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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Feb 16. 2021

나를 들었다 놨다 해

아들과 일상 에피소드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냥 넘기기 아까운 일상 에피소드가 있어서, 먼지처럼 날아가버리기 전에 급하게 글을 쓰게 되었다. 향기로운 일상생활에 일기 쓰듯 적어보려 한다.


숙제를 하는 아들의 방에서 노랫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트로트다. 요즘 눈만 뜨면 트로트를 불러댄다. 집안에서 소음공해가 엄청나다. 그래도 뭐 즐거운 마음으로 숙제하나 보군 싶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별나다. 숙제를 하다가 열 번도 넘게 자리를 뜬다. 물도 마셨다가, 화장실도 갔다가, 전화기도 만졌다가, 급기야 냉장고 문도 었다.


# 아들과 일상 에피소드 1. 아들의 잔소리

"엄마 큰일 났어. 전쟁 났다 전쟁!"

"무슨 소리야?"

"우리 집 냉동고가 전쟁터 같아! 떡이 폭발할 것 같아."

"(유통기한 지난 레몬 소스를 보여주며) 이건 음료수 같아서 마실 뻔했는데 기간이 끝났어. 냄새도 이상해"

시어머니가 따로 없네. 잔소리 아닌 잔소리 같은 아들의 이야기에 괜히 뜨끔했다.

아들아. 그건 말이다. 명절 끝에 꾸깃꾸깃 넣어서 그렇단다. 소스는 버리자꾸나.


다시 들어가서 숙제를 하나 싶었는데 또 말을 건다.



# 아들과 일상 에피소드 2. 사탕을 부르는 얼굴이란?

"엄마, 오늘 학원 가면서 00(아들의 절친) 사촌동생을 봤는데 너무 착하더라. 지난번에 엄마가 준 용돈으로 편의점에 잠깐 들러서 사탕 하나 사줬어. 왠지 사탕을 사줘야 되는 얼굴이라서..."

그래 잘했다. 마음이 착하다는 거니 얼굴이 착하다는 거니?

궁금하구나. 사탕을 부르는 얼굴은 어떤 얼굴인지... ㅎㅎ


그렇게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이야기를 던지고 아들은 또다시 숙제를 한다. 그 숙제는 오늘 안에 끝나는 건지... 잠시 뒤 또 부른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원래 이 정도로 산만하지는 않다.)



# 아들과 일상 에피소트 3. 눈 호강

"엄마, 잠깐만 일루 와봐."

"왜?"

"잠깐이면 돼."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어금니 꽉 깨물며)

"왜애!!!  빨리 숙제 좀 하지? 다하고 불러"  

"엄마, 빨리~~~~~"

(아우 정말. 오늘 뭘 잘못 먹었나? 씩씩거리며 아들 방으로 들어가 보니)


지우개로 만든 너의 사랑!

부글부글 끓었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스며든다.




너란 녀석은 정말이지 미워할 수가 없구나.

엄마는 지금 보석 같은 너의 말과 행동들을

향기로운 일상 속에 저장하는 중.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어른이 되면 꺼내어줄게.

너의 예쁜 마음과 재미있는 말들과

어린 시절 너의 모습들을

이제부터 엄마가 모두 저장해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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