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이별
아침 일찍 준비하고 엄마네로 향했다. 아빠가 어제 말한 약병을 찾기 위해서였다. 아빠 방에 수북이 쌓여 있는 동네 약국에서 지은 약 봉투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엄마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말을 꺼낸다.
“내 생각에 복수를 뺄 때마다 아빠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질 거 같은데, 그래도 복수를 빼는 게 맞을까?”
“복수를 안 빼면 아빠가 너무 힘들어하잖아. 사는 동안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줘야지.”
“이번 주처럼 일주일에 한 번을 빼면 아빠가 너무 답답해하니까 다음 주부터는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빼 달라고 주치의한테 부탁을 해봐야 할까?”
“그래야 할 거 같아. 아빠가 복수를 빼면 그래도 편하다고 하니까.”
“근데 그러면 내 생각에 아빠 진짜 2-3주도 못 버틸 것 같은데…”
“……”
“그리고 민준이 아빠가 그러던데, 엄마 아빠 시골 선산으로 안 가고 수목장 하고 싶어 했다고.”
“작년에 큰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산에 가서 아빠 가묘 없애고 왔어. 산소 쓰면 관리하기가 힘들잖아. 엄마 있는 동안은 엄마가 가끔 가서 벌초라도 하겠지만, 그다음에는 누가 해? 산소에 풀 무성하게 자라 있는 거 보기 흉하고, 동네 사람들도 욕해.”
“내가 하면 되지. 산으로 가고 싶은데 관리 때문에 수목장 생각하는 거면 산으로 가. 내가 가서 할게.”
“네가 지금 마음은 그래도 실행하기가 힘들어. 엄마 외할머니가 엄마를 그렇게 예뻐해 주셨는데 외할머니 산소가 외갓집 근처에 있어도 엄마도 한 번을 안 가게 되더라고. 아빠랑 그렇게 하기로 다 이야기한 거야.”
아빠가 아직 살아 계시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죄짓는 기분이 들었지만, 선산으로 안 가는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누구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기에 나라도 미리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준이 아빠 빨리 교대해 줘야 할 것 같아서 나는 그만 가볼게.”
병원에 도착해서 민준이 아빠와 1층 정문에서 교대를 한다.
“별일 없었어?”
“크게 달라진 건 없는데 어제 엄청 숨차 하시더라고. 내가 응급실 통해서라도 복수를 빼 달라고 했는데, 그건 안된다고 하고, 당직 의사가 와서 코에 관을 넣었어. 가스를 빼보자고. 그래서 어제 그 약은 못 드렸어. 그리고 산소 농도를 올려야 한다고 해서 산소 흡입기 대신 산소마스크로 바꿨고, 어제부터 기저귀도 사용하고 계셔.”
“코에 또 관을 넣었다고? 그거 엄청 불편할 텐데… 그리고 어제 오후에 내가 아빠한테 물어볼 때까지만 해도 기저귀 안 쓰겠다고 했는데, 아빠 자존심 많이 상하겠네.”
“하나 주의할 거는 장인어른이 답답하시다고 산소마스크를 자꾸 벗으려고 하셔. 그래서 그거 잘 지켜봐야 해. 그리고 어제 또 당직 의사가 지금 당장이라도 돌아가실 수 있는 상태라고 하길래 내가 나가서 이야기하자고 하긴 했는데…”
“아니 그 사람들은 왜 자꾸 사람 앞에 두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화가 치밀었다. 어떻게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아니 시간이 다르게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인지, 이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 무력감이 느껴졌다.
“아빠, 저 왔어요. 코에 관 넣어서 많이 불편하시겠네. 산소마스크로 바꾸고 숨 쉬기는 좀 편해요?”
“답답해.”
힘없고 쉰 목소리다. 지금 아빠 몸에는 여러 종류의 약이 들어가고 있는 주사 바늘, 코를 통해 뭔가를 빼내고 있는 줄, 소변줄, 산소마스크에 산소를 공급하는 줄, 산소 포화도와 맥박을 체크하기 위한 줄들이 연결되어 있다. 금식이라는 표시가 보였고, 소변줄에 연결된 팩에는 갈색의 소변이 아주 소량 들어 있었다. 가슴이 미어져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와중에 간호사가 약을 놓고 간다.
“환자분, 약 드세요. 물은 약 드실 때만 드실 수 있어요.”
나는 간호사를 따라가서 물어본다.
“소변 색은 왜 저런 거예요? 혹시 피가 섞인 건가요?”
“농축이 돼서 그래요.”
답답한 마음에 물어보고 답변을 듣지만,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지는 모른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는 나름 인정도 받아 왔고, 평소 이런저런 분야의 책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도, 병원에서 의사나 간호사가 하는 말들은 영 생소하고, 이해도 바로 하기 힘들고, 그리고 그게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를 잘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아빠, 약 드셔야 된대요.”
“그래. 일으켜줘.”
“저 잡고 아주 천천히 일어나세요.”
조그만 젤리 통 같은 용기에 든 보기에도 역겨운 약이다. 아빠는 여러 숟가락에 걸쳐 그 약을 기계적으로 다 드시고 다시 누우셨는데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또다시 가쁜 숨을 내쉰다. 간호사에게 다시 달려간다.
“아빠 숨 쉬는 게 너무 이상해요. 좀 봐주실래요?”
간호사가 와서 보긴 했지만 아직 괜찮은 거라고 한다. 나는 속이 탔다.
“아빠 참, 어제 아빠가 가져오라는 약 갖고 왔어요. 가슴 답답할 때 먹는 약이요. 하나 드려 볼까요?”
어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니트로 글리세린 설하정이라는 약으로 추측이 되는데, 이 시점에 아빠 마음이라도 안정이 되었으면 해서 하나 권해 본다.
“변비약?”
요즘 가끔 정신이 맑지 못한 듯 딴소리를 하신다. 이게 섬망 증상이라는 건가?
“아니요. 어제 아빠가 집에 가서 가져오라는 약 있었잖아요. 그거 오늘 제가 가져왔거든요.”
“됐어. 안 먹을래.”
나는 병원에서 내가 아빠를 위해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따뜻한 물수건으로 아빠 얼굴, 손, 발을 닦아 주고, 로션을 발라 드리는 일이다. 아빠 손도 잡아 드린다. 왜 아빠가 병원에 오시기 전에 아빠 손을 잡아볼 생각을 한 번도 못했을까?
“아빠가 우리 키우느라 힘들어서 이런 병이 걸렸나 봐요. 아빠,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고맙고, 미안해요.”
아빠가 허공으로 손을 내젓는다.
“그런 말 하지 마.”
나도 이런 말 하기 싫었다. 원래 이런 식의 대화를 편하게 하는 살가운 가족 사이가 아니었고, 이런 말을 하면 아빠한테 이제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는 암시를 주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근데 할 수 있을 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입에서 계속 맴돌긴 했어도 끝내 내뱉지를 못했다.
12시도 안돼서 엄마 전화가 왔다. 1층에 와 있다고 내려오라고 한다.
“아니 왜 벌써 왔어? 혹시 내가 아침에 이상한 이야기 해서 화난 거야?”
“아냐, 엄마가 아빠 때문에 마음이 안 좋아서 빨리 왔어.”
“아빠, 엄마가 아빠 보고 싶어서 빨리 왔대요. 아빠도 엄마랑 있는 게 더 좋죠? 저 집에 갔다가 이따 또 올게요.”
1층에서 만난 엄마의 얼굴도 조급해 보인다.
“오늘은 엄마가 병원에서 잘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서 쉬어.”
병원에서 집까지는 버스로 4-5 정거장 거리인데 멍하니 걷다가 어느새 집까지 오게 되었다.
남편은 점심을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먹기 싫다는 나에게도 자꾸만 권해서 결국 식탁에 같이 앉았다.
“내가 아침에 엄마랑 수목장 이야기 잠깐 했었는데, 미리 좀 알아봐야 할 거 같아.”
“뭐 생각한 거라도 있어?”
“아니, 이런 건 여태 생각해 본 적도 없지. 근데 일단 서울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엄마도 가고 싶을 때 가기가 쉽겠지.”
아빠가 아직 살아 계시는데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미안한데 좀 알아봐 줄래? 내가 지금 정신이 없어서… 이럴 때일수록 내가 정신을 좀 차리고 있어야 하는데…”
“알았어. 걱정 마. 내가 좀 알아보고 있을게. 가서 좀 쉬어.”
“그리고 영정 사진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아빠 사진 중에서 아빠가 그나마 미소를 짓고 찍은 사진을 골라서 엄마한테 카톡으로 보냈다.
“영정 사진 준비해 놓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거 아빠 영정 사진으로 쓸까?”
엄마가 한참 동안 대답을 안 하더니 이야기한다.
“옛날에 아빠랑 엄마 사진 찍어 놓은 거 있어.”
“그 사진 있는 거 아는데 아빠 웃는 사진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래.”
엄마가 대답을 안 했고, 나는 침대로 가서 잠을 청해 본다. 엄마가 병원에서 자겠다고 했지만, 평소에 몸도 약하고 요 며칠 몸살 기운도 있는 엄마가 병원에서 밤까지 보내면 엄마도 병이 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에 내가 좀 쉬고 가서 교대를 할 생각이다.
한 시간쯤 누워 있었을까, 엄마 전화가 왔다.
“너희 지금 병원에 와야 할 거 같아. 아빠 숨 쉬는 게 이상해. 엄마 무서워 죽겠어.”
“알았어. 바로 나갈게.”
얼른 옷을 갈아 입고 성민이를 데리고 가기 위해 엄마네 집에 가 있는 사이 엄마 전화가 다시 왔다.
“오지 마. 이제 아빠 좀 진정이 된 거 같아. 좀 전에는 아빠 숨이 당장이라도 넘어갈 거 같았어.”
“지금은 별일 없고?”
“아까는 간호사가 약을 갖다 줬는데, 아빠가 못 먹겠다고 해서 간호사한테 코에 연결된 관으로 넣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어. 산소마스크는 자꾸 벗으려고 하네.”
아빠는 단지 답답해서 산소마스크를 벗으려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제 포기하고 놓아 버리고 싶은 것일까? 난 아직 아빠의 부재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눈물이 자꾸만 나왔다.
집에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마음이 불안해서 다시 준비를 하고 5시쯤 병원으로 가서 엄마와 교대를 했다.
“아빠, 저 다시 왔어요. 좀 어때요?”
눈물이 자꾸 나오는데, 아빠 앞에서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참으려고 애써본다.
“답답해.”
아빠 입술도 많이 말라 있었다. 간호사가 물은 약 먹을 때에만 먹으라고 했지만 지금 그런 지시를 따를 필요가 뭐가 있을까?
“아빠, 시원한 물 좀 드릴까요?
“그래. 물 좀 줘.”
나는 냉장고에서 식혜를 꺼내 종이컵에 조금 따라 아빠한테 드린다.
“아빠, 식혜를 드세요.”
다 드신다. 병원에서 물도 못 먹게 하니 얼마나 괴로우실까.
“네가 사다준 깨죽을 못 먹어서 어쩌니?”
지금 아빠가 이 순간에도 내 기분을 챙기고 있는 건가 싶어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아빠 손을 잡았는데, 아빠가 통증 때문인지 내 손을 꼭 잡는다. 산소마스크는 여전히 계속 벗으려고 했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한다.
“아빠, 여기 기저귀 있으니까 마음 놓고 여기서 그냥 하세요. 화장실 갔다 오면 숨차잖아요.”
그래도 아빠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고, 어딘가 안절부절못하는 듯하다. 간호사가 평소보다 자주 와서 혈압을 잰다. 그런데 아빠가 통증으로 계속 움직이니까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보호자분, 아버님이 산소마스크도 계속 벗으려고 하시니까 보호자 분도 힘드실 텐데 몸을 못 움직이게 고정을 시켜 놓는 게 어떨까요?”
“지금도 불편하실 텐데 몸까지 묶어 놓는 건 좀 아닌 거 같은데요. 산소마스크는 제가 잘 볼게요. 제가 같이 잡아 볼 테니 혈압 다시 재보세요.”
나는 아빠가 못 움직이게 잡고, 간호사는 혈압을 다시 재려 하지만 아빠가 다시 움직여서 실패를 했다.
“나 누르지 마.”
아빠가 나한테 말한다.
“환자분, 저희가 환자 분만 보는 게 아닌데 이러시면 어떻게 해요?”
아니, 저게 극심한 통증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환자한테 할 소리인가? 나도 회사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간호사의 고단함이 이해는 가지만 너무나 야속하고 화가 났다.
“지금 혈압 재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환자분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 자주 체크를 해야 해요. 잠시 후에 다시 올게요.”
잠시 후에는 혈액을 채취해야 한다고 다른 의료진이 왔다.
“혈관이 너무 안 보이네요.”
간신히 바늘을 꽂고 피를 뽑았으나 중간에 아빠가 움직여서 양이 충분치 않았던 것 같다.
잠시 후에는 다른 간호사가 약 들어가는 주사 바늘을 다시 꽂아야 한다고 들어왔다. 아빠가 움직이는 와중에 간신히 꽂긴 했지만 잠시 후 보니 피가 흥건하게 붕대에 배어 있었고 침대 시트까지 번져 있었다. 놀라서 간호사에게 달려가니 들어와서 다른 데에 주사 바늘을 꽂는다고 얼마간 씨름을 한다. 그동안 아빠는 계속 고통스러워하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아빠는 그동안 의사나 간호사에게 상당히 협조적이었고, 고맙다는 말도 했었고, 아프다는 말을 한 적도 없었다. 지금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면서 의료진에게 비협조적으로 보이는 건 아빠의 고통이 그만큼 심하기 때문인 건가 아니면 더 이상의 처치가 필요 없다는 걸 알고 거부하시는 건가?
잠시 후에 내가 나가서 간호사에게 말한다.
“제가 보기에 지금 아빠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엄마가 와서 같이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아시겠지만 안돼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한 분 밖에 출입이 안되세요.”
“지금은 좀 특수한 상황이잖아요.”
“저희도 병원 지시를 따라야 해서요.”
“일단 알겠습니다.”
나는 무력했다.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정말 하나도 없었다.
“아빠, 힘들죠?”
“아파.”
눈물이 솟구쳤다.
“아빠가 이렇게 아파서 마음이 너무 아파요.”
“너 이제 자. 빨리 자라.”
이 와중에도 아빠는 나한테 자라고 한다.
9시쯤 되었을까, 주치의 선생님이 나를 복도로 불러낸다.
“피검사를 계속하고 있는데 할 때마다 수치가 계속 안 좋아지고 있어요.”
“아빠가 지금 너무 많이 아프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가 진통제를 드리려고 하는데요.”
“예. 안 그래도 저도 진통제 부탁드리고 싶었어요.”
“근데 이 진통제를 쓰면 못 깨어나실 수 있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눈물이 계속 흘러나온다.
“진통제를 쓰면 고통은 없으실 텐데 그 상태로 못 깨어나고 돌아가실 수가 있어요. 저희는 가족분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벌어 드리고 싶어서 투석도 생각해 보고 했던 건데…”
“예? 오늘 아빠 보려고 동생도 외국에서 방금 도착했을 텐데… 그리고 이런 건 저 혼자 결정해서 말씀드리면 안 될 거 같고, 가족이랑 상의도 해봐야 할 거 같아요.”
“예. 맞아요. 가족분들 오시라고 해서 인사도 나누고 말씀도 하세요. 제가 들어오실 수 있도록 조치해 놓을게요.”
“그런데 진통제 맞으면 고통을 못 느끼신다는 건 확실한가요?”
“예. 고통은 못 느끼세요.”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병원에서 다 오래. 엄마네 가서 다들 데리고 와.”
“알았어.”
30분쯤 후 다들 도착했다. 나는 주치의 선생님한테 들은 이야기를 전달했다. 엄마와 남편은 아빠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니 약을 맞는 게 맞을 것 같다고 하고, 동생은 그 약을 맞으면 깨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데 안락사 아니냐면서 반대를 한다. 내가 아빠 손을 잡고 아빠 옆에 있는 동안 다시 주치의랑 밖에서 이야기하는 소리들이 들리고 결국에는 아빠 고통을 없애 주는 게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합의가 되었는지 진통제를 맞기로 한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주치의가 오늘을 넘기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고 했단다.
“여보, 많이 아파?”
“아파.”
아빠가 엄마 손을 잡는다.
“당신 보려고 성훈이 왔어.”
“어휴, 먼 데서 뭐하러 왔어?”
“아빠가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안 와요?”
“장인어른, 장모님이랑 지혜, 처남들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제가 잘 보살필게요.”
“여보, 안 아프게 하는 약 준대. 이제 곧 덜 아플 거야.”
“자고 싶어.”
진통제가 늦게 도착해서 10시 30분경부터 진통제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빠는 아까처럼 몸을 움직이지는 않는다. 숨은 여전히 가쁘게 내쉬지만 아직은 규칙적이다.
“아빠 좀 안정된 것 같으니까 누나랑 매형은 집에 가서 자. 매형은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난 안 갈 거야.”
“아빠 건강하셨던 분이라 금방 안 돌아가셔. 누나가 가서 쉬고 와야 내일 엄마가 집에 가서 쉴 수 있을 거 아냐.”
내가 가야 남편이 간다고 엄마와 동생들이 성화를 해서 남편과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눕긴 했지만 잠은 잘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