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민정 Jun 06. 2024

아빠는 조카바보

손주 바보가 되었을 아빠가 그립습니다.

아빠는 다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즉, 내 아래로 사촌 동생들이 줄줄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다. 가끔 서울에 사는 사촌 동생들이 예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우리 집에 놀러 올 때가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온 가족이 기쁜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했지만, 난 동생들이 별로 반갑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빠는 나보다 사촌 동생들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 예쁜 지영이 큰아빠랑 같이 냇가에 가서 물놀이할까?”     


아빠 눈엔 하얀 눈으로 사촌 동생을 흘기는 내가 보이지 않는 걸까? 아빠는 바쁜 농사일도 제쳐두고 간식까지 챙겨 밖으로 나가버렸다.


내가 토라진 모습으로 마루에 앉아 아빠 손에 끌려 나가는 사촌 동생을 보고 있으면 엄마는 내 앞에 과자 더미를 내놓았다.


"작은 아빠가 사 오신 거야."


그깟 과자 몇 봉지하고 아빠를 바꿔버린 것 같아 심통이 났다.

사촌 동생과 내 튜브를 양손에 꼭 쥐고 집 밖을 나가던 아빠의 뒷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런 귀여운(?) 사촌 동생들은 끝을 모르고 줄지어 태어났다. 그들에 대한 내 시기도 끝날 줄 몰랐다.


하지만!     

제 집 나간 아빠의 시선을 끌 나만의 비밀병기가 하나 있긴 있었다.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내 질문!      


“아빠는 군대에서 무슨 병이었어?”     


아빠는 유독 이 질문만 들으면 배를 잡고 웃었다. 딸아이가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하하. 병은 병이었지 아빠가... 아빠는 위생병(의무병)이었지.”

“아 아빠는 위생병이었구나.”

“그래. 그게 뭐 하는 건 줄 알아?”

“아픈 사람 낫게 해주는 거.”     


똑같은 대화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이야기를 나누며 아빠는 내 볼을 수십 번 꼬집었다. 고단한 아빠의 피로를 녹여주는 6살 꼬마 위생병의 묘약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당근 할아버지가 쳐다보시고.”     


둘째 아이가 6살 무렵, 어느 날 유치원에서 듣고 온 노래를 큰소리 내어 불렀다. 온 집안에 울려 퍼지도록 입술을 옴짝 대며 노래를 부르는 아이의 진지한 표정이 웃겨서 가사를 바로 고쳐주지 않았다. 오랫동안 둘째 아이를 쳐다보시는 당근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따금 아이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아빠가 이 모습을 봤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내리사랑 그 자체였던 아빠는 어떤 반응을 했을까?’     


우리 곁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아빠는 손주들의 얼굴이 얼마나 어루만지고 싶을까.      

언젠가 첫째 아이가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외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었어요?”     


잠시 대답을 고민하다 아이가 따뜻한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고, 자신의 아빠를 자랑스러워할 만한 딱 맞는 대답을 찾아냈다.     


“외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너희들을 되게 예뻐하셨을 거야. 자상하고 상냥한 분이셨거든. 물론 너희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     


과거엔 나를 바라보던 아빠의 얼굴이 그리웠다면,

이제는 손주를 바라보는 아빠의 얼굴이 보고 싶다.     


이전 06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