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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정 Apr 25. 2024

1. 어느 날 갑자기

어린 나의 일부가 사라졌다.

거실의 텔레비전 소리마저 끊긴 늦은 밤이었다. 시골의 밤은 유난히 어둡고 길다. 깊은 어둠 속에 잠겨 눈꺼풀이 내려앉으려던 찰나 요란스럽게 현관문이 열렸다.   

  

“아부지, 엄니 진규 애비가요!”     


내 친구 아빠이자, 옆집 아저씨 목소리였다. 격분과 슬픔이 섞인 목소리는 흡사 짐승의 울음소리 같았다.

     

“진규 애비가…진규 애비가 하늘나라 갔다구요.”     

동시에 여러 개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뭐? 뭐라고?”     


할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재차 물었다. 그렇게나 무섭게 달려드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엄니, 진규 애비가…죽었다고요. 차에 치여서…”     


아저씨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현관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내 방문 앞에 서서 아저씨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무슨 말이지?     


그날따라 혼란한 내 머릿속만큼이나 천장에 있는 쥐들의 발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휘몰아쳤다. 분명 평소 쥐가 몇 마리 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날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온통 난리였다.  

   

그 길로 할머니와 할아버지, 엄마는 옆집 아저씨 차를 타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나는 이불속에 묻혀 한참을 울었다. 옆 방에 있던 오빠도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죽었다는 건, 아빠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건, 앞으로 아빠와 함께 할 시간을 송두리째 도둑맞았다는 의미였다.   

   

나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하늘이 아빠를 빼앗아 간 것이다.     


그날 밤, 단 1분도 눈 감지 못했다. 동이 트자마자 우리 집은 곧 장례식장으로 변해 있었다. 여기저기 곡소리가 들리고, 동네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나는 마루 구석에 앉아 드나드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장례를 치르기에는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다. 13살, 아직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나이.     


엄마는 허리를 세워 일어서지 못했다. 내내 누군가에 의지해 겨우 숨을 쉬고, 겨우 울고 있었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38살 엄마의 눈은 초점을 잃었고, 하루 새 거뭇해진 얼굴에선 한 없이 눈물만 흘러나왔다.    

  

“진규 엄마, 불쌍해서 어떡해...”     


동네 사람들은 엄마를 끌어안으며 앞으로 어린 남매와 어찌 살아갈 거냐, 까마득한 날들을 어떻게 먹고 사느냐며 정신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하지만 따뜻함을 담아 보낸 질문들은 도리어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엄마를 찌르는 듯했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라,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사고라 엄마는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행복했던 과거도 부정당한 채, 미래도 없어 보였다.     


“우리 진규... 우리 민정이...”     


엄마는 허공을 바라보다가 나와 오빠의 이름을 부르며 연신 얼굴을 매만졌다. 억척스럽게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붙잡는 것처럼, 품에 안은 아이 둘의 얼굴을 자꾸만 쓰다듬었다.     


나는 아빠의 마지막 얼굴을 볼 수 없다고 했다. 아빠가 너무 많이 다치고, 너무 많이 피를 흘려서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너무 어려서 안 된다고 했다. 나도 실은 무서워서 아빠를 만나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전거 뒤에 날 태우고 들판을 가르던 아빠의 다정한 얼굴은 아닐 테니.     

 

엄마 아빠가 함께 지내던 사랑방에 아빠의 웃는 사진이 놓였다. 병풍 뒤에는 아빠가 있다고 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아빠가 바로 병풍 뒤에 누워 있다고 했다. 얇은 옷을 입고 누워 있을 아빠가 얼어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아빠가 추울 것 같아 자꾸만 사랑방 문을 닫았다.  

    

“민정아, 문 닫으면 안 돼. 동네 사람들이 계속 조문 오시잖아.”     


작은 아빠는 아빠를 잃은 어린 조카가 가여운지 큰 소리로 꾸짖지 않았다. 살살 달래듯 타일렀지만, 나는 계속 문을 닫았다. 작은 아빠도 계속해서 말없이 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부는 초겨울이었다. 아빠를 들고 가는 아저씨들의 상엿소리와 하얀 입김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상여 뒤를 따라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걸어갔다.     

마을과 꽤 멀리 떨어진 산이었다. 처음 본 산이었다. 사람들은 산으로 올라가더니 관을 내려놓고 땅속에 아빠를 묻기 시작했다. 아빠 머리 위에 흙을 덮었다.     


“여보… 가지 마.”     


엄마의 양쪽에서 누군가가 엄마를 부축했다. 주저앉았다가 다시 아빠를 향하려는 엄마를 양쪽에서 끌어당겼다.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엄마는 꼼짝없이 사라져 가는 아빠를 보고만 있어야 했다. 나 역시 내내 눈물을 흘리며 아빠를 보냈다.     


하필이면 이렇게 추운 겨울날, 아무도 없는 산에 아빠를 홀로 두고 간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자꾸만 뒤를 돌아봤고, 봉긋 솟아오른 아빠의 무덤이 아직 실감 나지 않았다.     


늘 내 편이었던 아빠를 잃었다.

아빠를 똑 닮은 나는 더 이상 아빠를 만날 수 없었다.


너무나 갑자기 아빠가 없어져서 다음 날 우리는 대체 뭘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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