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바람은?
지난해 이맘때부터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던 아빠.
스탠트 시술 후 건강이 회복되기는커녕 점점 음식을 멀리하기 시작하시더니 갑작스러운 저혈당쇼크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 119 구급대가 2번이나 출동해 "응급"을 달고 응급실로 직행하는 긴박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 이후로도 나아지지 않던 건강은 폐렴진단으로 병원에 장기 입원을 하시게 되었고 더 이상은 지켜볼 수 없었던 나를 포함한 자식들은 부모님의 오래된 집을 그대로 두고라도 당장 살기 편한 계단이 없는 아파트로 이사하시도록 종용하기에 이른다.
수년 전부터 이미 여러 번에 걸쳐 이사를 권했어도 부모님은 완고하게 지금 내가 사는 집이 제일 편하고 좋다고 고집하셨다. 주차할 곳도 없고 2층집이라 22개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분명히 버거우셨을 것임에도 편하다고 우기시는 부모님 앞에 자식들이 우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아빠의 건강악화로 인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빠의 건강회복에만 매진했던 엄마도 이미 많이 지쳐계셨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자식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주 찾아뵙는 것뿐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가 손대지 못한 오래된 묵은 물건들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들 뿐이었다.
저혈당 쇼크로 정말이지 위기상황이 왔을 때 계단 때문에 119 구급대원들이 바로 아빠를 응급차에 태우지 못하는 것을 눈으로 목격한 엄마, 그리고 들것에 누워계셨던 아빠는 다시 자식들이 이사를 가자고 했을 때 더 이상 반대할 수 없었다.
지난해 여름 내내 주말마다 부모님이 사시는 고향에 내려가 아파트를 보러 다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사 안 간다고 우기던 엄마가 정작 집을 볼 때는 까다롭기 그지없어서 어디를 봐도 만족하시는 법이 없었다. 35년간 살고 있었던 그 오래된 주택과는 비교도 안 되는 좋은 집들이 었는데도 엄마의 입맛에 맞는 집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아마도 아빠가 적당히 고르라고 엄마에게 버럭 하시지 않았다면 나는 고향의 모든 아파트를 엄마에게 소개해야 했을지도 모른다.ㅎㅎ
어쨌든 몇 달을 고르고 골라 앞으로 신경 쓰시지 않게 사실 수 있도록 약간의 공사를 마친 뒤, 11월의 어느 날 부모님은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에서 사는 게 인생 최초인 80대 부모님이 혹시라도 헷갈려하실까 봐 이사 전에 여러 번 다녀가기도 하고 이삿날 이후에도 휴가를 내고 동네탐방도 같이 다녀드리기도 했지만 함께 사는 것이 아니고 주말에만 겨우 갈 수 있다 보니 걱정이 많았다.
이사를 간지 약 4개월이 지난 지금의 부모님은 작년 이맘때를 상상할 수 없는 상태다.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던가? 환경이 바뀌고 나니 마음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지니 건강도 되찾게 되는 것 같다. 동네 산책이 전부였지만 거동이 불편해서 나가지 못했고 움직이지 않으니 음식도 잘 드시지 않는 악순환에서 지금은 틈만 나면 산책을 나가시고 운동량이 많아지니 잠도 잘 자고 입맛도 좋아지고 그러니 더 운동량이 늘어나는 선순환의 흐름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병원을 가는 것 말고는 외부활동이 없었던 아빠가 지인들 모임도 다니시기 시작했다. 아빠의 회복이 눈에 보이니 엄마도 이제 지인 모임도 나가기 시작하셨고 올해부터는 이사 간 동네에 있는 복지관에서 노래교실도 가신다. 이사를 하기 전 짐정리를 하면서 엄마는 아빠 건강만 생각하신다며 20년 이상 해오셨던 모든 서예작품들을 처분하셨던 것이 무색할 정도다.
지난주말에는 아침먹고 서울에 올라와서 잘 도착했노라고 전화를 드리니 아빠는 혼자서 산책을 한 다음 본인이 좋아하는 바지락 칼국수집에서 점심을 드시고 오신다 했다고 한다. 엄마가 상시 대기하고 계셨던 것이 불과 몇 달 전인데 이제 엄마와 아빠는 각자의 시간을 알아서 보내는 상황?!
얼마전 구글포토가 정리해 준 아빠의 사진들을 보니 3년 전에는 해외로 가족여행도 갔었는데... 올해의 목표는 건강해진 아빠와 함께 가족여행을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