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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정 Jun 13. 2024

아빠가 나오는 명장면

몇 컷이면 충분합니다.

아빠가 떠난 날, 천장에서 들리는 우레 같은 쥐들의 발소리. 전에는 그런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날 들었던 소리의 크기와 방향까지 선명하게 기억난다.     


누구나 살면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장면이나 대화가 있다. 날씨와 주변 소음까지 모든 게 각인된.

나에게도 아빠가 담긴 그런 장면들이 있다.      


s#1.     


6학년 봄이었다. 봄꽃이 만개한 산으로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전교생이 겨우 50명 남짓 되는 분교에서 절반의 학생이 소풍을 떠났다. 큰 버스를 빌려 동네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각자 앉고 싶은 사람과 앉아서 가자.”     


하필 6학년 여학생 수는 홀수였다. 7명이 그런대로 친했지만, 별수 없이 한 명은 따로 앉아야 할 상황이었다.

     

“나랑 같이 앉자.”

“그래.”     


아이들의 이런 대화 속에 얼른 끼지 못한 나는 결국 혼자 남게 되었다. 즐거운 소풍날, 괜한 일로 기분 상하고 싶지 않아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홀로 창가에 앉았다.     


커다란 버스는 왕복 2차선의 좁은 시골길을 시원하게 내달렸다. 읍내로 가는 덜컹대는 시내버스 창밖으로 보았던 풍경과는 다르게 모든 게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오금리를 지날 때였다.

몇 번 가본 곳이라 꽤 익숙한 동네였다.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데 도자기를 든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는 가끔 도자기 공장을 하는 친구의 일을 도와주셨다. 공장에 몇 번 가본 적이 있기에 내가 본 건 분명 아빠가 틀림없었다.     


체감적으로 족히 시속 50킬로미터 정도 되는 속도로 지나가는 순간, 아빠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내가 탄 버스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나를 어떻게 찾았지?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우리 딸, 재미있게 놀다 와.”     


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빠는 내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날 다녀온 신륵사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의 다정한 손 인사와 따뜻한 입매는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s#2.     


우리 가족과 아빠 친구분들의 가족이 모여 냇가에 앉아 수박을 먹고 있을 때였다. 아빠는 예닐곱 살 된 나를 번쩍 들어 무릎에 앉히며 말했다.   

  

“이제 다들 민정이 아빠라고 불러.”     


다들 벙찐 표정이었지만

유독 나만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다들 진규 아빠라고 하니까 우리 민정이 속상하잖아. 이제 민정이 아빠라고 해.”     


아빠는 마치 영웅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실은 그 시절, 나는 어른들에게 화가 나 있었다.


어른들은 언제나 수화기 너머로 이렇게 물었기 때문이다.     


“진규 엄마 있나요?”     


나는 항상 이렇게 되물었다.   

  

“민정이 엄마요?”     


작은 반항이었다. 내 엄마, 아빠도 되는데 왜 자꾸 진규 엄마, 아빠만 찾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반은 내 몫인데 온 동네 사람들이 진규, 진규 하는 게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보는 사람마다 경고(?)한 덕분에 나는 비로소 ‘민정 엄마’와 ‘민정 아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시절 감흥이 떠오르는 클래식 영화 속 명장면처럼 새겨진 아빠의 모습은 내 마음에 가득 차 있다. 이런 이유로 가끔 엄마의 동영상을 찍는다.     


“다 늙었는데, 뭘 찍어.”     


엄마는 손사래 치지만, 손주들의 생일 축하 노래를 들으며 함박웃음을 짓는 엄마의 모습을 진짜 영상으로 간직하고 싶다.     


‘아빠는 좋겠네. 내 추억 속 아빠는 늘 가장 젊고 멋진 모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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