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월 같은 날, 같은 곳으로 향했다. 시골 오일장보다 먹을 게 많고, 엄마의 도시락보다 더 따뜻한 음식이 가득한 곳.
대형마트 푸드코트.
엄마가 한 달 동안 식당에서 일해 번 돈을 받는 날. 엄마의 월급날은 우리 가족이 외식하는 유일한 날이기도 했다. 그날은 친구와의 약속도 잡지 않았다. 공부가 잘됐을 리도 없다. 오로지 엄마의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좁은 집에서 오빠와 수선스럽게 들썩였던 기억이다.
늦은 저녁, 엄마와 우리 남매는 집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 정문에서 만났다. 말없이 침만 꼴깍꼴깍 삼키며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다. 수없이 많은 테이블과 의자, 만국의 음식이 다 모인 것 같은 다양한 메뉴들.
“너희들 오늘은 뭐 먹을 거니?”
“난 짜장면. 어젯밤부터 생각해 놨어.”
“난 돈가스.”
그때는 이상한 줄 몰랐다. 나는 짜장면, 오빠는 돈가스를 자주 시켰던 것 같은데 엄마가 뭘 자주 드셨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서야 기억하려 애쓰는 모습이 못내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 시절 엄마와 같은 나이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엄마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빠듯한 살림에 당신 몫의 음식은 사치라 여겼을 것이다.
이제라도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알게 됐으니 다행이다. 유년 시절 짜장면이 가져다준 행복은 종종 엄마가 좋아하는 쌀국수를 사드리며 되갚는 중이다. 대체 몇 그릇을 더 사드려야 할지는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소박한 음식에도 풍성한 행복을 느끼는 어른이 되었다.
과일
식사하고 나서 과일을 먹는 문화는 누가 만든 걸까. 과일 장수 아저씨의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제철 과일을 챙겨주고 싶어 한다. 우리 엄마도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까만색 비닐봉지를 들고 퇴근했다. 오빠와 나는 그 속을 보지 않아도 뭐가 들어있는지 알고 있었다. 봄에는 딸기, 여름에는 포도나 복숭아, 가을에는 단감, 겨울에는 귤 같은 제철 과일이 들어있었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생김새가 고른 과일은 없었다. 게다가 출하된 지 며칠 지난 것 같은 과일들은 수분을 잃어 시들한 경우가 많았다.
“원래 못생긴 과일이 더 맛있는 거야. 얼마나 달콤하면 스스로 못생겨져서 짐승들도 못 먹게 하겠니?”
나는 어리벙벙하게도 엄마의 논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을 골려주려고 태어난 것 같은 오빠가 말을 보탰다.
“민정이 너도 못생겨서 귀여운 거야. 연예인처럼 예뻤으면 벌써 질려버렸을걸?”
엄마 말처럼 못생긴 과일은 전부 달고 맛있었다.
요즘도 길을 가다 과일 트럭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바구니에 담긴 과일 무더기를 사면 여지없이 형태가 고르지 못한 놈이 섞여 있다. 못생긴 과일을 깎다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한여름의 복숭아처럼 달짝지근한 엄마의 마음이 떠오른다.
수업료
중학교 3학년, 종례 시간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번호순대로 아이들에게 수업료 청구서를 나눠 주었다.
“민정이는 감면됐다.”
불필요한 말이었다. 청구서를 보면 알게 될 일을 친구들 있는 데서 알릴 필요까지는 없었다. 한부모 가정이라 감면이 됐는지, 가구의 소득이 적어 감면이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굳이 감면 사실을 목청 높여 알리는 담임 선생님께 다가가는 내 얼굴이 온통 토마토처럼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
다행히 아이들이 내 자리에 몰려들지는 않았다. 책 사이에 끼워 얼른 가방에 넣는 내 모습을 힐끗힐끗 바라봤을 뿐이다.
나는 왜 얼굴이 빨개졌을까. 왜 굳이 선생님 손에 들린 수업료 청구서를 낚아챘을까.
가난이 창피해서 아니다. 굳이 아이를 민망하게 만든 어른에게 화가 났던 것 같다. 학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선생님의 경솔한 태도에 화가 났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