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살아갈 지역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

by 공치사

어디서 태어나 어디서 자랐는지가 선망의 대상이 되는 시대에, '시골 출신'이라는 정체성은 나의 가장 큰 자격지심 중 하나였다. 시골이라니, 너무 '촌'스럽지 않은가. 성장 과정 내내, 시골은 세련됨이나 우아함, 교양과는 정 반대에 위치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나는 촌에서 온 우악스러운 사람으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며 살았다. 사투리 억양을 고치고, 클래식이나 공연 감상 같은 고상한 취미를 만들며 어떻게든 도시로 진출하고 싶어 했다. 고향은 늘,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고향에서 도망친 이후로는 아주 드물게 그곳에 돌아갔다. 명절을 제외하면 일 년에 한두 번, 한 번에 삼일 정도만을 머무는 것이 전부였다. 조악한 의무감을 이기지 못해 버스에 오를 때면 커다란 숙제를 앞둔 사람처럼 불안해졌다. 네 시간 동안 덜컹이는 고속버스 안에 실려 가며 근원 모를 공포에 덜덜 떨었던 것이다. 포항에서 광주, 광주에서 장성으로 가는 길은 늘 길고 고단해서, 도착도 전에 몸도 정신도 지쳐버리곤 했다.

나는 고향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경기도 안성에 살며 매주, 못해도 이 주에 한 번은 주말마다 집을 찾던 친구, 수도권 대학을 합격했지만 집 근처에 살고 싶다며 매일 광주와 장성을 대중교통으로 통학하던 친구, 명절에 기차표를 구하지 못했다며 절망하던 친구. 여러 지역을 돌다가 끝내 장성으로 다시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나의 사촌 오빠는 여러 지역에서 일을 해보다 다시 장성에 돌아와 농부가 되었고, 중학교 선배는 읍내에 작은 가게를 차렸다. 의과대학에 다니는 친구는 나중에 의원을 개원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물론 친인척이 주는 안정감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만나본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넘어선, 장성이라는 공간에 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덧 고향이 아닌 곳에서 살기 시작한 지도 6년 차가 되었다. 포항, 서울, 파리. 중소도시, 대도시. 기숙사 원룸, 빌라. 나름대로 다채로운 주거의 형태를 경험해 보았다. 그렇지만 나는 내내 학생이었기 때문에, 살아본 중 어느 곳에서도 '정착'이라는 단어를 생각한 적이 없다. 내가 머물렀던 지역은 떠나고 싶은 곳, 잠깐 머무를 곳, 떠나야만 하는 곳 정도의 범주 안에 쉽게 정리되었다. 어디서든 외부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았으며, 언제든 정리할 수 있는 만큼의 물건만을 가지고 살았다. 물건을 구매할 때도 적당히 타협을 했다. 어차피 나갈 때 도로 가지고 가야 하는 건데, 뭐. 쉽게 옮길 수 있는 물건에는 투자를 해도, 가구들만큼은 가장 저렴한 옵션을 골랐다. 언젠가 자리를 잡으면 그런 것들도 해볼 수 있겠지, 막연히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 지금이 왔다. 어디에서 살지, 정말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오고야 만 것이다. 우습게도, 그러다 보니 고향, 장성에 대한 생각이 났다. 지금껏 살아본 지역 중 유일하게 나의 선택이 아니었던, 그 깡시골 장성이. 고향에 대해 처음으로 치열하게 생각해보았다. 멀리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떠올린 장성은 기대보다 훨씬 안온한 지역이었다. 막연한 거부감을 걷어내고 바라보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다정한 구석들이 슬쩍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이곳에서 삶을 꾸려 가는 것이 내가 믿었던 것보다 훨씬 아늑할지도 모르겠다고 문득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아직 나의 정착지를 결정하지 못했지만, 내가 속했던 여러 삶의 모습을 기록하는 일이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앞으로 살아갈 곳을 정하려면,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정도는 파악해둬야 하지 않겠나. 시골 생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는 사람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시골 생활에 강한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그 마음 한 구석의 낭만과 향수를 간질일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IMG_7729.HEIC 여름이면 길가에서 붉은 고추를 말리는 일도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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