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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konohime May 11. 2020

19. 아빠, 사랑해요.

아빠와의 이별

2020년 1월 29일 (수)


오늘은 엄마가 오후에 성민이를 데리고 병원에 온다고 해서 내가 오전에 병원에 가 있기로 했다. 병원에 가니 아빠가 기운 없이 침대에 누워 계셨다. 잠시 후에 복도에서 만난 간호사가 이야기한다.

“아버님 오늘 새벽에 넘어지셨어요. 지금 넘어지다가 어디 부딪히기라고 하면 정말 큰일 나거든요. 무슨 일 있으면 직접 하시지 말고 호출 버튼 사용해서 저희 부르시라고 말씀 좀 잘해주세요.”

나는 놀라서 아빠한테 간다.

“아빠, 오늘 아침에 넘어졌다면서요?”

“응. 시원한 물이 먹고 싶어서 냉장고에 가다가 어지러워서 쓰러졌어.”

“어디 부딪힌 데는 없고요?”

“머리 좀 부딪혔는데 괜찮아.”

아빠가 쑥스러운 듯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나는 호출기를 아빠한테 보여준다.

“아빠, 넘어져서 다치면 큰일 나요. 앞으로 저희가 없을 때에는 꼭 간호사를 부르세요. 이거 누르면 간호사가 온대요.”

“미안해서 어떻게 불러?” 

“아빠가 다치는 것보다 그게 결국에는 간호사들 도와주는 거예요.”

“알았다.”

어제 복수를 많이 빼서 아빠 몸이 정말 안 좋아졌나 보다. 잘 드시지도 못하는데 그 많은 복수를 뺐으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아빠가 하루하루 약해지고 있는 것이 느껴져 또 눈물이 나는데 아빠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아 컵을 닦는 척 싱크대로 간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밤에 아빠를 혼자 두는 것이 아니었다. 아빠는 내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였는데 나는 그걸 몰랐던 것이다. 아빠는 항상 우리를 보호해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아빠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고지식한 사람들이어서, 보호자는 8시까지 병원에 있을 수 있다는 병원의 규정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줄로만 알고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 XX 도라지 갖고 왔어요. 이거 먹고 복수 치료된 사람들이 있대요. 하나 드셔 보세요.”

도라지즙을 종이컵에 따라서 아빠에게 드린다.

“어휴, 진하고 쌉싸름하니 괜찮네.”

“먹을만해요? 다행이다. 하루에 3개 먹으라는데, 3개가 많으면 아빠가 먹을 수 있을 만큼만 꾸준히 드셔 보세요.”

“그래.”

하나를 다 드시는 걸 보니 주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후 주치의가 와서 이야기한다.

“지금 저희가 염증 수치 좋아지라고 수액을 계속 주사하고 있는데, 수치가 좋아지지가 않네요. 일단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저런 말은 밖에서 나한테만 이야기해 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나는 주치의에게 묻는다.

“저희가 요즘 아빠한테 야채수프 드리고 있거든요. 혹시 그게 안 좋은 영향을 줄까요?”

“야채수프는 상관없어요. 근데 다린 거는 안 드리는 게 좋아요.”

“다린 거요? 한약 같은 거요?”

“예.”

나는 뜨끔했다. 방금 도라지즙을 드렸는데… 그런데 그거 먹고 암을 고친 사람들이 많다고 했는데… 하지만 도라지즙은 방금 드신 거니까 지금 이야기하는 수치와는 상관이 없겠거니 생각하고 일단 그냥 넘어갔다.

아빠가 말한다.

“복수 빨리 찰까 봐 물도 잘 안 먹고 있어요.”

“복수 차는 거랑 물 드시는 거랑 전혀 상관없어요. 오히려 물 많이 드시는 게 좋아요.”

“예. 감사합니다.”

주치의의 이 한마디 후에야 아빠가 음료수를 마실 때마다 부담을 덜 갖는 것이 느껴졌다.


오후에 엄마와 성민이가 병원에 왔고, 보호자가 한꺼번에 여러 명 있는 것을 병원이 제한했기 때문에 나는 병원을 나와 엄마네 집으로 갔다. 몇 시간 후 돌아온 성민이가 아빠가 예전에 직접 가입해 놓은 상조 회사와 아빠가 갖고 있는 은행 계좌 정보를 알려줬다고 한다. 나는 또 눈물이 나왔다. 아빠는 왜 벌써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걸까?

“아빠가 얼마 전에 꿈을 꿨는데, 돌아가신 할머니랑 큰아버지가 나왔다고 하더라고. 할머니랑 큰아버지가 아빠 데리러 온 거 같다고 아빠가 그랬어.”

그리고 본인이 꾼, 이상한 꿈 이야기도 한다. 실은 나도 얼마 전에 이가 왕창 빠지는 꿈을 꾸고 잠에서 깼다가 인터넷에서 해몽을 찾아보고 기분이 안 좋았던 적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아빠가 말기암 진단을 받으셨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고, 아빠를 보낼 마음의 준비는 더더욱 되어 있지 않은데 왜 자꾸 이런 식으로 일이 흘러가는 것일까? 정말 너무너무 슬픈 마음에 집에 있기가 괴로워 다시 병원으로 가서 엄마와 교대를 한다.


 “아빠 도라지도 하나 더 드시고 복숭아도 드셨어. 오늘은 어제 복수를 빼서 그런지 덜 답답한가 봐.”

“아빠가 소고기죽 말고 엄마가 만들어 준 아욱죽이 더 좋다고 하더라고.”

“오늘도 아욱죽 조금 드셨어. 오늘은 아욱죽에 소고기 넣고 쒀 왔어. 어제는 왜 소고기 넣을 생각을 못했나 몰라. 아빠는 옛날에 먹던 게 생각나서 된장 들어간 죽을 더 좋아하지.”

“오늘은 좀 드셨다니 다행이네.”

아빠가 뭐라도 드시는 날은 그게 아주 소량이라고 해도 약간의 안도감이 생긴다. 


간호사가 오늘부터는 소변의 양을 체크해야 하니 소변을 꼭 소변통에 보고 버리지 말고 가급적이면 양도 기록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병원에서 나오기 전에 소변통을 아빠 손이 닿는 곳에 걸어 두고 다시 한번 무슨 일이 있으면 호출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집에 와서 며칠간 밀려 있던 회사 메일 처리를 한다.

오늘 펜벤다졸의 배송 상태는 조금 바뀌어 있었지만 아직 미국 내에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어 나는 다시 초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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