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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Oct 06. 2023

글램 1

거짓말처럼 여름이 지났다. 며칠 전 까지만해도 더운 날씨에 소매가 짧은 티셔츠를 입고, 구멍이 뻥 뚫린 슬리퍼를 신었는데, 오늘은 선선하다. 선선하다 못해 춥기까지 하다. 손발이 시려 약속 장소에 가기 전 다시 따듯한 물로 샤워를 했다. 조금 과정해서 온몸이 얼어붙을 것 차가운 기운이 여기저기에 드리워져있다. 실내화를 신어도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모두 차단하기 힘들어 양말을 신었다. 손발이 차니 자주 손을 비비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옷장에 걸려있는 하늘 거리는 얇은 소재의 원피스와 블라우스가 며칠 사이에 계절과 어울리지 않은 듯 낯설어 보인다. 


가을옷으로 손을 뻗었다가 차라리 겨울 옷장으로 손을 옮겻다. 오후에 이렇게 싸늘한 정도이면 밤이 되면 더 추워질 것이 뻔했다. 금방 작년에 입었던 외투를 꺼내 입어 보고는 아! 너무 심했나 싶었으나 지금 이 기온에 매우 적절하다고 선뜻 몸이 먼저 말해주는 듯 포근하다.

외출복을 정하고 준비를 마치고 글램으로 향했다.


오늘 에프터 워크 장소는 글램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다. 생소해서 어디일까 궁금하긴 했었는데, 마침 단톡방 멤버 중 한 친구가 위치를 물어본다. 주소와 지도가 있어도 나는 이렇게 사람냄새나는 질문이 좋다. 그는 오늘 약속에 참여를 못함에도 호기심에 위치를 알고 싶다고 했다.

“해밀턴 호텔 뒷편이야.” 질문을 본 다른 멤버의 대답이다.


‘아! 그래 이태원에서 기준은 역시나 해밀턴 호텔이지.’ 단톡방에서의 대화를 읽으며 혼자 중얼거린다. 해밀턴 호텔은 이태원의 랜드마크이다. 많은 사람들이 해밀턴 호텔 앞으로 약속을 잡고는 한다.


글램으로 가는 길은 지내는 곳에서 가깝다. 2번 버스를 타고 녹사평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처음부터 걸어도 무난하지만 약속 시간이 충분히 남지 않았거나, 하이힐을 신어야 하는 날에는 성가신 거리이긴하다.


오늘은 하얀색 겨울 외투에  표면이 매끄러운 약간의 광택이 나는 검정색 비건 가방을 들었다. 글램 앞에서 갈아신을 하이힐과 파우치와 지갑을 넣었다. 걷기 쉬운 단화를 신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잠시 뒤 귀여운 마을버스를 타고 이태원으로 향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요가명상 센터이다. 내일있을 수련+회의 시간을 변경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약속 장소로 가는 내내, 통화가 이어졌다. 계획했던 일정을 바꾸는 일은 심적으로 그리 달갑지는 않다. 핸드폰으로 대화를 이어가며 각자의 접점을 찾는 도중에도 나는 바닥에 떨어진 은행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느라 바빴다. 인간은 생존에 관련한한 멀티테스크가 가능한 걸까. 별 생산적이거나 위협적이지 않은 순간에서도 나는 잘도 기지를 발현하는 듯 도로에서 춤을 추는 오른쪽 왼쪽, 갈지자로 걸으며 지독한 은행 냄새를 어떡하든 멀리하고 있었다.


목요일 이태원의 밤거리는 한산했다. 9시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후 상권이 회복되지 않은 여파인가. 이전에 보였던 목요일밤 Fever는 보이지 않는 듯하다. 통화를 끝내고 넓은 인도를 걷다 보니 이마트 편의점 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저 골목에서 왼쪽으로 꺽어 올라가면 글램이 나온다. 골목은 참사로 세계인에게 알려진 곳이다. 골목 입구에 들어서자 여전히 뭉클하고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이마트는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다. 맞은 편 벽에는 여전히 수많은 포스티잇이 정성스레 붙여져 있다. 낮과 밤이 달라서일까. 밤이 되니 그날의 흔적이 더욱더 진하게 다가온다. 작년 이맘때와 같은 10월이라 그렇겠지. 가을이라 그렇겠지. 천천히 바닥을 보며 골목을 걸었다. 수많은 영혼들의 명복을 빌며 걷자 어느덧 글램 앞에 서있는 나를 발견했다.


글램은 내가 자주가는 단풍나무집 옆에 있었다. 매번 지나치고도 몰랐나? 바로 옆의 프러스트는 오래 전부터 있어서 기억은 하는데 말이다. 아무튼 이태원에 산다고 이태원의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니까… 글램에 도착하자 내부는 이미 먼저 도착한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입구에서 손님을 맞고 있는 친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주위를 살폈다. 군중 속에 먼저 온 얼굴들이 몇몇이 있다. 프랑스 커뮤너티에서의 활동을 재개하고 새로 만난 이들과 그전에 알고 지낸 친구들이다.  친구는 우리 모임의 자리가 예약된 곳을 알려주고는 다시 새로오는 손님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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