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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Sep 05. 2022

호랭이는 뭐하나? 저 간나 안 물어가고!

엄마의 이름



오늘도 엄마는 내게 타박을 하고 욕을 쏟아냈다. 밥을 먹는 중이었다.

"저 간나, 턱이 빠졌나, 다 흘리고 자빠졌어!"

긴장하니 젓가락질이 더  안 된다.

다 먹고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가려고 일어났다. 겹쳐진 그릇이 흔들거린다.

"영숙아, 쏟겠다. 조심 안 하고, 응?"

엄마가 우려의 말을 내뱉는 순간 쇠그릇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방바닥에 떨어진다. 

우당탕탕 쨍그르르.

그릇에 묻은 밥알과 김치 국물이 사방에 틘다. 쉽게 멈추지 않는 그릇의 쇠음 소리와 엄마의 성난 목소리에 어깨가 더욱 움츠려 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곱 살 여름의 일이다. 수확한 보리를 찧으러 방앗간에 가려면 몇 십리를 걸어야 했다. 가서도 한참을 기다려 찧어야 해서 엄마가 방앗간에 가는 날은 아침 일찍 출발해 저녁이나 되어야 돌아왔다. 그날 엄마는 큰오빠와 이른 아침 보리를 싣고 방앗간으로 출발했다. 그러면 동생들 돌보는 건 내 몫이었다. 나는 막냇동생을 업어주기도 하고 소 여물을 주고 집안 잔일을 했다. 저녁이 되어가니 문득 엄마랑 큰오빠가 돌아오면 피곤하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좁쌀을 퍼서 박박 씻었다. 그리고 장작을 아궁이에 넣어 겨우 불을 피워 밥을 지었다. 힘은 들었지만 엄마가 돌아오면 잘했다고 예뻐해 줄 거라는 조금의 기대를 했다.


엄마는 돌아와서 밥을 한솥 해놓은 것을 보고는 화색이 도는가 싶었다. 그러나 밥 먹을 때 조밥 사이로 돌멩이가 하나, 둘 끊임없이 걸리며 이를 씹어대자 욕을 하기 시작했다.

"저 간나, 가만히나 있지, 아까운 좁쌀 다 못 먹게 됐네!"

"호랭이는 뭐하나, 저 간나 안 물어가고!"

큰 오빠가 내 편을 들어줬다.

"어머니, 골라서 먹으면 되죠, 얼마나 기특해요."

하고도 욕먹으니 억울하고 눈물이 났다. 내가 좁쌀을 조리채로 일어서 돌멩이를 골라야 되는지 어떻게 아느냔 말이다! 난 이제 일곱 살인데, 다시는 하나 봐라! 씨!


엄마는 큰오빠랑 막내 종희밖에 몰랐다. 쌀밥도 아들들만 주고 나랑 영자는 만날 꽁보리밥이었다. 오빠가 말 안 듣는다고 나를 때려도, 지밖에 모르는 종희 녀석이 갑자기 달려들어도 엄마는 동생이 때리면 얼마나 아프냐고, 다 큰 게 같이 싸우고 있느냐고 나만 야단을 쳤다. 


엄마는 어떻게 딸한테 호랭이한테 물어가라고, 잡혀먹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친모가 아니라 계모일지도 모른다. 내가 진짜 호랭이한테 잡혀가면 속 시원하다 할 것 같다. 분명 눈도 깜짝 안 할 것이다. 

세상에 아들만 최고인 집, 그게 바로 우리집이었다.







<엄마의 이름 앞 이야기>

1. 시작

https://brunch.co.kr/@miyatoon/20

2. 프롤로그-영웅 영숙이

https://brunch.co.kr/@miyatoon/37

3. 우리 영숙이는 선생님 시킬 거라......

https://brunch.co.kr/@miyatoon/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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