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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정 May 02. 2024

달라진 시선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의 온도가 변했다.

그날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아빠가 텔레비전을 보며 씹던 마른오징어는 더 이상 식탁에 올라오지 않았고, 아침마다 들로 몰고 나가셨던 경운기는 그 자리에 멈춰 녹이 슬기 시작했다. 아빠의 냄새, 손길, 시선이 묻은 것들의 숨이 서서히 멎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린 내가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바로 사람들의 달라진 시선이었다.     


친구들      

일주일이 지나 학교로 돌아갔다.

아빠의 손을 잡고 걷던 등굣길을 혼자 걸었다. 혼자 등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아빠가 떠난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전교생이 50명 남짓인 분교에서 내 사정을 모르는 학생이 있을 리 없었다. 물론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교실이 있는 건물을 향해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매일 친구들과 흙바람 날리며 고무줄놀이를 했던 곳이었는데, 교실까지 걸어 들어가는 그 길이 아득하기만 했다. 작은 2층 건물 창문 너머 아이들이 빼꼼 나를 보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교실에 들어서자, 며칠 전까지 웃고 떠들던 아이들이 날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괜히 내 발걸음과 표정 따위가 신경 쓰였다.    

 

“괜찮…아?”     


주머니에 개구리를 넣어 날 놀려 먹던 짝꿍이 조심스레 물었다. 지우개를 뺏어가 며칠씩 돌려주지 않던 개구쟁이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어색한 질문이었다. 대답하려는 입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친구들은 새엄마에게 구박받는 콩쥐나 신데렐라를 대하는 눈으로 나를 봤다. 당차게 날 놀리던 아이들과 대거리하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엄마  

엄마는 차차 아빠의 부재를 받아들이면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살림만 했던 주부가 할 수 있는 일거리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차로 20분 거리의 공장에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하교하면 늘 집에 있던 엄마의 빈자리를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을 입구 야외 경로당에서는 1km쯤 떨어진 버스정류장이 잘 보였다. 1시간에 한두 대 다니던 시골 버스에서 엄마가 내리는 걸 기다리는 것은 나의 중요한 일과가 되어버렸다. 같이 놀자고 졸라대는 친구들을 뿌리치고 엄마를 기다리는 것이 어린 나의 외로운 마음을 채우는 일이었다.     


그날도 경로당 앞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페달에 발이 잘 닿지 않는 커다란 자전거에 비스듬히 앉아 차도 위로 듬성듬성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응시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하늘색 버스에서 엄마가 내리는 게 보였다.    

  

“엄마!”     


버스에서 내린 엄마를 만날 생각에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았다.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도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싶었다. 빠른 속도로 신작로를 몇 분 달리면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거리에서 엄마가 날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길 위 바짝 마른 모래에 바퀴가 미끄러지면서 나는 높은 자전거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달리는 방향으로 얼굴이 아스팔트 바닥에 쓸리면서.     


넘어진 나를 보며 엄마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엄마가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처음 알았다.  

   

“민정아, 괜찮아?”     


턱 아래쪽에 심한 찰과상을 입었다. 옷으로 얼굴을 쓱 문지르자 옷이 벌건 피로 흥건하게 젖어버렸다. 엄마는 나를 부축해 집으로 갔다. 속상한 엄마와 엄마를 속상하게 한 나 사이엔 별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나는 괜히 엄마를 걱정시키는 것 같아 미안했고, 엄마는 괜히 자기 때문에 딸아이가 다친 것 같아 마음 아팠을 것이다.


“너까지 아프면 엄마 진짜 속상해.”     


너까지. 장례식 이후로 눈물을 감추었던 엄마는 이내 펑펑 울었다. 아빠가 없는 나는 누구보다 멀쩡해야 했다. 아픈 데도 없어야 했고, 특별히 다른 아이들보다 몸과 마음이 더 잘 자라야만 했다.     


“예쁜 얼굴 흉 지면 어떡해.”     


엄마는 내가 몇 년 전 손목뼈가 부러져 깁스했을 때보다 더 많이 걱정했다. 날 지켜줄 사람이 오롯이 당신뿐이라 그랬을까.     


엄마는 나와 오빠가 행여 어디라도 다칠세라 조심하란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움’이란 단어는 책에서나 봤다. 아빠를 잃고 느끼는 감정은 슬픔에서 그리움의 색깔로 바뀌었다. 앞으로 내 입학식과 졸업식에 아빠는 참석하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은 때때로 자기 연민으로 다가왔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장면이 생겼다.

그건 바로,

아빠가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이었다.     


하필 그런 장면은 내 눈에만 유독 잘 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모습을 목격했다. 내 또래의 여자아이라면 더욱 감정이 요동쳤다.

어린 나는 아빠와 함께 걷는 아이에 대한 부러움을 느낄 때마다 마음이 쿵 차갑게 내려앉았다.   

  

우리 아빠도 다정했는데.

우리 아빠는 내가 이렇게 많이 큰걸 알고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집으로 달려와 이불장 속 이불 사이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 이불속에서 울면 아무도 모를 줄 알았다. 눈물도 소리도 모두 이불이 집어삼키는 줄 알았다.     


어느덧 중학생이 된 나는,

나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느껴질 때면 더욱 처연해졌다.      


내가 참 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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