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를 함께 한 작가
스물한 살 때였나, 대학 동기들과 밥을 먹다 '김연수'가 튀어나왔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읽어봤냐며. 거기 <달로 간 코미디언>에서 사랑에 빠지는 묘사를 해놨는데, 난 그 장면이 너무 좋다고. 파스타면을 말던 포크를 집어던지다시피 내려놓으며 소리 지르는 친구들 덕분에 김연수란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대체 사랑에 빠진 순간을 어떻게 묘사했길래. 서점 한 구석에서 평소라면 절대 집어 들지 않았을 형광 핑크색 표지를 넘겨보며 처음 김연수를 만났다.
어떤 날은 잡지에선가. 젊은 날 할 일이 없으면 8번 버스를 타고 서울시내를 무작정 돌았다고, 정릉에서 북악터널을 거쳐 신촌을 향하는 버스노선이었다는 김연수의 글을 발견하기도 했다. 읽다가 혼자 소름이 돋았는데, 왜냐하면 8번 버스의 노선이 내가 이십 대 내내 타고 다닌 버스의 노선과 같았기 때문이다. 허구헌 날 타던 버스였다. 재밌는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나눠진다는 신념에 따라 늦은 밤까지 시간을 낭비하던 때였다. 그래서 귀가할 때면 지하철보다 막차 시간이 더 여유 있는 153번 버스를 자주 이용했다.
누군가 내게 어쩌다 글을 쓰고 싶게 됐냐고 묻는다면 난 지체할 것도 없이 153번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말할 텐데 왜냐하면 멍하니 앉아 홍제동과 상명대를 지나 평창동과 정릉을 지나다 보면 잡생각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원여중이나 서울예고를 지나면서 옆 차선의 자동차 번호판을 바라보거나, 앞자리에 앉은 아저씨의 뒤통수를 보면서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생각하거나, 북악터널을 지나면서 갑자기 떠오르는 유년시절들의 추억들을 곱씹어보거나.
그런 둥둥 떠다니던 생각들 틈에서 샬레를 발견했다. 어떤 타이밍에 어떻게 놓였는지 모르겠지만, 발견했을 때는 이미 물에 젖은 솜에 강낭콩 같은 씨앗들이 파묻혀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 단상들. 인터넷에서 본 단어. 친구가 편의점에서 고른 캔맥주. 강의실 의자. 지하철에서 마주 앉은 사람이 신은 신발. 왜 다시 떠오르는지 알 수 없는 것들. 그런 것들을 들여다보며 싹을 틔우는지, 그대로 있다 죽는지 그저 계속해서 바라보던 귀갓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실험관찰을 기록하는 마음으로 그것들을 지켜보았다. 집이 가까워 버스에서 금방 내렸다면, 153번을 한 시간 넘게 타고 다니지 않았다면 그런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잉여의 시간을 어디서 얻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 이미 김천 유일 작가 김연수는 몇십 년 전에 이 길을 돌며 강낭콩을 키웠다니. 본의 아니게 따라쟁이가 돼버린 기분이 들기도 했다.
소름이 돋는 두 번째 경험은 다시 출간된 김연수 소설집 <스무 살>을 읽는 도중에 찾아왔다. 수록된 단편 중 <죽지 않는 인간>을 읽을 때였다. 주인공 재서는 버스에서 미아리 고개를 올라가는 서연(연락이 두절된 여자친구)을 보고 황급히 벨을 눌러 내린다. 서연을 지나쳐 온 버스 때문에 재서는 다시 그녀가 오고 있던 돈암동 방향으로 걸어가 보지만 결국 서연을 만나지 못한다. 혹시나 해서 더 걷다 마주친 터널을 지나가 보는데, 그곳에도 서연은 없다. 이미 그는 터널을 지나왔고, 다시 미아리 고개로 걸어간다 해도 서연을 만날 수는 없다.
미아리 고개는 강북 변두리 집에서 도심으로 나가기 위해 내가 매일같이 넘어 다녀야 하는 고개다. 왜 하필 서연은 돈암동 레코드 점에서 일했을까. 어째서 내가 매일 오가는 고개를 콕 집어 이십 년도 더 전인 1993년에 오갔던 것일까. 8번 버스를 타고 오가며 발견한 공간이었을까. 몇 해 전 여름, 고등학교 동창들과 대학로에서부터 이유 없이 집까지 걸었던 밤. 나도 그 터널을 지났다. 허름하고 좁고 끈적끈적한 터널. 주변의 운명 철학원, 신점, 사주팔자 간판들이 이유도 없이 무서워 발걸음을 빨리했던 곳. 애초에 작품과는 관계없이 실재하던 공간을, 마치 작품을 위해 만들어진 세트처럼 이야기 속에 녹여낸 작가의 노련함이라니.
재서가 터널을 빠져나와 보았던 운명 철학원 간판. 나도 같은 것을 보았다. 재서와 서연이 그곳에서 엇갈렸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나는 그 둘의 끝을 보고 있었다.
어긋나고, 엇갈리는 세상. 작품 속 94년 4월과 98년 1월이 교차하듯, 딱 맞아떨어지지 않고 뒤죽박죽인 삶의 정경. 재서는 서연을 만나기 위해 터널을 건넜지만 결국 대면하는 것은 운명 철학원 간판 같은 것이다. 삶은 그렇게 쉽사리 원하는 것을 내어주지 않는다. 꼭 문을 닫고 나서야 울리는 전화벨처럼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간다. 재서와 서연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재서는 93년 4월 11일 서연과 헤어진 후에도 어둡고 습한 곳에 들어갈 때마다 그 날의 미아리고개 터널을 떠올린다. 좌담을 위한 지하 복도나 고씨동굴을 지나며 그 날을 기억한다. 서연과 나누었던 대화들이 자신의 삶에 남긴 흔적들을 발견한다. 아버지와 J형 역시 죽었지만 여전히 재서의 삶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재현된다.
나 역시 재서와 서연을 떠올린다. 이십 몇 년 전에 작가 김연수는 짐작도 하지 못했겠지만, 이십 몇 년이나 지난 지금 길음동에 사는 어떤 스물아홉 살 먹은 여자 백수가 그 흔적들을 본다. 작가가 거닐며 보았던 미아리 고개를. 재서가 두 다리로 걸어 지나가버린 터널을. 돈암동에서 일했던 서연을. 2016년 6월 153번 버스를 타고 미아리 고개를 지나는 나의 공상 속에서 흔적들이또 다른 가지를 뻗어나가고 있다.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다 해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 사라진 것들이 남긴 ‘흔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김연수의 소설들이 말해줬다. 네 꿈도 허물어질 것이고, 네 사랑도 무너질 것이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나가버리고 사라져버려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해도. 분명 그것들은 이 세상 어딘가 흔적을 남겼을 거라고. 그의 흔적인 소설들을 보며 내가 위로받듯이 언젠가 네가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세상 어느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을 거라고.
스물아홉 지금까지. 그 모든 실패를 진심으로 괜찮다고 나 자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건 순전히 김연수의 소설들 덕분이다. 나의 이십 대를 ‘흔적’으로써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삶의 자세는 모두 작가 김연수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