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이별
오늘은 엄마가 아침에 병원에 가 있겠다고 했는데 집에 있어도 마음이 불편해서 PC를 들고 일찌감치 병원으로 가서 엄마와 교대를 했다. 엄마가 소변의 양을 기록해 놓았는데 소변의 양이 많지 않다.
“아빠, 오늘 좀 괜찮아요? 복수 차는 건 좀 어떤 거 같아요?”
“답답한데 아직은 괜찮아.”
“아침에 야채수프는 좀 드셨어요?”
“응. 엄마가 줘서 먹었어. 시원하게 먹으면 먹을만하더라고. 도라지도 하나 먹었다.”
“잘하셨어요. 목마르면 물 대신 야채수프를 드세요.”
“알았어.”
“언젠가 한밤중에 일어나서 부엌에 나왔는데, 생양배추가 있길래 몇 개 먹은 적이 있거든. 그거 먹고 나니까 속이 시원해지더라.”
“양배추 드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야채 같은 게 좀 먹고 싶네.”
병원에 입원한 이후 신선한 야채를 본 적이 없으니 아빠가 신선한 야채가 그리웠나 보다. 평소에 쌈 채소나 나물 반찬을 좋아하시던 아빠였다.
“내일 올 때 야채 좀 가져와 볼게요.”
그리고 또 매일 하는 일, 아빠 닦아 드리는 일을 마치고 PC를 켠다.
“저 회사 일 좀 하고 있을게요,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이야기하세요.”
잠시 후 점심 식사가 온다. 아빠는 일어나서 드셔 보려고 노력을 하시지만 드시지를 못한다.
“아욱죽 남은 거 있는데 아욱죽을 좀 드실래요?”
“그래, 그거 줘 봐.”
아욱죽 조금과 복숭아 한쪽을 꺼내 드린다. 다 드시긴 했지만 다음부터는 아욱죽도 못 드시겠단다.
나는 다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이동을 도와주시는 분이 오셨다.
“CT 찍으러 가셔야 합니다.”
“오늘 CT 찍는다는 말 못 들었는데요.”
“XXX 환자분 맞으시죠?”
“예. 맞아요.”
나는 왜 갑자기 CT를 찍는다는 건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병원에서 하라고 하는 거니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빠는 힘들게 휠체어에 옮겨 앉아 CT 촬영실로 향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병원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CT 촬영실도 안 다니던 길로 돌아서 갔다.
아빠가 CT를 찍고 나왔다. 복도에서 이동을 도와주시는 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CT 촬영실 근처에서 무슨 일 때문인지 임시로 출입을 통제해야 한다면서 여러 사람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한다. CT 촬영실에 이야기하고 우리끼리 병동으로 올라가기로 한다.
“아빠, 근데 제가 길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휠체어에 앉아 있는 아빠의 머리가 며칠을 못 감아 눌려 있기도 하고 뻗쳐 있기도 했다.
“아빠, 머리 못 감아서 찝찝하죠?”
“그동안은 내가 화장실 가서 혼자 감았는데 요 며칠 못 감았네. 다음에 화장실 가면 또 감아 봐야지.”
내가 감겨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물 없이 머리를 감을 수 있는 샴푸가 있다고 한다. 왜 이 때는 그걸 몰랐을까?
9층 병동에 도착했다.
“길 잘 찾네.”
아빠가 미소를 지으며 칭찬을 해준다. 하지만 산소호흡기 연결하는 방법을 몰라서 아빠를 침대에 눕히기 전 결국에는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얼마 있다가 간호사가 새로운 약을 들고 들어와 주사 바늘에 연결한다.
“포타슘이에요.”
병원에서는 약을 가져올 때마다 무슨 약이라고 알려 주긴 하지만 이런 식의 정보가 아빠 같은 분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빠보다 젊고 소위 가방끈이 긴 나도 어안이 벙벙하다.
“예? 포타슘이 뭐예요?”
“칼륨이요. 환자분 간수치가 안 좋아서 맞으시는 거예요.”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아빠 앞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왜 자꾸 뭐가 안 좋아지기만 할까요?”
실수했다 싶었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간호사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소변 꼭 소변통에 보시고 버리지 마세요. 지금 소변 양을 체크하는 게 환자분께 중요해서요. 체크가 제대로 안되면 소변줄을 꽂아야 될지도 몰라요.”
우리는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잘 따라 하고 있었다. 아빠는 소변을 볼 때마다 나보고 나가 있으라고 하고는 소변통에 소변을 보시고, 나보고 꼭 양을 기록하라고 말씀하셨다.
간호사가 나가자 복도로 간호사를 따라 나가 부탁한다.
“뭐가 안 좋아졌다는 말씀은 아빠 앞에서는 하지 말아 주세요. 저희한테만 따로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어요.”
“예.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치의한테 가서 말한다.
“선생님, 아빠 간수치가 안 좋아졌다고 들었는데요, 혹시요, 제가 어제오늘 도라지즙을 좀 드렸거든요. 그게 영향을 주었을까요?”
“음… 그건 그리 상관이 없을 거예요. 근데 앞으로는 드리지 마세요.”
나는 엄마와 연락해서 당분간 야채수프도 도라지즙도 안드리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혹시 내가 드시지 말아야 할 것들을 드려서 아빠를 더 힘들게 만든 건 아닌지 죄책감이 몰려왔다.
원래 나는 2월 2일에 싱가포르에 돌아갈 예정이었다. 나는 싱가포르 고용 비자(Employment Pass)를 가지고 있었는데, 2월 14일에 퇴사하는 것으로 싱가포르 정부에 이미 신고가 되어 있는 상태였고, 그때까지의 근로일수 기준으로 세금 계산 및 납부도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변경이 발생하면 안 된다고 HR 담당자가 신신당부를 했었다. 나도 변경될 일은 없을 거라고 웃으면서 확인을 해주었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싱가포르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평소의 고지식하고 남한테 부탁을 잘 못하는 성격의 나라면 하지 못했을 부탁을 매니저와 HR 담당자에게 했다. 퇴사일 변경은 힘들 테니 2월 14일까지 무급 휴가(Unpaid Leave)로 처리해 줄 것을 부탁하고, 세금 계산을 다시 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한 후, 싱가포르로 돌아가는 날짜를 2월 19일로 변경했다. 2월 20일이나 21일에 우리나라의 수능과 비슷한 A Level이라는 시험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었으므로, 그 시기에는 민준이와 함께 싱가포르에 있어야 할 것 같았고, 3월 14일에 한국으로 영구 귀국할 예정이었는데, 그 전에라도 다시 한국에 잠깐이라도 왔다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메일로 간략하게 작성해서 보낸 나의 당시 상황을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자세한 속사정에 대해서는 모를 것이기에 다소 황당해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지금은 아빠가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나의 심정이 너무나 절박했기 때문에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