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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Oct 13. 2020

넘버쓰리

  우편물이 도착했다. 엄마가 다니는 절에서 부쳐온 것으로 봉투 안에는 부적 세 장이 작고 앙증맞은 봉투에 각각 넣어져 있었다. 엄마는 입춘부적은 기울여서 양쪽에, 삼재부적은 떡하니 한 가운데에, 꼭 현관문에 붙이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그러나 해가 지고 어둑해질 때 현관문에서 노랗게 빛을 발하는 부적을 보노라면 왠지 으스스하고 소름이 돋는다. 나를 지켜줄 것이라지만 머리 셋 달린 매가 눈을 부릅뜨고 있어 어색함보다도 무서움이 먼저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올 해 마흔 셋. 또다시 삼재에 들어섰다. 사람이라면 아홉 해마다 피해갈 수 없는 운세가 삼재다. 그동안은 남을 범해도 안 되고 모든 일에 꺼리고 삼가는 일이 많다. 그렇기에 삼재는 인생의 쓰나미와 같은 것이라고 할 정도로 고난이 닥쳐오는 시기라고 한다. 걸을 때조차 조심하라던 엄마 말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이미 올 초에 발목을 삐끗해 한참이나 반깁스를 하고 절뚝거리며 다녀야만 했다. 세 해 동안 들어서고 눕고 나간다는 삼재. 숫자 3과의 인연이 운명처럼 또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선도 보지 않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로 태어났다. 노래를 들어보면 건넛마을에 최 진사의 셋째 딸은 예뻐서 수많은 남자의 애간장을 태웠다는데, 나는 최 씨가 아닌 송 씨여서 그런지 예쁘지도 않고 근처만 얼쩡댈 뿐 들이대는 남자들은 별로 없었다. 남편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년의 공을 들여야 했으니 셋째 딸도 모두 예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증거인 셈이다. 셋째 딸이 예쁘다는 속설을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확립한 이론은 없을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지만 가끔 거울을 볼 때면 백설공주의 계모처럼 예쁘다고 혼자 중얼거려본다. 언제나 지금 같은 경우의 예외가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학교에 다닐 때는 키가 작아서 늘 3번을 고수했다. 학번이 1403, 2303, 3103 등으로 생일 순으로 번호를 붙였던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여섯 해를 내내 그리 보냈다. 번호를 정하기 위해 복도에 주욱 줄을 섰을 때 몰래 중간 즈음에 서볼라치면 어쩌면 그리도 콕 집어내는지 시력 좋은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꿀밤을 맞고 결국 세워지는 순번은 다시 세 번째. 맨 앞줄에 앉아있기에 졸음을 참지 못하고 꾸벅거리다가 야단맞기 일쑤였고, 수학시간에는 늘 만만한 3번이 나가서 칠판에 직접 풀이를 해야만 했다. 알레르기처럼 숫자에 약해서 수학이란 과목만 보면 고개를 젓던 나는 늘 손바닥이 남아나지 않았다. 왜 항상 세 번째인지, 찰거머리처럼 내게 찰싹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숫자 3이 미치도록 싫었다. 그나마 내 앞에 나보다 키 작은 녀석이 ‘두 명씩이나’ 있다는 것으로 위안 삼아야 하는 슬픈 학창시절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넘버쓰리의 비애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리굳히기를 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하고는 아들아이 하나만을 두어 결국 세 식구가 되었다. 이제 우리 세 식구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시답잖은 것들이 제동을 걸었다. 우선 살림살이를 ‘새로’ 장만할 때마다 생겨났다. 그릇을 파는 가게에서는 4인용 세트를 기본으로 팔고, 이불을 파는 곳에서는 1인용이나 2인용이 기본이다. 어디에도 3인용이 기본인 곳은 없었다. 홧김에 서방질 한다더니 생각지도 않던 둘째를 낳을 뻔했다. 더하기 빼기를 해보면 어차피 셋이 되긴 하지만 그럴 때는 3이 나를 버리는 것 같아 서운하기까지 하다. 오붓하게 우리 세 식구가 한 이불에서 살 부비며 자는 것이 이리도 힘들 줄이야.


  밥통에서 밥을 푸다가도 뜬금없이 내가 또 세 번째라는 생각을 한다. 밥을 풀 때마다 언제나 내 밥을 제일 마지막에 뜨게 되는 것이다. 고슬고슬하고 밥알의 모양이 좋은 위쪽에서 남편과 아들아이의 밥을 차례로 푸고 내 밥그릇에는 언제나 주걱의 등을 쓱쓱 긁어 담게 되어 이지러진 밥알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어화둥둥 내 사랑 남편은 언제나 넘버원이요, 하나 있다고 애지중지 했더니 자식 녀석이 넘버투를 꿰차고 앉아버렸다. 덕분에 나는 자연스레 넘버쓰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나는 제자리에 선 셈이지만 우리 색시가 제일이라는 남편의 한마디로 슬쩍 넘버투에 욕심이 인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태초에 풍백 우사 운사와 더불어 삼천의 무리를 이끌고 환웅이 이 땅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숫자 3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시작되었다. 꼭 그 숫자에 얽매이기라도 한 것처럼 왕은 세 명의 호위병을 세웠고, 세 명의 정승과 그 배수인 육판서를 두어 정사를 돌보았다. 백성들이라고 다를 게 무엇인가. 초가삼간에서 아침 점심 저녁의 세 끼를 먹으며 살아가고, 더운 여름날을 초복 중복 말복으로 나누어 삼복더위를 이겨냈으며, 무엇이든 삼세번의 도전으로 일구어내는 결과에 흡족해하고, 미운 이가 있을 때는 참을 인忍자를 네 번도 아니고 꼭 세 번을 써가며 참아내고 견뎌냈다. 또한 급할 때는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 것을 잊지 않았다.


  3과의 인연은 생과 함께 시작된다고도 할 수 있다. 삼성각에서 극진히 공을 들여 삼신할머니가 점지해주신 귀한 삼대독자를 낳게 되면 탯줄을 석 자 실로 잡아맨 다음, 사흘 후에 태를 사르고 아기에게는 배내옷을 입혔다. 탯줄을 끊고 나오면 세 그릇의 밥과 국을 바쳐 삼칠일간의 금기를 행한다. 그 기간 동안은 햇곡식을 담아서 한지로 봉하여 안방의 아랫목 시렁 위에 삼신단지를 모시는데 삼신자루라고도 하여 백지로 자루를 지어서 그 안에 쌀 세 되 세 홉을 넣어 안방 아랫목 구석 높직이 매달아놓기도 하였다 한다. 죽을 때마저도 삼일장을 치르니, 3은 생을 온전히 지배한다고도 할 수 있다.  삼, 三, 3은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을 가득 메운 숫자가 아닐까 싶다.


  강남에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음력 삼월 초사흘 삼짇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날에는 꼭 빛 고운 진달래로 화전을 한 번 빚어봐야겠다. 우리 세 식구 옹기종기 모여 맛있게 먹어볼 참이다. 마흔셋, 삼재, 그리고 삼짇날. 그날은 늘 3과 함께였던 내게 왠지 딱 들어맞는 운명의 날일 것만 같다. 맛난 화전 먹고 삼재의 그늘을 벗어나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삼천갑자를 살았다던 동방삭처럼 오래오래 해로할 꿈을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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