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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정 May 16. 2024

왜 혼자가 되었을까

이유는 없었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 숲 속에 내가 다닐 중학교가 있었다. 그 학교엔 한 학년에 여덟 반이나 있다고 했다.

좁은 교실에서 40명도 넘는 아이들이 하루 종일 부대꼈다. 아이들은 자신과 어울리는 색을 찾아 삼삼오오 무리를 만들었다.

나도 어서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떠들썩한 아이들의 수다 속에 내 목소리도 섞고 싶었다.   

  

시간이 약인 것처럼,

몇 주가 지나면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잘 해낼 줄 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일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외톨이가 된 이유 말이다.     


조례가 끝나고 같은 반 친구가 혼자 앉아있던 내게 찾아와 물었다.     


“넌 농구 선수 중에 누굴 제일 좋아해?”

“난 우지원.”     


그 시절 내 또래들은 아이돌만큼이나 농구 선수에 열광했다. 나는 농구의 경기규칙도 제대로 모르면서 TV에 나오는 키 큰 농구 선수를 동경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내 대답을 듣더니 대뜸 패션잡지에 나온 우지원 선수의 사진을 조심스럽게 칼로 잘라 내게 건넸다.       


“고마워.”     


외로운 전학생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그 친구가 한없이 고마웠다.

섣불리 고마워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친구의 연습장 커버에는 다른 농구 선수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오, 연습장에 붙이는 것도 괜찮은데?’

별생각 없이 나도 연습장 맨 앞장에 우지원 선수의 사진을 붙였다. 연습장에 자신이 좋아하는 농구 선수 사진을 붙이는 게 요즘 유행이구나,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나는 붙이면 안 되는 거였다.

그건 그 친구가 여러 날 동안 고민하다 생각해 낸 기발한 팬심이었기 때문이다. 전학생이었던 나는 알 도리가 없었다.     


농구 선수의 사진이 붙은 연습장을 책상 위에 꺼내 놓은 날, 여자아이들 몇 명이 내 주위를 빙 둘러쌌다.  

   

“너, ㅇㅇ이 따라 한거야?”     


대답 없이 눈만 끔뻑거리자 아이들은 내 연습장을 요리조리 만지작거렸다. 마치 표절 시비가 붙은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것처럼.     


그 일이 있고 몇 달 동안 내 곁엔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급식을 먹고 자리에 앉아서 흥미도 없는 독서를 했다. 웬만한 수업 시간은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하지만 체육 시간만큼은 좀 달랐다. 체육복을 입고 우르르 다 같이 운동장으로 나가는 계단은 날씨와 상관없이 얼음장처럼 차갑게만 느껴졌다.     


무리 속에서 혼자라는 건 이런 비참한 기분이구나, 깨달았다.  

   

원망도 들을 수 없는 아빠를 탓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겪지 않아도 됐을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난 시골에 남아 오래된 친구들과 버스 속에서 시시덕거리며 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오갔을 것이다.

내 이름을 부르는 동네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혼자라는 게 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겨우  중1인 내가 느끼지 않아도 될 감정들이었다.     




세월이 흘러 사소하지 않은 일조차 차츰 무뎌질 나이가 되었을 즈음,

여느 때처럼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밀며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을 때였다.     


“어?”     


내 얼굴을 마주하고 황급히 지나간 사람은 분명 내 연습장을 만지작대던 아이 중 하나였다.

당연히 인사할 생각은 없었고, 이제 와 따가운 시선을 보낼 생각은 더욱 없었다.

못 볼 거라도 마주친 양, 그 친구는 빠르게 마트를 빠져나갔던 기억이다.     


성인이 되어서야 생각을 달리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빨리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했다.

누구든 한 번쯤 혼자가 될 수 있고, 혼자가 됐을 때 경험이 있는 사람이 더 빨리 일어설 수 있다고 여겨졌다. 살아보니 실제로 그랬다.     


나는

아빠도, 내게 등을 돌린 친구들도 원망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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