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이별
오전에 병원에 가 있던 엄마와 교대하기 위해서 12시가 안되어 병원으로 향한다. 아빠가 어제 야채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에 집에 있던 쪄놓은 양배추를 쌈장과 함께 조금 싸고, 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려 생양배추와 오이도 샀다.
병실에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었다.
“아빠, 찐 양배추도 가져오고, 생양배추랑 오이도 있어요. 뭐 좀 드릴까요?”
“오이 좀 먹어 볼까?”
“얼른 씻어 올게요.”
오이를 씻어서 한입 크기로 잘라 아빠한테 드린다. 아빠가 2번 정도 드시더니 그만 드시겠다고 한다. 양배추도 한입 드시겠냐고 했더니, 못 먹겠다고, 쪄먹으면 맛있으니 가져가서 쪄먹으라고 하신다.
담당 교수님이 회진을 오셨다.
“어제 CT는 처음 오셨을 때 폐에서 발견된 혈전 상태를 체크해 봐야 할 거 같아서 찍은 거예요. 복수 치료 관련해서는 오늘부터 이뇨제를 써보려고 합니다.”
엄마가 허리를 숙여 감사하다고 말한다. 나는 아빠의 폐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지금 처음 듣게 되었고, 도대체 이렇게 될 때까지 어쩌면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나 싶어 엄청난 죄책감과 함께 가슴이 너무 아려왔다. 한편으로는 아빠는 아직도 이렇다 할 치료도 못 받으면서 이런저런 시도의 대상이 되고 있구나 싶어서 씁쓸했다. 물론 병원 의료진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거라는 기본적인 신뢰를 갖고 있지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일이 되고 보니, 드라마에 나오는, 환자의 말 몇 마디만 듣고도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를 금방 알아내는, 신과도 같은 의사 선생님을 현실에서는 찾기 어렵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오후에는 X 레이를 찍으러 가야 한다고 이동을 도와주시는 분이 또 오셨다. 아빠가 휠체어에 옮겨 타고 1층 X 레이실로 가는 것을 나는 따라간다. 복도에서 몇 분간 대기한 끝에 아빠의 차례가 되어 들어간다. 따라 들어가서 아빠가 촬영을 하는 동안 부축해 드린다.
왜 찍는지도 모르는 X 레이를 찍고 나와 다시 이동을 도와주시는 분을 기다리는데 10분 이상을 기다렸는데도 오시지를 않는다.
“왜 이렇게 안 오지? 지금 어지러운데.”
“아빠, 어지러워요?”
나는 X 레이실로 가서 우리끼리 가겠다고 했지만 이미 연락이 갔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한다.
“아빠, 우리가 먼저 가면 찾을 거라고 조금만 더 기다리래요.”
“알았어.”
마침내 그분이 오셔서 9층 병동으로 데려다주신다.
“아빠, 휠체어 탄 김에 조금만 더 돌아다녀 볼까요? 계속 누워 있어서 어지러운 건지도 모르잖아요.”
“아니야. 눕고 싶어.”
매일 아침 산에 다니시던 아빠의 약해진 모습에 가슴이 너무 아프다.
잠시 후 아빠의 전화벨이 울린다. 아빠의 고향 친구이기도 하고 상도동에 오랫동안 같이 살고 계시기도 하는 춘환이 아저씨다. 아빠가 전화를 받겠다고 한다.
“몸이 좀 안 좋아… 병원에서도 검사를 이것저것 하는데, 병명을 잘 모르나 봐… 면회 안돼. 요즘 바이러스 때문에 병원에서 들여보내지를 않는대.”
아빠가 전화를 끊고 난 후 내가 말한다.
“아빠, 아빠 병명 알잖아요. 간암 2-3기라고 병원에서 알려 줬잖아요.”
아빠가 나를 보면서 말한다.
“췌장암이래?”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지만 내색을 안 하며 말한다.
“간암 2-3기라니까요.”
아빠는 한동안 말없이 누워 계셨다.
잠시 후 간호사가 들어와서 변비약을 드시라고 한다.
“아빠, 변비약 드셔야 한대요.”
“변비약 먹어서 뭐하니?”
간호사가 또 다른 주사약을 들고 온다.
“포타슘 한번 더 맞으실 거예요. 간수치가 좋아지지 않아서 맞으시는 거예요.”
“낫지도 않는데 약은 뭐하러 계속 맞아요?”
아빠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금까지 아빠는 의사나 간호사가 하라는 대로 잘 따르시는 분이었다. 혈액 검사해야 한다고 수시로 찔러 대는 주사 바늘에도 신음 소리 한번 낸 적 없이 협조적이셨고, 의사가 팔다리 주무르면 안 된다고 했다고 나를 단속하셨고, 소변 양 적으라고 했다고 나를 재촉하셨고,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억지도 먹는다고 하셨던 분이다. 나는 엄마한테 메시지를 보낸다.
“엄마, 아빠가 췌장암 이야기를 왜 하는 거야? 혹시 엄마가 무슨 이야기 했어?”
“아빠 발이 부었다고, 오전에 신장 내과 의사가 왔었는데, 그 사람이 아빠한테 췌장암이라고 말했어.”
“아니, 이 사람들이…”
나는 화가 났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잠시 후에 성훈이한테 연락이 왔다. 또 복도에 나가서 전화를 받는다.
“나 이번 주 일요일에 한국 가는 비행기 예약했어. 일요일 밤에 도착할 거야.”
“엄마 아빠는 너 못 오게 하랬는데, 나도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네가 앞으로 마음이 편하려면 아빠가 그나마 정신이 온전할 때 한번 오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요즘 아빠가 가끔 정신없어 보일 때가 있거든. 이상한 말도 하고. 근데 내가 19일에 가는 걸로 변경을 했으니까 간병할 걸 생각하면 그 이후에 오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아빠가 갑자기 안 좋아질까 봐 불안해서 가려는 거지.”
“그래. 그럼 와. 내가 없으면 간병은 성민이가 엄마랑 교대해도 되니까.”
병실로 들어가서 말한다.
“아빠, 성훈이 보고 싶죠? 성훈이 이번 주 일요일에 오겠대요.”
“멀리서 힘들게 뭐하러 온대? 비행기표도 비싼데. 오지 말라고 얼른 연락해.”
“아빠가 아픈데 자식이 와봐야죠.”
“어휴.”
엄마도 나에게 전화를 한다. 나는 다시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는다.
“근데 아빠도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을 거야.”
엄마의 씁쓸한 목소리다.
“아빠가 지금 약은 뭐하러 계속 먹냐고 하는데? 아빠가 많이 우울해 보여.”
“아빠도 몸이 계속 안 좋아지는데 항암 치료도 못 받고 있으니 속상하겠지.”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를 끊고 병실로 돌아오니 아빠가 묻는다.
“엄마 온대?”
“왜요? 엄마 보고 싶으세요? 아빠는 나보다 엄마랑 있는 게 더 좋죠?”
분위기를 전환해 보려고 한 이야기였지만 이미 6시가 지나고 있어서 엄마가 지금 집에서 출발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대신 엄마한테 메시지를 보낸다.
“아빠가 엄마 오냐고 묻네. 엄마 보고 싶은가 봐.”
엄마가 전화를 한다.
“엄마가 내일 일찍 병원에 간다고 아빠한테 말해. 그리고 엄마한테 출입증 주고 가.”
“아빠, 엄마도 아빠 보고 싶어서 내일 일찍 온대요.”
아빠는 여전히 무표정하고 말이 없다.
간호사가 다시 와서 나를 부른다.
“아버님 소변줄 연결해야 할 것 같은데요.”
“소변줄요? 그거 연결하면 많이 불편하잖아요.”
“아무래도 편하시진 않겠죠.”
“제가 아빠랑 먼저 이야기를 할게요.”
어차피 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아빠한테 먼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아빠, 어떡하죠? 소변줄을 연결해야 하나 봐요.”
“해야지 뭐.”
아빠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나는 나와서 간호사에게 이야기한다.
“아빠한테 말씀드렸어요. 해 주세요.”
간호사들이 소변줄을 연결하고 있는 동안 나는 잠시 나와 있는다. 소변줄이 연결되자마자 소변 팩에 아주 소량의 소변이 채워졌다.
나는 조금 더 있다가 병원을 나와서 엄마네로 간다. 엄마가 저녁을 차려 주는데 엄마도 시간과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반찬도 별로 없고 주방도 어수선하다. 나는 저녁 먹은 설거지를 하고, 마음이 심란하기도 하고 움직이다가 허리를 삐끗하기도 해서 그냥 엄마네서 자겠다고 하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아빠를 위하여”라는 블로그를 발견했다. 호스피스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발견한 블로그인데, 딸이 만화로 그린, 암에 걸린 아빠에 대한 간병 이야기였다. 첫 회부터 보면서 암이나 간병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가족들의 심정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다. 좀 더 일찍 이 블로그를 알았더라면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운 마음도 많이 들었다. 밤새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막 편까지 보다가 새벽에 잠깐 잠이 들었다가 아침 일찍 깼다.
엄마는 우리가 먹을 김치찌개를 끓여 놓고는 병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입맛이 전혀 없었으나 엄마가 자꾸 권하는 바람에 억지로 밥을 조금 먹고는 일단 우리 집으로 갔다.
민준이 아빠가 펜벤다졸이 한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 줬다. 이제 인천에 있으니 빠르면 하루 안에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말에 약간의 희망을 가져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