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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konohime Jun 08. 2020

29. 아빠, 사랑해요.

아빠와의 이별

2020년 2월 8일 (토)


나는 원래 일주일 예정으로 한국에 왔었다. 그런데 아빠의 상태가 계속 안 좋아져서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19일에 돌아가는 일정으로 변경을 했었다. 하지만 이미 아빠는 돌아가셨고, 나는 14일 퇴사 예정이었고, 싱가포르 집도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야 했고,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려면 집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다시 내일 돌아가는 일정으로 변경을 했다. 엄마를 두고 가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지만 다음에 한국으로 돌아오면 이제 계속 근처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았다.


갑자기 내일 돌아가는 일정으로 변경 후 마음이 다시 다급해졌다. 민준이는 처음 예약한 대로 19일까지 한국에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민준이가 먹을 반찬을 좀 만들어 놓아야 했다. 병원에 다니는 동안에는 요리를 전혀 안 하고 시어머님이 보내 주신 김치만 먹었기 때문에 냉장고에 김치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오전에 급하게 장을 보고, 오후에는 돼지고기를 고추장에 재우고, 멸치도 볶아서, 우리 집에 반을 남기고 엄마네 집에 반을 갖다 주었다. 지금까지는 엄마가 우리한테 반찬을 만들어서 갖다 주곤 했는데, 이제부터는 내가 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엄마네서 동생네 식구들과 작별을 하고, 민준이 아빠는 동생네 식구들을 공항까지 바래다준다고 나갔다.


나는 다시 집에 와서 닭볶음탕을 하고, 시금치를 무쳤다. 오랜만에 집에서 고기반찬을 만드는 것 같았다. 지난 12월에 한국에 왔을 때 엄마네 집에 가서 내가 평소에 자주 하는, 할 때마다 민준이가 맛있게 먹어 주곤 하는 닭 데리야끼를 만들어 저녁을 차린 적이 있었다. 다른 반찬 없이 닭 데리야끼 만으로 차린 밥상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아빠가 딸이 만들어준 거라고 맛있게 잘 드셨었는데, 좀 더 그런 기회를 가지지 못한 것이 지금 많이 슬프고, 아빠가 돌아가신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산 사람은 또 먹고살겠다고 이것저것 요리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아빠한테 정말 죄송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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