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치의 기본기 - 발성 편
며칠 잠을 설친 탓일까?
아침부터 목이 간질간질하더니 강의 중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이럴 땐 대번에 알 수 있다.
'아, 내 컨디션이 안 좋구나.'
어릴 적부터 나는 목이 약했다.
감기가 오면 꼭 목부터 아팠고, 목소리가 잠기거나 심하면 아예 나오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라디오 생방송에 대타를 쓴 적도 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자연스레 동네에 단골 이비인후과가 생겼다.
그런데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의 처방은 항상 똑같다.
"물 많이 마시고
커피나 차 종류는 드시지 마세요.
말은 가급적 하지 말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세요."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처방이다.
물이야 억지로라도 마셔본다지만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지 말라는 건...
그래... 그것도 참아본다지만...
말로 먹고사는 나에게 말을 하지 말라니...
그나마 스케줄이 많지 않을 때는 괜찮지만, 몇 시간씩 떠들어야 하는 날엔 어쩔 수 없이 병원에 들러 주사를 맞고 버티기도 했다.
그리고 워킹맘의 일상에서 '충분한 '휴식'은 사치다.
그래서 나는 탈이 나기 전에 미리 대비하려고 애쓴다.
목소리가 생명인 직업적 특성상, 목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기에...
보이스 트레이닝 수업을 할 때 이렇게 묻곤 한다.
"여러분은 본인의 목소리가 마음에 드시나요?"
대부분 고개를 젓는다.
그럼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어떤 목소리가 좋은 목소리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러면 다양한 대답이 쏟아진다.
"중저음의 편안한 목소리요."
"발음이 좋은 목소리요."
"울림이 있는 목소리요."
"맑고 청아한 목소리요."
센스 있는 교육생들은 "강사님 목소리요..."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이 답이 안 나오면 슬쩍 유도하는 건 안 비밀...^^)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목소리의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자기 목소리를 잘 아는 것'이다.
노래방에서 두세 곡만 불러도 목이 쉬고,
조금만 발표가 길어져도 금세 목소리가 갈라지는 사람들.
그건 대부분 자신의 성대 톤과 맞지 않는 발성을 하고 있다는 신호다.
타고난 내 목소리,
내가 가장 편하게 낼 수 있는 소리.
그걸 알아야 오래 말할 수 있다.
억지로 꾸며낸 목소리는 말하는 사람도 힘들고 듣는 사람도 불편하다.
그래서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톤으로 말하고 있는가?
나도 모르게 톤이 높아지진 않았는가?
목소리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간 건 아닌가?
이 작은 자각만으로도, 발성은 달라진다.
발성은 컨디션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수면이 부족하면 목소리는 쉽게 갈라진다.
피로가 누적되면 목 주위 근육이 굳고, 소리가 뭉개진다.
무리한 일정에 식사까지 거르면 소리의 힘 자체가 빠져버린다.
결국 발성의 기본은 목소리를 만드는 기계인 몸을 돌보는 일이다.
내 몸이라는 악기가 망가지면, 어떤 연주도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예전엔 웬만큼 몸이 아파도 병원 가기를 미루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주사를 맞고 버티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미리미리 몸 상태와 성대 컨디션을 살피며 준비한다.
강의가 몰린 주간이면 잠을 더 자려고 노력하고,
물을 더 자주 마시며 몸이 보내는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 신경 쓴다.
다음은 내가 오랫동안 실천해 온 생활 속 목소리 관리법이다.
1. 미지근한 물을 자주 마신다.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물은 성대 점막에 무리를 준다.)
2. 술, 카페인 음료, 유제품은 "NO"
(술이나 카페인 음료의 경우 성대를 마르게 하고 유제품은 목소리를 탁하게 만든다.)
3. 시끄러운 환경에서 말하기 "NO"
(지나치게 큰 목소리, 속삭이듯 작은 소리 모두 성대에 무리가 간다.)
4. 생리. 임신 중에는 목소리 아끼기
(이 시기엔 성대에 혈액이 몰려 무리가 가기 쉽다.)
5. 헛기침 "NO"
(순간 소리가 트이는 듯해도 성대를 자극해 더 나빠진다.)
6. 수건으로 목을 감싸고 자기
(성우들이 365일 실천하는 법. 감기 예방과 성대 보호에 도움이 된다.)
7. 적절한 습도 유지
(건조한 날엔 가습기나 젖은 수건으로 성대의 촉촉함을 유지한다.)
8. 식염수로 코 세척하기
(콧속 먼지를 씻어내면 발성도 훨씬 편안해진다.)
9. 용각산(PPL 아님.. ㅋㅋㅋ)
(개인적으로 즉각적인 효과가 있어 목 상태가 좋지 않은 날 방송이나 강의 전에 사용하는 편이다.)
이건 단지 '목소리를 예쁘게 가꾸는 관리'가 아니다.
내가 전할 말에 진심과 힘을 실어 넣기 위한 준비다.
목소리는 말의 얼굴이고
발성은 그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는 숨결이다.
좋은 발성은 화려한 기교가 아니라,
나의 톤을 알고, 자연스럽게 소리 내는 법을 꾸준히 연습할 때 만들어진다.
매일의 연습이 쌓이면,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다음 주엔 분명 더 단단하고 깊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내 말의 무게는 결국 내 목소리의 무게만큼 전달된다.
지금 당신의 목소리는 당신의 진심을 닮았는가?
말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고,
목소리는 그 마음의 온도다.
오늘, 그 온도를 가만히 들어보자.
내가 듣는 내 목소리가,
나에게 어떤 사람처럼 느껴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