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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konohime May 28. 2020

22. 아빠, 사랑해요.

아빠와의 이별

2020년 2월 1일 (토)


엄마의 메시지가 왔다.

“너도 힘들 테니 푹 좀 쉬고 오후 늦게 와.”

하지만 집에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아침 일찍 엄마한테 메시지를 보낸다.

“아빠 상태 보고 나한테 좀 알려줘. 그리고 오늘도 출입증 가진 사람만 들여보내는 지도 알려줘.”

엄마가 잠시 후 메시지를 보낸다.

“아빠가 포도 드시고 싶다고 하네.”

마음이 또 조급해져서 얼른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선다. 남편이 차로 병원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병원 앞 슈퍼마켓에 있는 포도는 싱싱해 보이지가 않아 근처 백화점 식품 매장으로 갔다. 샤인 머스켓이라는 말로만 듣던 품종의 포도가 있었는데 가격이 비쌌지만 싱싱하고 예뻐 보이는 걸로 사고 싶었다.

병원은 오늘도 출입 통제가 되고 있었다.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교대하자고 했다.

“엄마가 있겠다니까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엄마 몸살 기운도 있으니까 내가 있을게. 빨리 내려와. 엄마 집에 데려다 줄라고 여기 민준이 아빠도 기다리고 있어.”


생각보다 한참 후에 내려온 엄마가 말한다.

“주치의가 아빠 상태에 대해서 말하는데, 엄마는 잘 못 알아듣겠다고, 너네들 올려 보낸다고 하고 왔어.”

병원 정문에서 경호원에게 사정을 말했더니 3 사람 모두 들여보내 주었다.

“저희 왔는데요. 하실 말씀 있으시다고요.”

“예.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아서요.”

아빠가 암 진단을 받은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동시에 아빠의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는 것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던 차였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선생님은 경험이 많으실 테니까 그럼 아빠가 얼마나 더 버티실 수 있다는 말씀이신지…”

“몇 주 정도요.”

주치의는 컴퓨터 화면을 보여준다.

“여기 초록색으로 보이는 게 암세포거든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전체 장기에 퍼져 있는 거 보이시죠? 시간을 늘리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지금 피검사 수치가 계속 안 좋아지고 있어요. 복수 치료를 하려면 항암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데 아시겠지만 수치가 좋아지지가 않아 항암 치료를 시작하지 못하는 상황이고요.”

“근데 제가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건 어떻게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몰랐을까 하는 거예요. 작년 여름 이 병원에서 MRI 찍었을 때 병원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대요.”

“췌장암이 특별한 증상이 없는 암이라서 초기에 발견되기가 어려워요. 저희 과에 오셨을 때에는 보시는 것처럼 이미 너무 많이 진행된 상태였어요. 정말 마지막 단계에서 오신 거예요.”

“얼마 전까지 식사도 잘하시고, 동네 산행도 꾸준히 하시던 분인데요.”

“예. 저도 안타까워요. 저희는 가족 분들이 함께 할 시간을 가급적 연장해 드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신장 기능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지금 다리가 좀 부으셨잖아요? 신장 기능이 안 좋아서 그런 거라 신장내과에 협진 요청을 했었어요. 어쩌면 투석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투석을 받으실 의향은 있으세요?”

“투석을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투석을 받으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저희는 개선의 여지가 없는데 아빠가 이것저것 검사받느라 더 고통받으시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여쭤 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보호자 분들 오시라고 한 거예요. 가족분들끼리 이야기를 먼저 하셔야 할 것 같아서요. 투석을 받는 게 쉬운 건 아니에요. 처음에는 한 시간 정도 받으실 것 같아요. 근데 투석을 받으면 다리 붓는 문제는 확실하게 개선될 거예요.”

남편이 말한다.

“그런데 제가 약간 항의 아닌 항의를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어제 신장내과 선생님이 장인어른 보러 오셔서 췌장암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어제 오후 아빠가 좀 많이 우울해하셨어요.”

“아, 정말요? 그 부분은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차트에 환자분이 간암 2-3기인 걸로 알고 있다고 메모를 해놓긴 했었는데 놓치신 모양이네요. 저희 과에서는 저랑 간호사들 모두 계속 주의를 하고 있었는데…”

평소 냉정해 보였던 주치의가 여러 번에 걸쳐 미안하다고 한다.

“저희가 밤에도 아빠랑 같이 있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침상을 신청하실 수 있어요. 저희가 보통 허용을 안 하는데 이런 경우는 신청 가능해요.”

“혹시 1인실로 옮길 수는 없을까요?”

“지금 비어 있는 1인실이 없고, 곧 자리가 날 것 같지도 않아요. 저희가 대기자 명단에는 올려 드릴게요. 병원을 옮기시는 것도 생각해 보실 수 있어요. 고려해 보실 수 있는 병원 리스트는 지금 담당자가 없어서 월요일에 드릴 수 있고요.”

“지금 작은 병원으로 옮기면 장인어른이 심리적으로 더 불안해하실 거 같은데.”

“상의해 보시고 여기 계셔도 됩니다. 1인실이 나면 저희가 알려 드릴 거고요.”

그런데 사실 어떤 방법이 아빠에게 최선일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책에 의하면 이런 경우 환자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익숙한 환경에 있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빠의 경우 복수가 차고 있었고, 이 부분은 집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주치의는 통원을 통해 복수를 빼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아빠가 일주일에 1-2회 통원을 한다는 것이 지금 상태로는 아빠에게도 나머지 가족에게도 힘들어 보였다.


3명이 함께 휴게실로 가서 이야기를 좀 더 하기로 했다.

“투석받는 게 아빠한테 힘들 거 같긴 한데, 그래도 그거 하면 다리 붓는 거라도 좋아진다니까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

“그리고 오늘부터 밤에도 교대로 병원에 있어야 할 거 같아. 아빠가 최소한 외로움은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일단 엄마는 집에 가서 쉬어. 내가 다시 연락할게. 엄마 좀 집에 데려다줘.”

엄마는 민준 아빠와 함께 돌아가고,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아빠한테 간다.

“아빠, 저 왔어요. 포도 드시고 싶어 했다면서요? 제가 씻어 올게요.”

포도를 씻어 큰 포도알을 반으로 잘라 아빠 입에 넣어 드린다. 다행히 아빠가 드신다.

“아빠, 더 드세요.”

“많이 못 먹어. 3개만 먹을게.”

“알았어요. 지금 3개 드시고 이따 드시고 싶을 때 또 이야기하세요.”

“지금은 속이 답답해서 더 못 먹어.”


“나 좀 일으켜 봐. 너 있을 때 화장실에 좀 갔다 와야겠어.”

“알았어요. 저 잡고 천천히 가요.”

“아빠, 제가 화장실에 같이 들어갈게요. 아빠 어지러우니까…”

아빠가 변기에 앉고 나는 그 앞에 서 있었다.

“나가 있어. 너 있으니까 신경 쓰여서 안 되겠다.”

“알았어요 그럼. 저 문 앞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꼭 불러야 해요.”

“그래.”

한참이 지난 것 같은데 안에서 아무 소리가 안 들린다.

“아빠, 별일 없어요? 제가 들어갈까요?”

“그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 했어요? 제가 닦아 드릴게요.”

“그래.”

아빠가 변기 앞에 있는 세면대에 지탱해서 몸을 구부린다. 나는 엉덩이를 닦으면서 아빠가 이제 이런 것도 나한테 청할 만큼 몸이 많이 힘들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또 아파졌다.

“아빠, 다 했어요. 이제 나가요. 저 잡고 천천히…”

아빠 침대로 돌아온 후 아빠가 천천히 앉았다가 눕는다. 그런데 쇳소리를 내면서 숨을 아주 가쁘게 몰아 쉰다. 그동안 숨쉬기가 힘들어 답답해한 적은 있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한참을 그렇게 숨이 넘어갈 정도로 헉헉거리셨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왜 그리도 간병이 서툴고 생각이 없었는지, 침대를 세웠다가 천천히 내렸으면 아빠가 좀 더 편했을 텐데 그 생각을 못하고 아빠가 스스로 눕도록 했던 것이다.

“숨이 차. 내 방에 가면 이럴 때 먹는 약이 있는데, 하얀 통에 들은 작은 알약. 미국에 사는 친구가 준 건데 이럴 때 그거 하나 먹으면 좋아지는데…”

“제가 간호사한테 물어보고 올게요.”

띄어 나가서 담당 간호사에게 간다.

“숨이 찰 때 먹는 작은 알약 구할 수 있을까요? 왜 드라마에도 나오잖아요. 심장 마비가 올라고 하면 먹는 약, 혹시 그런 약 하나 주실 수 없나요? 아빠가 지금 너무 숨이 차다고 해서요.”

“무슨 약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환자분 상태 아직까지는 괜찮아 보이시는데요.”

절망스럽다. 보지도 않고 뭐가 괜찮아 보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빠, 미안해요, 간호사가 무슨 약 말하는 건지 모르겠대요. 제가 오늘 집에 가서 찾아보고 갖고 올게요.”

“그래. 근데 오래된 거라 먹어도 될라나 모르겠다.”

“약국에 가서 새로 살 수 있는지 물어볼게요. 그리고 화장실 갔다 와서 이렇게 힘들면 기저귀를 하는 게 어떨까요?”

내가 말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도 아닌 아빠한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내가 정말 싫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혹시 뭐 드실 수 있는 거 생각나는 거 없으세요? 오늘 드신 게 거의 없잖아요. 속 답답한데 콜라라도 사다 드릴까요?”

새벽에 읽은 “아빠를 위하여”에 의하면 답답해하는 말기암 환자들에게 탄산음료나 아이스크림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었다.

“콜라? 콜라보다는 사이다가 괜찮겠다.”

“사이다 드실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또요? 호박죽? 잣죽?”

“호박죽보다는 잣죽이 낫지.”

“깨죽도 팔던데.”

“깨죽도 있어? 그럼 깨죽 한번 먹어 볼까?”

“아빠, 그럼 잠깐만 혼자 계세요. 제가 얼른 가서 깨죽이랑 사이다 사 올게요.”

얼른 옷을 챙겨 입고 병원을 달려 나가 깨죽을 하나 포장하고 사이다를 하나 사서 돌아온다.

“아빠, 사이다 사 왔는데 조금 따라 드려요?”

“그래, 아주 조금만 줘봐.”

사이다를 종이컵에 1/3 정도 따라 드리니 다 드신다.

“깨죽도 있는데 지금 드실 수 있어요?”

“지금은 못 먹겠다. 이따가 먹을게.”

마음이 또 아파진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린다. 남편이다.

“지금 1층에 와 있어. 내가 오늘 밤 장인어른이랑 같이 있을 테니까 얼른 내려와.”

“싫어. 내가 있을 거야.”

“나는 평일에 회사에 가야 하니까 내가 밤에 병원에 있을 수 있는 날은 오늘뿐이야. 그러니까 오늘 내가 있을게. 빨리 내려와.”

아빠가 평소 사위를 큰 아들같이 생각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기로 한다.

“아빠, 민준 아빠가 지금 왔대요. 저 가고 민준 아빠 올려 보낼게요. 지금 바이러스 때문에 한 명 밖에 못 들어오거든요.”

“어휴, 나 때문에 너희들이 힘들어서 어쩌냐?”

“하나도 안 힘들어요. 저는 내일 또 올게요.”

정말 코로나 바이러스가 원망스러웠다. 하필이면 지금 유행을 해서 아빠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친척이나 지인들 얼굴도 못 보고, 심지어 가족 면회까지 제한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 펜벤다졸 배송돼서 갖고 왔어.”

“그래? 오늘 밤부터라도 당장 드려봐 그럼.”

“알았어.”

1층에서 출입증을 남편에게 주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집에서도 마음이 계속 불안해서 침대에 누웠으나 잠을 잘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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