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이별
병원으로 일찍 갔다. 아빠는 여전히 호흡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담당 교수님의 회진이 있었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어르신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있으세요. 오늘을 못 넘기실 것 같습니다.”
억누르고 있던 눈물이 또다시 왈칵 쏟아진다.
“근데 지금 고통을 못 느끼시는 건 맞나요?”
“고통은 없으실 거예요.”
“근데 이 관들 좀 지금 빼주시면 안 될까요?”
“그건 좀 곤란합니다. 저희가 계속 상태를 체크해야 해서요.”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따뜻한 물수건으로 아빠 얼굴, 손, 발 등을 닦는 일 말이다. 아빠 팔에 피멍이 많아서 마음이 아팠고, 아빠 발이 너무 차서 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혈압이 떨어지면 피가 손 발까지 순환이 안돼서 손 발이 차진다고 한다. 아빠 발을 주무르면 좀 나아질까 싶어 한참을 주무르고, 로션도 여기저기 바른다.
“당신 좋겠네. 딸내미가 몸도 깨끗하게 닦아주고, 로션도 발라주고. 당신 몸에서 향기가 나네.”
“엄마는 집에 가서 좀 쉬다 와. 내가 있을 테니.”
“아빠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엄마가 어떻게 집에 가니?”
나는 마음이 계속 불안했다. 장례는 어떻게 할 것이며 아빠는 어디로 모셔야 한단 말인가? 나는 휴게실로 가서 일단 민준이에게 당장 한국으로 오라고 연락한 다음, 인터넷에서 수목장을 할 수 있는 곳을 몇 군데 알아보고 전화도 해본다. 그런데 수목장을 하는 경우 미리 나무를 선택해야 한다고도 하고, 이렇게 인터넷과 전화로만 알아보는 게 영 불안하기도 해서 둘째 이모부에게 전화를 한다.
“이모부, 저 지혜인데요, 죄송한데 제가 부탁을 좀 드리고 싶어서요.”
“어, 그래, 지혜야. 말해”
울음이 계속 나와서 말을 잇기가 힘들었지만, 아무도 없는 병원 복도로 옮겨서 이야기를 계속해본다.
“아빠가 곧 돌아가실 것 같아요. 근데 어디로 모셔야 할지 아직 정하지를 못했어요. 엄마가 수목장을 원해서 몇 군데 알아보긴 했는데 제가 이런 거 잘 몰라서 이모부가 민준이 아빠랑 같이 가서 보시고 조언 좀 해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그래, 그럴게. 걱정하지 마.”
“민준 아빠한테 연락드리라고 할게요. 정말 감사드려요.”
다급해지니 염치가 없어지는 것 같다. 평소에 잘 연락도 안 드렸었는데 이런 일을 부탁하게 되다니…
이제 장례를 치르려면 현금이 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은행으로 향한다. 지난 몇 년간 싱가포르에서 지내다 보니 보통 예금 통장에 잔액이 많지 않아서 정기 예금 통장을 해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데 은행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대기자만 20여 명 정도…
한참을 기다리다가 아빠 임종을 지켜야 할 것 같아서 병원으로 그냥 돌아온다. 이것저것 생각만 많고 마음만 바쁘지 제대로 마무리되는 일이 없는 것 같다.
병원에 돌아오니 아빠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여보, 지혜 왔는데, 지혜 목소리 들려?”
아빠가 왼손을 약간 든다. 아빠가 아직 의식은 있다는 건데,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마지막 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아빠 몸에 연결된 기계를 보니 맥박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후가 되자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숫자가 점점 작아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고, 아빠의 숨도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4시가 조금 안되었을 때 기계의 선이 직선으로 바뀌었고, 아빠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이렇게 아빠의 삶이 끝나 버린 것이다.
병원에서는 마지막 작별과 애도의 시간을 잠시 주었고, 그다음에는 아빠 몸에 연결된 관들을 모두 제거하겠다고 했다. 엄마가 지금 정신이 없을 것이기에 내가 뭔가 다음 처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오히려 정신이 바짝 들어서 눈물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일단 아빠가 가입해 놓은 상조 회사에 전화를 했고, 화장을 예약하려면 사망진단서가 있어야 한다고 하길래, 사망진단서를 요청했다. 병동 Station에서 수납을 먼저 하라고 해서, 얼른 수납과가 있는 2층으로 내려갔으나 아직 수납할 금액이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다음에 오라 했고, 사망진단서는 조만간 준비될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다시 병동으로 올라가 병원 부속 장례식장에 연락을 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때 마침 병원에 도착한 이모와 함께 옆 건물에 있던 장례식장으로 가서 계약서를 쓴 다음 다시 병동으로 돌아왔다. 내가 병동으로 돌아왔을 때 아빠는 병실에서 막 나와 옮겨지고 있었다. 나는 아빠와 제대로 된 이별도 하지 못한 것 같은데…
병실에 있던 물건들을 챙긴 후 모두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몇 가지 일 처리를 더 해야 했다. 매점에서 배달해 준 일회용 식기, 음료, 기타 용품들의 수량을 체크하고, 음식 주문 후 음식이 배달될 때마다 맞게 배달되었는지 체크하고, 제사 음식도 주문해야 했고, 제단 장식도 결정해야 했다. 영정 사진은 내가 고른 사진의 해상도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집에 있던 사진을 써야 했다. 그 사이 연락이 닿은 가까운 친척들이 장례식장에 도착을 했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경험이 있었던 외삼촌과 외숙모는 나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하셨는데, 정작 나는 정신이 없어서 귀에 들어오는 내용이 하나도 없었고, 앞이 캄캄해졌다. 아빠가 방금 전에 돌아가셨건만, 눈물을 흘리고 있을 잠깐의 틈 조차 없었다.
상조 회사 팀장님은 6시가 넘어 도착을 했고, 그 사이 다행히 늦은 시간이나마 서울시립승화원에 화장 예약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후에 상복을 받아 갈아입었다. 아빠가 가입한 상조 상품의 계약 사항을 체크했는데 아빠를 모시고 갈 리무진이 기본 사항이 아니어서 추가를 했다.
우리의 가장 큰 걱정은 장지에 대한 것이어서 상조 회사 팀장님께 그 부분에 대해 문의를 했고, 몇 군데 추천을 받기도 하고, 분양 담당자와 연결이 되어 장례식장에서 방문 상담도 받을 수 있었다. 그 사이 광릉에 있는 추모공원에 답사를 갔던 이모부와 민준이 아빠가 장례식장에 도착해 직접 가서 본 이야기를 했고, 어른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더니 평장이 낫겠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수목장은 화장 후 유골함을 나무 밑에 묻는 것인데, 나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크고 무성한 나무가 아닐 수 있고, 작은 나무일 경우 자라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엄마는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을 원했는데, 이모부와 민준이 아빠가 보고 온 곳은 수목장 부지에 해가 잘 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평장은 역시 화장 후 유골함을 땅에 묻는 것인데, 황토나 전분, 종이로 만든 유골함을 사용함으로써 결국에는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개념이라 했고, 나무 대신 비석으로 표시를 하는 방법으로 외관만 보면 서양의 묘지와 비슷해 보였다.
엄마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므로 엄마한테 다시 물어보았으나 엄마는 비용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돈은 일단 생각하지 마. 내가 20년 넘게 회사 생활하면서 돈을 벌었는데 엄마 아빠한테 그동안 제대로 해준 것도 없잖아. 이건 내가 부담할 거야. 돈 때문에 아빠 이상한 데로 모시면 내가 너무 슬퍼질 거 같아. 이미 민준이 아빠랑도 다 이야기했어. 돈 생각하지 말고 엄마가 하고 싶은 걸로 해.”
엄마가 민준이 아빠 손을 잡는다.
“지혜야 딸이라서 그렇다지만 내가 자네한테 너무 고맙네.”
그래서 평장을 하기로 하고, 평장은 미리 위치를 선택해야 장례 준비를 해놓을 수 있다고 해서, 그다음 날 민준이 아빠와 내가 경험이 많은 큰집 큰오빠와 함께 상조 회사 팀장님이 추천해 준 동두천에 있는 추모 공원과 오늘 이모부와 민준이 아빠가 보고 온 광릉에 있는 추모 공원 두 군데를 가보고 선택하기로 했다.
상조 회사 팀장님은 다음날 염을 할 때 처음부터 볼 것인지 아니면 옷을 다 입으신 다음 볼 것인지를 물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보면 나중에 너무 힘들 거라는 큰엄마와 큰오빠의 조언에 따라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기로 한다. 상조 회사 팀장님은 수위나 관의 꾸밈을 기본으로 할 것인지 업그레이드된 옵션을 사용할 것인지를 다시 묻는다. 다시 여러분들의 조언에 따라 옵션을 추가하지 않기로 했지만, 마음은 불효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착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