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아이
그때부터였을까.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수많은 순간들의 시작이.
나는 차 뒷좌석에서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어찌할 바를 몰랐고, 병원을 빠져나오던 남편은 다급히 병원으로 차를 돌렸다. 뒷좌석에 쳐다본 남편 얼굴에는 긴장으로 인해 송골송골 땀이 맺혀 흐르고 있었다.
병원에 다시 들어갔을 때는 이미 오후 6시를 넘겨 병원 업무 대부분이 마감되어 있었다. 상주하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도 없었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화장실로 가 속옷에 묻은 피를 휴지로 대충 정리하고 가방에 있는 생리대를 대는 것뿐이었다. 우리 모습이 영 딱했는지 간호사가 빈 병실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을 권했다. 바깥은 한참 금요일 저녁 퇴근 시간으로 차가 붐빌 시간이었다. 나와 남편은 불 꺼진 병원 침대에 기대 퇴근 러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둘 다 말없이 가만히 손을 잡고 있었다. 뱃속 아이가 이 험난한 과정을 버텨줄지 누군가에게 물을 수도, 미리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 막막했다.
“이 아이가 잘 살아 태어난다면 정말 강한 아이가 될 거야”
남편이 말했다.
남편의 말은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있다. 이 이후로 네가 견뎌내야 했던 험난한 과정들을 생각하면 아마 남편의 말이 마냥 틀린 말은 아니었을 거라 믿는다.
집으로 돌아왔을 무렵 어느덧 깊은 밤이었다. 곤죽이 된 심신을 비웃듯, 이후 출혈의 양은 걷잡을 수 없이 많아졌다. 피는 저항감 없이 몸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생리대 여러 개를 흠뻑 적신 피가 속옷까지 번지길 반복했다. 편히 누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아래로, 피보다는 무겁고 둔탁한 느낌의 무언가가 투둑 하고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속옷을 확인해 보니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핏덩어리 여러 개가 패드 위로 쏟아져 나와 있었다. 그 밤 그 새벽. 나는 지난해 봄의 기시감을 느끼며 기어코 그 순간이 다시 찾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다시 유산이라니. 다시 아이를 잃다니.
남편은 오랫동안 침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새벽 늦게 터벅터벅 침실로 걸어 들어온 남편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일기를 써 내려갔노라 이야기했다. 아마 자신만의 방법으로 아이에게 인사를 한 것 같았다. 남편은 조용히 내 옆에 누웠다. 말없는 남편의 옆얼굴은 아이를 잃은 상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제야 마주한 슬픔에 왈칵 눈물이 났다. 나와 남편의 아이를 잃었다. 우리 둘의 미래에 그림처럼 들여놨던 아이를 다시 하나하나 지워야 하는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배고프지 않아? 뭐든 먹고 기운 내자.”
새벽 5시. 남편은 뜨끈한 라면을 끓였다. 한국 식재료를 구하기 힘든 튀르키예에서, 라면은 우리 부부에게 생존을 건 전투 식량과도 같다. 배를 뜨끈하게 채우고 날이 밝길 기다렸다가 오전 일찍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아이가 유산이 된 것 같으니 병원에서 진료를 봐야 할 것 같다는 상황을 담담하게 전했다. 의사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우선 금식을 하고 병원으로 올 것을 당부했다.(이미 먹은 라면은 어쩔 수 없지.)
토요일 오전, 소파 수술을 대비하여 짐을 챙겼다. 갈아입을 옷과 몇 가지 세면도구를 챙긴 후 남편과 최대한 담대한 마음으로 병원에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그 전날 우리를 진찰했던 의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우선 그에게 간밤에 있었던 출혈에 대해 이야기했다. 의사는 초음파로 자궁 내 상황을 살펴본 다음 이야기하자 했다. 나는 비장하게 진료대에 누웠다. 초음파 기기가 몸 안으로 들어오고 눈앞 모니터에 자궁 영상이 떴다. 그리고 그곳에는 동그란 아기집이 선명하게 있었다. 태아의 심장은 작은 전구 같이 규칙적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렇다. 아이는 간밤의 피바다 속에서도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종종 바닥에 피를 쏟으며 병원을 찾아왔음에도 말짱히 출산하는 산모들이 있곤 해요. 우선은 축하합니다. 아이는 무사해요”
우리는 벙쪄서 한동안 아무 이야기도 나눌 수 없었다. 눈앞에 모니터에 비친 화면이 진짜인지 순간 판단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아이는 무사하다. 아이는 살아있다. 나와 남편은 기쁜 동시에 불안했다. 출혈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고, 다음 주에도 괜찮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지금부터 절대 안정하세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집에 누워만 계셔야 합니다.”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우리 어깨를 툭툭 격려하듯 치며, 의사가 말했다.
2023년. 새해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그렇게 본격적인 눕눕(임산부들 사이에서 침대나 병원에 누운 채로 지내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 생활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