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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이 Oct 22. 2022

실수는 여행을 싣고

준비하기 2단계-교통편


오미크론이란 무엇인가?


증상은 약하다곤 하나, 아직 무엇인지 모르는 미지의 변종은 여행에 대한 결심을 단념시켰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설렘은 사라지고 머릿속엔 어떻게 항공권을 취소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한편 완벽한 줄 알았던 에티하드 항공사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바로 무료 취소가 안된다는 것이었다.

듣기로는 같은 중동항공사인 에미레이트를 포함한 몇몇 항공사들은 코로나 이슈로 항공권 무료 취소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에미레이트는 에티하드와 비슷한 수준의 코로나19 여행자 의료보험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에미레이트가 아닌 에티하드를 선택한 것이 나의 첫 번째 실수였고, 취소에 애를 먹어야 하는 것이 그 대가 중 하나였다.



실수를 곱씹으며 머리를 쥐어짜던 중,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보통 항공사에서 구매한 지 24시간이 안된 항공권은 무료 취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항공권을 구매한 지 20시간.

남은 것은 4시간. 항공권 취소를 시도했다.



여기서 나의 두 번째 실수가 드러난다.

바로 항공권을 항공사에서 직접 구매한 것이 아니라 대행사를 끼고 구매한 것이다.


대행사 상담원은 취소의 경우 수수료가 일인당 25만 원이고, 무료 변경은 4일 전까지 가능하다고 안내한다.

구매한 지 24시간이 지나지 않은 경우 무료 취소가 가능하지 않냐고 문의하자 알아보고 연락을 준단다.


희망을 가졌다.


그래! 타이밍이 안 좋았다.

오미크론이 뭔지 파악하고 나서, 내년 봄쯤에 가면 되지.

그러나 대행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


초조해하던 그때, 24시간이 되기 한 시간 앞두고 연락이 왔다.

대행사에서 구매한 항공권은 항공사에서 판매하는 일반적인 항공권과 달라 일반 항공권과 다른 규정을 적용하기 때문에 24시간 이내 무료 취소가 안 된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이지? 말이 되는 말인가?


어쨌든 그랬다.


항공사 사이트에 내 예약번호를 검색해 취소하려 해도 대행사에서 구매한 표라서 그런지 적용이 안됐다.

그렇게 24시간이 지났다.

끝장이다.



총합 75만 원이라는, 한 명의 항공권보다 비싼 수수료를 물고 여행을 취소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웠고 내 실패를 인정할 수 없었다.


실수의 대가는 여행으로 이어졌다.

지금이든 아니든, 우리는 여행을 해야 한다.



남은 선택지는 여행을 미루느냐, 그냥 가느냐 둘 중 하나다.

정말 고난의 시간이었다.

지킬 앤 하이드가 따로 없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뀌었다.

그냥 가! 미뤄? 가! 미뤄? 가! 미뤄?

한 친구와 이야기할 때는 그냥 가는 걸로, 다른 친구와 이야기할 때는 안전하게 미루는 걸로 말이 바뀌었다.

이쯤 되니 나도 내가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때는 '그래, 미루는 게 맞지' 하다가도 '지금 못 가면 영원히 못 갈 것 같다'라고 한다.


반면 동생은 '그냥 가자'주의였다.

대신 미룰 거면 자기는 자격증 시험 일정이 있으니 내년 5월로 미루자고 한다.

내년 5월? 그때까지 내가 미취업 상태이길 바라는 것인가?


고약하다.



나는 알고 있다.

날이 가까워질수록 올라가는 교통비와 숙박비, 줄어드는 숙소 선택권에 고통받을 것을 말이다.

그래서 초조하고 불안해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3일간의 격렬한 고민 끝에, 그리고 불안해하며 고통받은 것이 억울해서, '지금 못 가면 영원히 못 간다'의 의견에 힘을 실어 강행하는 것으로 결정 났다.



그렇게 출국일까지 7일, 그리고 내 퇴사 날까지 4일.

여행 준비의 두 번째 단계, 숙소 및 교통편 예약하기가 시작되었다.





준비에 앞서 파티원들의 MBTI를 공개한다.


나 : INTJ (내향적 / 직관형 / 사고형 / 판단형) - 용의주도한 전략가

엄마 : ISFP (내향적 / 감각형 / 감정형 / 인식형) - 호기심 많은 예술가

동생 : ENTP (외형적 / 직관형 / 사고형 / 인식형) - 뜨거운 논쟁을 즐기는 변론가


MBTI가 성격을 백 퍼센트 설명해 줄 순 없지만, 특성을 쉽게 설명하자면 그렇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완연한 봄에는 봄꽃을 즐겨야 하며, 무더운 여름에는 그늘로 향해야 하며, 서늘한 가을에는 가을의 정취를 느껴야 하며, 하얀 겨울에는 눈을 맞아야 하는 사람이다.

엄마 말에 따르면 놀새고, 친구들 말에 따르면 역마살이 꼈다.

노는 것이, 아니 노는 것을 계획하는 것이 좋다.


다시 MBTI 관점에서, 나는 극강의 J로 계획을 짜는 것을 즐기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편이다.

한 때 계획 짜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행 계획을 세워주는 사업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요즘은 인공지능이 다 해준다고 한다.


각설하고, 그렇다. 나는 계획을 짜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게 여행 일주일을 남기고, 그것도 퇴사준비를 하면서 급박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이 시기에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일주일 동안 새벽 3시 이전에 자본적이 없다.

여행에 관련된 예약들을 하랴, 퇴사 선물 고르고 주문하랴, 자료들 정리하랴, 편지 쓰랴, 정말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누구와 함께 계획을 짰을까?


먼저 엄마는 아니다.


엄마는 유럽도 처음이고, 계획이라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엄마가 궁금한 것은 그저 경비뿐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파티원인 동생이 있다!

나는 동생에게 작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한 사람이 1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치자.

나는 1이고 엄마는 0이다.

그렇다면 동생은 0.8 정도는 해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사람은 함부로 기대하면 안 된다. 동생도 0이었던 것이다.


여행 계획을 함께 짜기 위해 마지막 휴가를 털어 썼다.

약속한 시간에 전화를 걸자마자 약속이 있다고 떠나며 0만큼의 역량을 보여준 동생!

그렇게 홀로 교통편과 숙박을 예약하기 시작했다.




교통편을 먼저 예약하자.

계획했던 루트는 이러하다.



개인적으로 유럽 내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먼저 공항과 시내가 너무 멀다는 점, 그리고 내 표를 보고 알아서 내 자리를 찾는 것이 끝이 아니라 체크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 그리고 항상 탈 때마다 수화물 검사를 할까 봐 두렵다.

저가항공사는 수화물로 먹고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화물 기준이 빡빡하다.

그래서 매번 수화물 무게에 대한 벌금을 낼지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에 저가항공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시 간의 이동은 최대한 기차를 이용할 계획이었다.


특히나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정말 타보고 싶었다.

영화를 본 것도 아니고, 출발지도 스위스는 아니었는 데다가 침대칸을 예약할 예정이었지만,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인생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출국까지 일주일.

그 뜻은 이미 교통편의 가격이 오를 만큼 올랐다는 뜻이다.

스페인에 국영기차가 있긴 하지만, 한국처럼 정찰제가 아니기 때문에 가격이 하늘을 뛰었다.

한 사람당 15만 원 정도를 내야 겨우 타는 수준이라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


유럽의 기차 편은 다 꿰뚫고 있는데 가격 때문에 탈 수 없다니!

결국 기차보다 합리적인 가격대인 비행기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여행 리스트에 있는 도시 중 하나인 ‘세비야’는 기차도 비행기도 모두 다른 도시 교통편 대비 두배의 가격이었는데, 짧은 고민 끝에 그냥 세비야를 빼버리고 다른 도시의 일정을 늘리기로 했다.



그리고 기대하던 리스본행 야간열차!

야간열차는 하루치의 숙박비도 포함하니, 가격이 나가더라도 부담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각오에 무색하게도 코로나로 인해 야간열차는 모두 운행을 중단한 상태였다.

결국 리스본행 야간열차 대신 또다시 비행기를 예약하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포르투갈의 국영기차는 아직 탑승일까지 시간이 남아서 그러지 적당한 가격대로 예약할 수 있었다.



문제는 포르투에서 파리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이 구간은 비행기뿐이 선택지가 없었는데, 정말 아주 비쌌다.

1인당 30만 원이 훌쩍 넘었는데, 세 명이면 거의 100만 원이었다.

한국에서 파리를 왕복하는 비행기표를 68만 원에 구매했는데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항공편 예약 어플에서 포르투에서 갈 수 있는 프랑스의 도시들을 찾아보았다.

프랑스를 넘어 벨기에, 독일까지 알아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적당한 항공편이 없었다.


실의에 빠져있던 그때, 2만 원대의 파격적인 가격으로 갈 수 있는 생소한 이름의 지역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Lille.

릴이라고 부르는 이 도시는 벨기에와 프랑스의 국경 쪽에 위치한 프랑스의 도시로, 기차나 버스로 3시간 정도면 파리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90만 원을 10만 원대로 훅 줄이는 효과!

내 인생의 구원자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릴이 일정에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동이 가능하고, 저렴한 가격대의 교통편을 잡다 보니 일정도 이렇게 바뀌었다.

<여행 일정>

바르셀로나 3박 4일 - 마드리드 4박 5일 - 리스본 2박 3일 - 포르투 2박 3일- 릴 1박 2일 - 파리 5박 6일


파리에 오래 있지 않으려 했는데, 파리에서 가장 오래 있게 되었다.

역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무사히 교통편 예약도 해치웠겠다, 이제 남은 복병은 숙소 예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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