었다. 엄마가 사준 소꿉놀이 도구와 외삼촌이 사준 미미의 집 선물세트가 나의 어린 시절 놀이의 주 무기였다. 두 가지만 있으면 온갖 환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었다. 놀이 방법은 꽤 간단했다. 친구들과 놀이터 흙바닥에 둘러앉아 소꿉놀이 도구를 쏟아낸 뒤 세트별로 분류해 늘어놓는다. 흙으로 만든 주방 공간에 나름대로 진열된 그릇, 컵, 포크, 커피 잔을 감상한 뒤, 손님과 식당 주인이 정해지면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식들은 흙으로 만들 수 있었다. 어쩌다 식당 주인이 서로 하고 싶은 날에는 동업을 하는 설정으로 변경했고, 손님은 미미가 맡는다.  그러다 늦은 밤 다시 상자에 담으면 놀이는 끝이 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꼬질꼬질하게 색이 바랜 그 선물들은 나에게 도구 이상의 가치가 담긴 첫 번째 선물이었다.


교복을 입게 된 후로는 또 다른 선물을 수집했다. 중학교 2~3학년 무렵 나와 친구들은 HOT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때 당시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강타 부인, 우혁 부인, 희준 부인.. 이런 식으로 아이돌 그룹에서 좋아하는 멤버 이름과 함께 부인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유행이었다. (내가 누구 부인이었는지는 비밀에 부치고 싶다. 지금은 다른 남자의 진짜 부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그중에서 우혁 부인은 같은 앨범을 몇 개씩이나 소장했고, 자신이 소장한 것을 주변에 선물로 나눠주며 자발적 마케팅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받고 싶은 선물을 말해보라고 하면 항상 아이돌이 들어가 있는 각종 잡지를 말했고, 잡지를 사면 따라오는 브로마이드를 집 곳곳에 붙여두었다. 아 맞다. CD플레이어와 앨범도 선물 받았지. 앨범에 들어있었던 노래는 아직도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귀에 몫이 박히도록 듣고 또 들었다. 열정적으로 덕질했던 아이돌 그룹과 관련된 용품들은(앨범, 잡지, 브로마이드) 10대의 나에게 도구 이상의 가치가 담긴 두 번째 선물이었다. 


20대로 접어들며 나는 스스로에게 선물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스무 살 딸의 방을 청소하는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이대로 가다간 옷에 깔려 죽을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도 이런 예언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엄마는 때때로 그 말을 던지곤 했다. 대학가 앞에서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다가, 밥을 먹다가, 길을 걷다가도 내 눈엔 옷만 보였다. 이 옷도 예쁘고, 저 옷도 예쁘고 핏이 좋은 옷만 보면 참지 못하고 다 사제 꼈다. 용돈을 받으면 옷을 샀고, 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도 옷을 샀다. 지금 생각하면 패션계통과는 아무 상관도 없었는데 왜 그리도 옷에 집착을 했는지 모르겠다. 옷은 그렇게 20대의 나에게 도구 이상의 가치가 담긴 세 번째 선물이었다. 


결혼을 하고 30대로 접어들자 나는 또 다른 선물에 열광하기 시작했는데, 엄마의 말을 남편이 이어받아서 그대로 한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다 책에 깔려 죽겠다."라고 말이다. 처음에는 그림책, 동화책 위주로 선물상자를 채우다가 어느 정도 섭렵하고 나서는 에세이, 인문학, 자기 계발 등 장르를 불문하고 조금이라도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지갑이 술술 열렸다. 일 핑계로, 취미 핑계로 각종 책을 수집하다 보니, 어느새 책장이 거실까지 진출했고 아이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책장은 점점 더 커졌다. 엄마가 책으로 도배를 하든지 말든지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책장을 채운 건 내 욕심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에 열광했던 열정만큼이나 열심히 보았으면 좋았겠건만, 아무래도 인테리어 소품으로 책을 활용한 것 같다. 그렇게 30대의 나에게 도구 이상의 가치가 담긴 네 번째 선물은 책이었다.  


이제 곧 40대로 접어들 지금의 나는 어떤 선물에 꽂혀있을까? 요즘 나는 예쁜 쓰레기를 선물로 만들어서 주변에 뿌리고 다닌다. 예쁜 쓰레기란 예뻐서 갖고 싶은 매력적인 물건이지만 생각보다 쓸모는 없는 그런 물건들을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예쁜 쓰레기를 직접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손으로 그린 그림을 일러스트 파일로 변환시켜 각종 물건을 생산해내는 것! 굿즈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그 종류로는 2021년 달력, 수첩, 책갈피, 액자, 머그컵들이다. 그려놓은 그림들로 예쁜 쓰레기를 만드는 재미는 쏠쏠했다. 쓰레기라는 표현을 하긴 했지만, 나름 쓸모 있는 종류로 생산했고 그것을 주변에 선물했을 때의 반응은 나에게도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동을 주고받는 예쁜 쓰레기 선물은 도구로서의 가치를 월등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참 다양한 선물들로 인생을 장식하며 살았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꼬질꼬질하게, 색이 바랠 정도로 가지고 놀았던 소꿉놀이 도구와 미미의 집

열정적으로 덕질했던 아이돌 그룹과 관련된 다양한 용품들

스스로에게 선물공세를 퍼붓던 다양한 핏의 옷들

지식을 채우는 데는 실패했지만, 인테리어 소품으로써 활용 가능했던 다양한 책들

나름 쓸모 있게 매력적인 예쁜 쓰레기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했고

내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이 너무도 생생해서 

감히 버릴 수 없었지만

긴 세월을 거치며

지금은 일부 버려지고 없는 것들

내 마음속 선물상자에 꼭꼭 숨겨두었던 선물들을 

하나 둘 들춰보며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시절 

내게는 더없이 소중했던 선물에는

나의 역사가 들어있었다


선물은 한 사람의 역사다

그리고 역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업데이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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