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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정 May 09. 2024

아빠를 떠나 먼 곳으로

세 식구 도시로 이사 가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오빠는 곧 서울 근교 신도시에 있는 작은 아빠네 집으로 가게 되었다. 집안 어른들은 공부를 곧잘 하던 장손을 도시로 보내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다. 도시로 전학 간 오빠는 매일 밤 학원 수업을 마치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리 그냥 같이 살면 안 돼?”     


늘 같은 소리였다.     

겨우 중학교 3학년.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을 것이다. 버젓이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척 집에 얹혀산다는 건 더없는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오빠와 통화를 하고 나면 엄마의 눈시울은 항상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내가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그때의 엄마는 아마 눈물을 꾹꾹 삼켰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 엄마를 떠올리면 안쓰러울 때가 있다.     


‘자식과 살 부대끼고 사는 게 낫겠다.’     


오빠와 몇 달을 이산가족처럼 떨어져 지낸 엄마는 큰 결심을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오빠, 엄마 그리고 내가 한집에 살기로 한 것이다.     

 

사실 아빠의 무덤이 근처에 있다는 것 말고는 우리가 계속 시골에서 살아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곳곳에 남겨진 아빠의 흔적을 마주하는 것은 엄마에게 힘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지에서 홀로 잠들 아들이 얼마나 많이 떠올랐겠는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우리가 떠나는 것을 만류했다. 멀쩡한 집 놔두고 굳이 타지에서 고생할 필요가 있냐는 거였다. 언제나 시부모님께 순종적인 엄마였지만 더 이상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차근차근 떠날 채비를 했다.     


엄마와 중학생 아이들 2명의 짐은 포터 트럭에 모두 실릴 만큼 단출했다. 나는 가장 친했던 친구와 똑같은 석고 인형을 사서 나눠 가졌다. 인형 밑바닥에 ‘10년 뒤 꼭 다시 만나자.’란 절절한 약속을 적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트럭은 시골의 왕복 2차선 도로를 달렸다. 농촌 풍경은 점차 희미해졌고 도로의 폭은 점점 넓어졌다. 창밖의 왕복 10차선 도로가 도시로의 진입을 알렸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곳, 앞으로 우리 가족이 살게 될 도시였다.     


트럭은 약 2시간을 달려 서울 근교 신도시의 작은 건물 앞에 멈췄다. 지하엔 노래방이 있고, 1층엔 고깃집이 있는 어쩐지 조용할 새 없을 것 같은 건물이었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오르면 2층 끝에 우리가 살 집이 있었다. 방 2칸에 겨우 거실과 부엌의 구색을 갖춘 작은 집이었다. 

짐을 정리하며 엄마가 입을 뗐다.     


“얘들아, 우리 여기서 행복하게 살아보자.”    

 

엄마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더 이상 엄마의 충혈된 눈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볼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 공부에 매진해야 할 오빠에게 작은 방을 내주었다. 상관없었다. 그저 난 세 식구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중요했다.     


늦은 밤, 건물 지하 노래방에서 나오는 노랫소리가 창틈으로 흘러들어올 때면 잠을 설쳤다. 

하지만 그곳은 종종 세 식구의 신나는 놀이터가 되어주기도 했다.

오빠와 내가 최신 유행곡을 부르면 엄마가 그에 맞춰 열심히 탬버린을 흔들었다.

엄마는 그렇게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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