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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konohime Apr 27. 2020

14. 아빠, 사랑해요.

아빠와의 여행

2015년 싱가포르


2012년에 싱가포르에 온 후, 그동안 한번 다녀 가라고 여러 번 청했었지만, 엄마 아빠는 이것저것 핑계를 대면서 안 오겠다고 했었다. 엄마는 불면증 탓을 했지만, 자식이 당신들 때문에 돈을 쓰게 될 것을 염려하는 마음과 해외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거라는 걸 안다. 조만간 엄마의 칠순이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이를 기회 삼아 그냥 엄마 아빠의 항공권을 예약해 버렸다. 11월에 한국에 잠깐 다니러 갔다 오면서 탈 비행기를, 엄마 아빠가 같이 타고 올 수 있도록 예약을 진행했다. 입국 신고서 작성이나 입국 심사를 도울 수 있고, 엄마 아빠가 외국 공항에서 헤맬 걱정이 없으니 나도 안심이 많이 되었다.


“이 나라는 일 년 내내 덥다더니 진짜 덥구나.”

엄마 아빠가 싱가포르에 계셨던 11월 말에서 12월 초는, 싱가포르의 우기에 해당되어 하루에 한 차례씩 소나기와 같은 비가 내리기 때문에 그나마 시원한 시기였다. 언젠가 싱가포르 동료가 싱가포르에도 4계절이 있다고 했다. Warm, Warmer, Hot, Hotter의 4 계절인데, 이 시기는 Warm 시즌에 해당되었다. 내 주관적인 경험상 이런 날씨는 음력설 연휴까지 이어지다가 설 연휴가 끝나면 신기하게도 바로 Warmer 시즌으로 바뀐다. 4월과 5월이 덥고, 6월과 7월에 정점에 달하다가 8월이 되면 한국보다 오히려 견딜만한 날씨가 되고는 했다. 


다음 날부터 엄마 아빠를 모시고 싱가포르 이곳저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싱가포르에 온 이후 거의 집과 회사만을 왔다 갔다 하는 아주 건전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는 곳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여행 첫날, 회사 건물이 있는 부기스(Bugis)로 갔다. 부기스에는 요즘 한국 TV에 소개되면서 핫플레이스가 된, 벽화가 화려한 하지레인(Haji Lane)이라는 골목길이 있고, 이슬람 모스크가 있어서 그런지, 중동 스타일의 음식과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도 많아서, 한국과는 많이 다른 느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회사 동료들과 자주 갔던, 나름 싱가포르의 로컬 맛집인 프론 누들(Prawn Noodle) 가게로 갔는데, 아쉽게도 엄마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점심 식사 후 회사에서 가까운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에 갔다. 당시 개장한 지 3년 정도 된 실내 식물원이었는데, 플라워 돔(Flower Dome)과 포레스트 돔(Forest Dome)이 메인이었고, 주변에 슈퍼 트리(Super Tree)들이 멋지게 조성되어 있는 싱가포르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다. 플라워 돔에서는 한국에서 본 적이 있는 아는 식물들이 보일 때마다 엄마 아빠는 반가워했고, 본 적이 없는 식물들에 대해서는 신기해했다. 기본적으로 두 분 모두 시골 출신이고, 평소 화초 가꾸는 것을 즐겨하셨기 때문에 식물원 구경을 즐기셨던 것 같다. 나는 사실 플라워 돔보다는 포레스트 돔을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포레스트 돔은 한국에서 봤던 식물원들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연 아빠도 포레스트 돔을 좋아하셨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냐고 신기해하면서, 사진도 찍어 달라고 하셨다. 식물원 구경 후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들이 힘드실 테니 하루에 한 가지만 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내가 지금 후회하는 것은 택시를 이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 아빠가 싱가포르에서 현지인 체험을 해보기를 원하는 마음도 있어서 싱가포르 교통 카드를 사주고 줄곧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당시 70대 중반을 넘긴 아빠와 70을 바라보는 엄마를 내가 아직까지도 예전의 건강한 엄마 아빠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서 지금도 이때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좋지가 않다.


3일째 되는 날에는 하버프런트(Harbourfront)로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센토사섬(Sentosa Island)으로 들어갔다.

“저 섬에는 케이블카를 타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 거야?”

“아뇨. 걸어서 갈 수도 있고, 모노레일을 타고 갈 수도 있는데, 엄마 아빠 구경하시라고 케이블카 타고 가는 거예요.”

“딸 덕에 호강하네.”


센토사섬은 싱가포르가 작정하고 관광지로 개발한 곳 중 하나이기 때문에 보고 즐길거리가 많았는데, 우리는 그중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볼 수 있는 풍경과 시설에 엄마 아빠가 감탄했다.

“이 나라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고, 돈도 많은가 보네.”

아쿠아리움 안에서도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을 보면서 두 분이 평소와는 다르게 대화도 많이 하시고, 좋아하셨다.

“엄마 아빠는 이런데 얼마 만에 오는 거야?”

“이런데 처음 와보지 뭐.”

“처음 와본다고? 한국에서 이런데 가 본 적 없어?”

나는 깜짝 놀랐다. 생각해 보니 민준이가 태어난 후 우리는 민준이를 데리고 코엑스에 있는 아쿠아리움에 몇 차례 간 적이 있었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간 적은 없었고, 부모님들이 당신 들끼리 이런 곳에 갔을 리는 없을 터였다. 우리가 정말 부모님한테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에, 뭔가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구경을 마치고 태국 음식점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가급적 과하지 않게 내가 점심때 동료들과 먹던 방식대로 한 사람 당 하나의 음식을 주문하고, 솜땀이라는 태국식 파파야 샐러드를 추가로 주문했다. 엄마 아빠는 바질 치킨(Basil Chicken)이라는 매콤한 음식을 잘 드셨고, 솜땀도 새콤 달콤하고 신선한, 한국으로 치면 김치 같은 음식 같다면서 잘 드셨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종착역인 마운트 페이버(Mount Faber)에 내렸다. 나의 주말 산책 코스 중 하나를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케이블카 역에서 조금 걸으면 헨더슨 웨이브(Henderson Wave)라는 근사한 건축물을 볼 수 있는데, 건축물 자체도 멋있지만 시원한 바람이 부는 이 곳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그림 같았다. 이 곳에서 다시 조금 걸으면 포레스트 워크(Forest Walk)라는 철제 보도가 나오는데, 숲 안에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때로는 숲 속을 때로는 나무 위를 걷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었고, 포레스트 워크가 끝나는 지점에는 색다른 디자인으로 설계된 인터레이스(Interlace)라는 콘도가 있었다. 중간에 음료수도 마시고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빠는 콘도가 있는 큰길에 다다르자 이제 집으로 가자고 했다. 사실 길 건너편에 호트 파크(Hort Park)라는, 열대 지방의 예쁜 꽃들이 엄청 많은 공원이 있어서 그곳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엄마 아빠가 힘들어하니 아쉽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이틀 간은 휴가를 내기 전에 잡아 놓았던 고객 미팅 및 기타 스케줄 때문에 회사에 가야 했다. 

“집에만 있지 말고 더우면 수영도 하고, 집 주변 산책도 좀 해보고 그래요. 더우면 에어컨 켜고요. 여긴 전기세 별로 안 나오니까.”

“그래, 걱정 말고 다녀와.”

저녁에 집에 와보니 집에 있는 재료로 카레를 만들어 드셨다고 한다. 여기저기 청소도 했는지 집이 깔끔해져 있었다.

“말을 못 하니 슈퍼마켓에 가서 뭘 사 올 엄두가 안 나네.”

“슈퍼마켓에서 말할 필요 없으니까 너무 겁내지 않아도 돼요.”


다음 날 출근 전에 당시 방학이라 집에 있던 민준이한테 살짝 부탁을 했다.

“민준아, 점심때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몰에 가서 싱가포르 음식 좀 사드려 볼래?”

“알았어.”

그날 저녁 엄마 아빠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민준이가 참 착하고 기특해. 지금 민준이가 할머니 할아버지랑 다니는 거 싫어할 나인데, 오늘 점심 사주겠다고 나가자고 하더니, 우리 데리고 식당에 가서는 이거는 뭐고 저거는 뭐라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고, 먹고 싶은 거 고르라고 그러더라. 그러고는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래. 자기가 사다 준다고.”

“그랬어?”

“어린 게 어찌나 마음 쓰는 게 고맙던지…”

“민준이가 착하긴 해. 공부를 잘 못해서 그렇지.”

“걔가 어려서부터 속이 깊었어. 토요일 아침 일찍 잠옷 바람으로 우리 집에 내려와서 TV 보다 갔잖아. 엄마 아빠는 아직 자고 있어서 시끄럽게 하면 안 된다고…”

“민준이가 그랬어? 그래서 오늘은 뭐 드셨는데?”

“그냥 민준이 먹는 거 따라먹었지 뭐.”

민준이에게 물어보니 나시 레막을 먹었다고 한다. 나시 레막은 코코넛 향이 나는 밥과 닭튀김을 비롯한 몇 가지 반찬을 같이 먹는 말레이시아 음식으로 민준이가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이긴 했다.  엄마 아빠는 면 요리를 좋아하고, 싱가포르에는 맛있는 면 요리가 많은데, 그냥 민준이가 번거로울까 봐 같은 걸로 먹은 모양이었다. 착한 민준이 녀석이 공부만 좀 더 잘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엄마 아빠를 모시고 싱가포르 동물원으로 갔다. 싱가포르 동물원의 특징은 침팬지와 같은 몇몇 동물들이 울타리 없이 동물원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바로 눈 앞에서 동물들을 볼 수가 있었다. 엄마 아빠는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를 데리고 다녀 본 이후 정말 오랜만에 동물원에 와본다고 했다. 주관적인 관점에서 싱가포르 동물원에서 사진이 이쁘게 나오는 곳 중 하나인 얼룩말 우리를 배경으로 두 분의 사진도 찍어 드리고, 트램을 타고 동물원을 한 바퀴 돌고, 동물원 안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평상시에 면을 좋아하시던 아빠는 다른 사람들이 먹는 걸 보시고는 어묵 국수를 드신다 했고, 엄마한테는 싱가포르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치킨라이스를 주문해 주었다. 나는 두 분에게 맛을 보여 드리고 싶어 락사를 주문했는데, 결과적으로 어묵 국수만 두 분 입맛에 맞았던 것 같다.


다음날에는 민준이도 데리고 오후 늦게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Marina Bay Sands Hotel)로 갔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은 싱가포르의 랜드마크가 된 건물로 3개의 건물이 하나의 지붕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옥상의 수영장으로 또한 유명하다. 당시 수영장은 투숙객들만 입장이 가능했고, 우리는 수영장 옆의 전망대에 갈 예정이었다. 전망대로 올라가기 전 일층 로비를 둘러봤는데 아빠가 감탄하면서 멋지다고 하셨다.

“이 호텔 쌍용 건설이 지은 거예요.”

“그래? 우리나라 회사가 지은 거야? 정말 자랑스럽네.”

“나 사진 한 장 찍어줘 봐.”


6시쯤 해가 질 때가 되어 전망대로 올라갔다. 전망대 한편에서는 저 멀리 싱가포르를 둘러싸고 있는 푸른 바다와 그 위에 떠 있는 컨테이너선들이 보였고, 그 앞으로는 가든 바이 더 베이와 싱가포르 플라이어(Singapore Flyer)가 내려다 보였다. 전망대 다른 한편에서는 싱가포르의 고층 빌딩들이 밀집되어 있는 금융 지구와 에스플러네이드(Esplanade)가 내려다 보였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서 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7시쯤 되니 찬란한 야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가든 바이 더 베이의 슈퍼 트리와 싱가포르 플라이어에 점등이 되면서 그 화려함이 더해졌고, 고층 빌딩들의 불이 환하게 밝혀지면서 경제 부국 싱가포르의 위용이 드러났다. 

“어휴, 되게 멋지다. 저기가 며칠 전에 우리 갔던 데 맞지?”

슈퍼 트리를 보면서 말씀하셨다.

“예. 맞아요. 저기 관람차 보이죠? 저 근처 도로에서 매년 자동차 경주도 해요. 저기 저 둥근 건물 2개는 에스플러네이드라는 곳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예술의 전당 같은 데에요.”

이 곳에서 처음으로 두 분이 어깨동무를 하고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셨다. 쑥스러운 듯한 표정을 하고 말이다. 


전망대를 내려와 좀 더 가까이 보이는 슈퍼 트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드리고, 천천히 걸어서 클락키(Clark Quay)로 가기로 했다. 걸어가는 길에 싱가포르 명물 중 하나인, 식빵 또는 과자 사이에 넣어 주는 1 달러짜리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에스플러네이드 옆 야외극장에서 진행 중이었던 공연을 구경하기도 하고, 매일 8시경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에서 쏘는 레이저 쇼를 보기도 하고, 호텔과 그 주변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면서 클락키에 도착해 점보(Jumbo)라는 해산물 음식점으로 갔다. 점보는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싱가포르에 오면 반드시 가야 하는 식당으로 알려진 곳인데, 싱가포르의 유명 음식 중 하나인 칠리 크랩(Chilli Crab)이 맛있는 곳이다. 


칠리 크랩과 민준이가 좋아하는 시리얼 프론(Cereal Prawn), 아빠가 면을 좋아하시니 볶음면 하나, 깡꽁이라고 불리는 야채 볶음 등과 시원한 맥주를 주문했다.

“여기 와서 먹어 본 음식 중에 제일 맛있네.”

“맛있다니 다행이네. 많이 드세요.”

나는 이가 안 좋은 아빠를 위해 평소 안 하던 짓이었던, 게살을 발라 드렸다. 엄마 아빠는 소스가 남으니까 맛있는 소스를 버리기 아깝다고 집에 싸가지고 가자고 했다. 직원이 상할 수 있다고 안 싸주려고 하는 걸 부탁해서 결국 싸가지고 와서는 다음날 아침 식사 때 꺼내 먹었다.


항상 지나고 나면 시간은 빨리 흘러서 마침내 부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날이 되었다. 싱가포르에서 출발하는 한국행 국적기는 보통 야간 비행을 하는데 이 날 마침 오전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집에서 공항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날에는 밤이라서 볼 수 없었던, 싱가포르 공항으로 가는 길에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는 가로수를 보고 정말 멋지다고 하셨다.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친 후 나는 엄마 아빠가 혹시 출출해할지도 몰라 카야 토스트를 사서 가방에 넣어 주었다. 게이트를 찾아가는 방법 및 게이트에서 있을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일러 주고, 엄마 아빠가 출국 심사대를 통과하고 게이트 쪽으로 걸어가는 것까지 지켜본 후 돌아서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한편으로는 한국까지 잘 가실까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애틋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흘렀다.


그날 밤 아빠의 메시지가 왔다.

“잘 도착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민준이 아빠가 나오지 말랬는데도, 공항에 또 나와 있더라.”

무사히 도착했다니 다행이었고, 옆에서 나 대신 자식 노릇을 해주고 있는 민준이 아빠한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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