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에서 넷째 날
좋은 것은 쉽게 변한다.
혜택이 좋은 카드, 저렴한 통신 요금제, 취준생을 위한 면접 수당 등 좋은 것들은 항상 어느샌가 사라지거나 혜택 수준이 낮아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애용하던 혜택 좋은 체크카드가 발급 중단이 되었다.
내가 원치 않아도, 좋은 것은 언젠가 변하고 만다.
우리 엄마는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주차를 할 때도 ‘내 자리는 있을 거야’, 시험을 볼 때도 ‘나는 합격할 거야’라고 했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의 그런 태도가 마치 주문 같아서 좋았다.
조금 크고 나서는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 안 되었을 때의 실망감과 창피함을 느끼기 싫어서 괜히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때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엄마의 긍정적인 태도를 이해 못 할 때가 많았다.
부정적인 감정이 나 자신을 갉아먹는 것을 알아차릴 즈음에는, 속으로 엄마의 긍정적인 주문을 되뇌곤 했다.
긍정적인 태도가 부정적인 것보다는 좋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역시 좋은 것은 쉽게 변한다.
오늘은 마드리드의 메인 일정이라고 할 수 있는 ‘톨레도&세고비아 투어’를 하는 날이다.
마드리드의 근교 도시인 톨레도와 세고비아를 가는 것도 좋지만 오늘 더욱 설레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하루 종일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찾아보지 않아도 되는 가이드 투어라는 점이다.
게다가 어제 유창한 스페인어로 내게 감동을 주었던 동기 언니와 함께 할 생각을 하니 안정감도 들었다.
투어 미팅 시간이 이른 아침이라 다들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다.
세수를 하고 나온 엄마가 유럽은 물도 좋다며 감탄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갱년기를 겪으면서 얼굴 가죽이 너무 두껍고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유럽 물로 씻으니 피부가 아주 부드러워졌다는 것이다.
석회수에 어떤 이로운 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안 좋다는 것보다 좋다는 게 더 좋지라고 생각했다.
오늘 투어 인원은 몇 명이나 될까?
그동안 마드리드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마드리드에서 참여했던 야경투어, 프라도 미술관 투어 모두 우리 일행뿐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원이 적으면 얼마나 여유롭고 넉넉하게 투어 차량을 탈 수 있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을 미팅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도착해보니 오늘 투어의 인원은 가이드를 포함해 총 9명이었고, 9인승 소형벤을 꽉꽉 채워 출발했다.
‘세고비아 알카사르’, 일명 백설공주 성에 도착했다.
알카사르는 성 또는 궁전이라는 뜻으로, 세고비아 알카사르는 세고비아의 성이다.
백설공주 성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이유는, 세고비아 알카사르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성의 모티프였기 때문이다.
세고비아 성에 들어가기 전에 백설공주 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성의 뒤편으로 향했다.
비가 왔던 것인지 잔디가 조금 축축했지만, 잘 관리된 잔디 옆의 산책로에서 조깅을 하는 사람도 있고 평화로웠다.
멀리 보이는 성도 멋졌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점은 붐비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고비아는 좋은 도시다.
뒤를 보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성 앞으로 가본다.
세고비아 성은 침입해 있던 이슬람교도를 몰아내고 스페인이 다시 탈환해 증축한 것으로, 건축양식이 이슬람과 가톨릭 양식이 혼합되어 독특한 느낌을 준다.
반대편은 절벽이고, 주변에 물이 흐르는 데다가 정문이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세고비아 성은 적의 침입을 막는 요새의 역할을 했다.
한때는 왕이 살던 궁전이었다가, 감옥이었다가, 포병학교였다가 이제는 관광객들이 들어가 볼 수 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그렇기에 세고비아 성 내부로 들어가면 왕이 살았던 흔적,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흔적, 그리고 포병학교의 흔적 모두를 찾아볼 수 있다.
세고비아 성 내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루 추위다.
정말로 추웠다.
죄수들은 그렇다 쳐도, 옛날 왕과 학생들은 이런 추위에서 어떻게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생활했을까?
왕의 침실에는 추위를 막기 위한 태피스트리가 걸려있었지만, 그럼에도 추웠다.
추위에 약한 엄마와 동생은 몸을 덜덜 떨었다.
가져온 손난로를 건네었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손난로는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태피스트리 : 다채로운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 중세 성의 돌 벽에서 나오는 냉기를 차단하고, 보온의 효과가 있다.
대신 성 외부는 오히려 햇빛 덕분에 따뜻했다.
잠깐 주어진 자유시간에 기념품샵에 들어가 몸을 녹였다.
기념품샵에서 판매하고 있는 어린이 공주옷을 동생과 서로 입으라며 실랑이를 하다 보니 자유시간이 끝났다.
세고비아에 오면, 세 가지를 해봐야 한다.
첫 번째는 세고비아 성을 방문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천 년의 역사를 지닌 수도교를 보는 것이다.
수도교(水道橋)는 말 그대로 물의 길이라는 뜻이다.
높은 산에서 마을까지 물을 옮기는 역할을 한다.
다리의 끝과 끝의 높이 차이가 너무 크면 물이 가파르게 떨어져 문제가 생기고, 너무 작으면 물이 고여 썩는 문제가 생긴다.
수도교의 끝과 끝의 높이 차이는 고작 몇 센티 정도인데, 그 몇 센티가 물이 적절한 속도로 흐르게 한다.
이천 년 전에 접착제 하나 없이 이렇게 정교한 기술을 선보이다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시 세상에는 천재가 많다.
그렇게 다시 포토타임이 시작되었다.
각양각색의 포즈를 취하는 동생의 사진을 찍어 주는데, 그 모습을 보며 동기 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동기 언니와는 비슷한 시기에 여행 준비를 하며 다사다난함을 함께 공유했던 사이였다.
우리가 함께 세고비아에 서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가!
쉽지 않았던 일들을 추억하며 둘 다 감상에 빠졌다.
다만 문제는 우리끼리 속닥이며 키득거리는 모습이 타인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을 얼추 찍고 자리를 이동하는데 엄마와 동생이 휑하니 떠나버렸다.
뒤늦게 쫓아가니, 동생이 왜 그렇게 친구와 뒷담을 하냐며 따져 물었다.
엄마도 동생의 말에 동의하는 듯 침묵하며 이를 관전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려는데, 혼자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남한테 가족 욕을 하냐는 동생의 말에 열이 빡 올랐다.
어디서 짜증을 내는 거지?
그렇게 쉬운 일이면 네가 좀 하지 그랬냐는 내 말에 동생은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또 저런다, 또 저래.”
나는 동생에게 못 하는 거면 입을 열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만약 투어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동생과 엄마를 두고, 나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가이드 투어였고, 서로 기분이 상해도 투어는 계속된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섭섭함만 적립한 채 투어 일행을 쫓아갔다.
한편 가이드는 원래 일정은 세고비아와 톨레도만 방문하는 것이지만, 소규모 투어인 만큼 일정을 조정해 ‘전몰자의 계곡’에 들릴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완전 있었다.
한 번 나왔을 때 뽑을 수 있는 것은 다 뽑아야 한다.
최대한 많은 곳에 가서 많은 것을 경험하면 좋은 일 아닌가?
우리 팀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아까의 섭섭함은 묻어두고 동생과 엄마에게 물었다.
동생은 별 생각이 없었고, 엄마는 좀 그렇다고 했다.
“변하는 게 싫어.”
예상하지 못했던 부정적인 대답이 나와 당황스러웠다.
엄마를 설득해보려고 하는데, 엄마가 버럭 짜증을 냈다.
“네 마음대로 해. 언젠 안 그랬니?”
그래, 내 마음대로 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의 일정에 전몰자의 계곡이 추가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세고비아에 오면 세 가지를 해보아야 한다.
첫 번째는 세고비아 성을 방문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천 년의 역사를 지닌 수도교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아기돼지요리를 먹어보는 것이다.
아기돼지를 통째로 구운, 조금 잔인할 수 있는 이 요리는 세고비아의 전통음식이다.
우리는 가이드의 추천을 받아 몇 년 전 프로그램인 ‘꽃보다 할배’에 나왔던 오래된 역사를 가진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오래된 만큼 옛날 건물 안이라 데이터도 잘 안 터지지 않았고, 메뉴판은 온통 필기체라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도대체 뭐가 아기돼지란 말이냐!
안 터지는 핸드폰을 붙들고 메뉴판을 노려보는데, 합석한 동기 언니가 가게 직원을 불렀다.
그리고는 스페인어로 직원에게 메뉴 추천을 받았다.
우리는 추천받은 아기돼지요리와 버섯요리를, 그리고 스페인산 반건조 소시지인 초리소 요리를 주문했다.
역시 음식은 다 맛이 있었다. 유명한 가게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특히 아기돼지요리가 양이 꽤 많아, 주문이 잘못 들어가 2인분이 아니라 6인분 나온 것이 아니냐며 의심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시지를 가장 먼저 먹은 엄마의 첫마디는 ‘짜서 못 먹겠다’였다.
우리 집에서 식탁 위에서 볼맨 소리를 하는 담당은 주로 아빠였다.
그런데 엄마가 나의 지인이 애써 주문한 메뉴를 먹고 굳이 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
심지어 주문을 하면서 분명 소시지는 짤 것이라고 경고를 했는데도 말이다.
굳이 다른 싱거운 음식들 말고 소시지를 먼저 먹는 이유를 모르겠다.
한숨이 나왔고, 눈치가 보였다.
그러나 동기 언니는 친절하게 말했다.
“조금 짜죠? 그래서 맥주랑 먹나 봐요. 이 버섯요리는 안 짜니까 한번 드셔 보세요.”
저런 대응은 대상이 다른 사람의 엄마이기에 나올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저렇게 대응하지 못한 내가 미성숙한 것일까?
버섯요리를 먹은 엄마는, 이건 꽤 괜찮다고 했다.
짜다는 얘기는 그만 듣고 싶다, 그러니까 식당을 갈 때마다 맛을 떠나서 짠맛에 대해 평가를 받는 것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며 식사를 마쳤다.
전몰자의 계곡에는 높이가 153m인, 세계 최대 크기의 십자가가 있다.
이 십자가는 저 멀리서 산 아래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크기를 자랑한다.
전몰자의 계곡은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지시 아래 만들어진 스페인의 국립기념물로, 원래의 의도는 스페인 내전 중 사망한 이들을 기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랑코는 전몰자의 계곡 바로 중앙에 자신의 개인 무덤으로 만들어버렸다.
사실상 프랑코의 승리, 독재의 상징인 것이다.
전몰자의 계곡을 두고 수많은 논란이 있었고, 2019년이 되어서야 프랑코의 무덤을 이전했다.
여전히 독재의 상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어있긴 하지만, 이제는 5만 명의 전몰자(전장에서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몰자의 계곡은 푸른 하늘임에도 불구하고, 햇볕이 따뜻했던 세고비아와는 다르게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동안 보아온 유럽의 성당들은 다들 황금빛 조명에 화려하고 알록달록해 따뜻한 느낌을 주었었다.
그러나 전몰자의 계곡은 온통 회색빛인 데다가, 바위산의 지하에 위치한 성당은 거대하고 사실적인 모습의 동상들이 즐비해있어서인지 거대한 무덤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동생의 사진을 찍어준 후, 엄마에게도 사진을 찍어줄 테니 한번 앞에 서보라고 했다.
엄마는 사진을 찍기 싫다고 했다. 왜 싫으냐고 묻자, 얼굴이 너무 부었단다.
그러나 가이드가 찍어주겠다고 하니 엄마는 한 번은 거절하더니 곧 포즈를 취했다.
엄마는 긍정적이고 새로운 것을 도전해보는 사람이었다.
볶음밥에 자두를 넣어보기도 했고, 작은 사업을 해보기도 하고, 낯선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하며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한때는 일단 해보라는 엄마가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모든 것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반응이 먼저 나오는 엄마를 보니 예전의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는 변화한 것이다.
나는 갱년기를 겪고 있는 엄마를 예전의 모습으로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여행이면 엄마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변화한 엄마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억지로 바꾸려 했나 보다.
이제는 그저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때의 내게는 그게 쉽지 않았고 그래서 속상했다.
전몰자의 계곡에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즐비해 있었다.
저 나무는 무엇이냐는 엄마의 질문에 가이드는 ‘사시사철 변함없이 푸르러 예수가 가장 좋아했던 사이프러스 나무’라고 설명했다.
엄마는 그 나무가 좋다고 했고, 나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고비아와 톨레도는 거리가 떨어져 있어, 꽤 오래 차를 타야 한다.
허리가 아프다는 동생을 무릎에 눕히고 졸다, 깨다를 반복하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는 톨레도에 도착했다.
톨레도의 구시가지의 길은 정말 좁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서든 차들은 지나다닌다.
가이드의 추천을 받아 좋은 올리브 오일을 파는 가게에 가게 되었다.
사실 내게 올리브 오일이란 그냥 기름이었는데, 이곳의 올리브 오일은 맛보고 올리브 오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색은 진한 초록빛이었는데, 상큼하고 향긋한 향이 났다.
오일을 한 병 사갈까? 하지만 내 캐리어에 자리가 있을지, 앞으로 남은 두 번의 비행기 이동에서 캐리어 무게를 맞출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권을 나처럼 올리브 오일에 흠뻑 빠진 엄마에게 넘겼다.
“우리도 한 병 사갈까? 무거울 것 같긴 한데….”
엄마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됐어, 너 들라고 시킬까 봐 그러지? 차라리 안 사고 말지.”
엄마는 우는 소리는 듣기 싫다고 했고, 나는 그냥 울고 싶었다.
결국 우리는 빈 손으로 가게를 나왔다.
톨레도는 고즈넉한 도시였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작은 크리스마스 마켓과 조명이 함께하니 더욱 아름다웠다.
전몰자의 계곡을 들리면서 시간이 딜레이 되어, 톨레도 대성당은 성당의 무료 구역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돈을 내고 초를 켰다.
각자 무엇을 빌었을까?
나는 이 투어의 가이드가 우리의 여행을 끝까지 책임져주었으면 좋겠다는, 이룰 수 없는 꿈을 빌었다.
하나하나 깨달아갈수록, 앞으로 남은 여행을 나 혼자 이끌어갈 자신이 없어졌다.
잠깐의 자유시간 동안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할 수 있었다.
트리의 장식품만 팔던 다른 스페인 도시의 크리스마스 마켓과는 달리, 톨레도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스페인의 전통 간식 뚜론이나, 빵, 마실 것들을 팔기도 했다.
엄마는 따뜻한 와인을 한 잔 마셨다.
그 덕에 기분이 조금 좋아졌는지 기념품을 잔뜩 구매한 투어의 일행에게 무엇을 산 것이냐고 적극적으로 물어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충분히 둘러본 후, 지정된 미팅 장소였던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서 가이드가 제공해준 스페인의 커피, 꼬르따도를 마실 수 있었다.
거기에 톨레도의 수녀님들이 직접 만든다는 간식 마사판을 한 개를 사서 나눠 먹었다.
내 입에는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동생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했고, 엄마는 너무 달다고 했다.
입맛도 공유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웠다.
투어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바로 톨레도 야경이다.
차를 타고 톨레도의 구시가지를 빠져나가는데, 은은하게 조명이 켜진 좁은 골목을 지나서인지 감상에 젖었다. 기분이 조금 이상하다.
톨레도에 좀 더 머무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톨레도의 야경은 정말 아름다워서, 낮의 모습도 덩달아 궁금해졌다.
가파른 절벽 아래를 바라보니,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물을 건너고 절벽에 올라 도시를 지을 생각을 했을지도 궁금해졌다.
하루 종일 함께 투어를 해서일까?
투어 일행들과 동지애가 생겼는지, 대화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이 순간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어두운 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도와주겠다며 다 같이 두 손을 걷어들고 서로에게 핸드폰 조명을 비춰주었기 때문이다.
낯선 이에게도 조명을 비춰주고, 사진이 잘 나왔다고 함께 기뻐했던 것이 종종 생각난다.
이것으로 모든 일정이 끝이 났다.
이제 마드리드로 돌아가면 정말 끝이다.
부모님과 여행을 갈 때는 패키지여행이 답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에 나는 코웃음치곤 했다. 직접 계획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자유여행을 하면 마음껏 원하는 곳에도 갈 수 있는데 왜 굳이 패키지여행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가봤던 여행지, 나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만했다.
그런데 하루 동안의 투어로 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다.
만약 오늘 여행이 투어가 아니었다면, 나는 정말 버티지 못했을 것 같다.
원하는 곳은 척척 이동시켜주고, 궁금한 것은 다 대답해주고, 사진까지 찍어주는, 내가 신경을 곤두설 필요가 없는 투어 여행도 정말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 괜찮은 투어가 이제 끝이라니,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마드리드로 향했다.
투어의 마지막까지 가이드는 친절했다.
내일 아침 비행기 때문에 공항에 가야 하는데 어떤 방법이 가장 좋냐는 물음에, 시내에서 공항에 가는 택시는 정찰제니 택시 혹은 조금 더 저렴하다면 우버를 타라고 조언해주었다.
숙소로 돌아가면서 동기 언니가 혹시 같이 저녁식사를 할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있었다.
하지만 엄마와 동생은 숙소로 돌아가서 따뜻한 컵라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아쉽지만 이제 동기 언니와 유럽에서의 만남도 끝이다.
그렇게 동기 언니와 한국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이날 투어는 아주 좋았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었던 투어가, 2년 만에 재개한 만큼 가이드의 열의에 넘쳤고, 설명들도 모두 재미있었다.
엄마가 어떤 가이드 투어가 가장 좋았냐는 물음에, 이 ‘톨레도&세고비아 투어’라고 답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갱년기가 엄마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알 수 있는 날이었기도 했다.
역시 좋은 것은 다 변하나 보다.
내일 우리에게도 또 다른 변화가 생긴다.
스페인의 마드리드가 아닌 다른 나라의, 다른 도시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 마드리드에 익숙해진 것인지,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더 커졌다.
게다가 내일부터는 다시 가이드도, 동기 언니도 없다.
오로지 나 혼자서 엄마와 동생을 데리고 난관들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