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이별
혼자 싱가포르 집에 돌아온 지 이제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청소도 열심히 했고, 퇴사도 금요일에 마무리가 되었다. 금요일 밤 집에 돌아온 이후부터 갑작스러운 피곤을 느껴 오늘 아침까지 침대에 계속 누워 있다시피 했더니 몸이 좀 개운해진 느낌이다.
아빠와 관련된 모든 일, 암 진단, 입원, 죽음 그리고 장례식이 불과 2-3주 동안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아빠가 마지막까지도 가족들한테 폐를 끼치기 싫어 일부러 놓아 버리고 일찍 가신 것은 아닌지, 아빠가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가 무지해서 시도도 못해 본 것은 아닌지, 아빠가 선산으로 안 간다고 해서 서울 근교에서 평장을 하긴 했지만 청개구리 짓을 한 것은 아닌지, 아직도 생각이 많고 마음이 괴롭다.
아빠는 처음에는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자식으로서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못 받고 돌아가시게 한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병원 수납과에 지불한 금액이 채 백만 원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딸로서 너무나 속상하다.
더 과거로 돌아가서 나는 왜 아빠한테 살가운 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던 것인지, 왜 한 번도 제대로 된 건강 검진을 예약해 준 적이 없었던 것인지, 왜 좀 더 자주 연락이나 용돈을 드리지 않았던 것인지, 아빠가 몸이 불편하다고 했을 때 왜 그 말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인지, 왜 아빠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인지, 여행을 모시고 간 적은 있었지만 돈을 아낀답시고 더 편하게 모시지 못했던 모든 일들이 기억나 너무나 많은 후회와 슬픔이 밀려온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중의 하나가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빠가 병원에 계실 때 은하에게도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부모님 아직 건강하실 때 잘 보살펴 드려. 안 그러면 나중에 후회해.”
예전에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Dear My Friends)가 주었던 메시지가 그렇듯 부모님은 우리를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할 수 있을 때 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도 부모님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우리를 위해 감내했던 수많은 희생들을 떠올리면 여전히 많은 후회가 남게 된다.
지금도 간간히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아빠 사진을 보며 아빠의 옛 모습을 그리워하고,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괴로운 마음에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한다. 얼마나 시간이 더 흐르면 이 슬픔이 사라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