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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정 May 23. 2024

남자 어른의 부재

우리 집에는 아무도 신지 않는 신발이 있었다.

“오빠 주말에 뭐 할 거야?”

“오빠는 바쁘지. 너는 이제 친구들이랑 놀아.”

‘뭐가 있어야 놀지.’     


도시 생활에 차츰 익숙해질 때쯤 오빠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늦은 사춘기에 접어든 오빠는 전보다 말수가 적어졌고, 나와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게다가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모인 고등학교에 입학한 터라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늦어졌다.      


우리 세 식구는 각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엄마는 새로운 일터에서, 오빠는 고등학교에서, 나는 중학교에서…     


다행히 아빠는 하늘에서도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   

  

길 가다 넘어진 것은 날 골려주려는 장난꾸러기 아빠 탓.

그러면서도 천사 같은 친구가 나에게 다가온 것은 날 끔찍이 사랑하는 아빠 덕분.     


“안녕? 나는 지은이야. 너는 몇 반이었어? ”     


유난히 맑은 미소를 가진 그 친구는 우리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아이였다. 태도가 좋아 모든 선생님이 좋아하고, 웃는 얼굴이 예뻐 아이들이 친해지고 싶어 하는 엄친딸. 새 학년이 시작되고 쉬는 시간마다 존재감이 전혀 없던 내게 다가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

덕분에 나는 그 시절, 내 곁에 아빠가 늘 함께 한다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 가족을 잊지 않은 아빠가 실은 우리 집에 없다는 걸 실감하는 날도 있었다.     


어느 날, 하교 후 현관문을 여니 못 보던 신발이 한 켤레 놓여있었다. 우리 중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낡고 까만 구두. 오빠 발보다 커 보이는 구두는 곳곳이 해어져 상처가 나 있었다.     


‘손님이 오셨나?’     


이 동네에서 우리 집에 들어올 만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그것도 구두를 신은 남자 어른이라… 혹시 근처에 살고 있는 작은 아빠가 오신 걸까?     


“엄마, 근데 이건 누구 신발이야?”     


내가 묻자, 엄마는 식탁 의자에 앉아 낡은 구두가 우리 집에 온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엄마가 혼자 집에 있는데, 주인집 아저씨가 와서는 다음번 계약할 때는 전셋값을 좀 올리고 싶다는 거야. 이번에 너무 적게 받았다고.”

“얼마나?”     


더 허름한 집으로 이사 가게 되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나 물었다.     


“돈이야 뭐, 엄마가 어떻게든 구해볼게. 너희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

“그게 구두하고 무슨 상관이야?”

“그 아저씨가 너랑 오빠가 없는 집에 갑자기 들이닥치니까 덜컥 겁이 나더라. 괜히 여자 혼자 애들만 데리고 사는 거 티 나는 건 아닌지 걱정되더라고.”     


엄마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을 무사히 지켜내야 할 사명감을 무겁게 이고 사는 사람 같았다.    시험 기간이라 일찍 집에 돌아온 오빠가 물었다.     


“그래서 남자 신발을 갖다 놓은 거야? 아빠 있는 척하려고?”    

 

엄마는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든 현관문을 열었을 때, 이 집에 남자가 산다는 걸 보여줘야지.”      


외삼촌의 낡은 구두는 가뜩이나 비좁은 현관에 거추장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위풍당당한 장승처럼.    

 

“내가 얼른 더 커야겠네, 엄마.”     


갓 고등학생이 된 오빠는 엄마를 그렇게 위로했다.     

마음은 아직 여물지 못했지만, 키는 엄마보다 20센티미터나 커버린 오빠를 엄마는 아주 작게나마 의지하고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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