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진 Apr 28. 2019

계획이 어그러질 때

매기스 플랜

요즘 도통 글이 써지질 않는다. 냄비 안에서 무언가 조용히 익어가고 있는 걸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처음 노트북으로 뭔가를 쓸 땐 딱 부러지는 글이 좋았다. 하지만 점차 형식에 얽매이니 답답해졌다. 꽉 조여진 틀 앞에 서면 생각이 요지부동한다. 요즘은 무슨 글이든 그냥 쓴다. 뭘 쓸지 생각하지 않고 쓴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쓴다. 부사와 형용사를 요리조리 피해 적는다. 잘 써지면 속이 시원해지고 마음은 경쾌하다. 뭔가 교훈을 주겠다거나 목적이 있는 글이 아니다. 미리 생각해도 그대로 될 리 없고, 무슨 대단한 글을 쓰겠다고 골머리를 앓겠는가 싶다. 계획이 늘 어그러지듯 글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갈긴다.  


<매기스 플랜>은 뉴욕 유니언 스퀘어에서 시작한다. 난 자연스럽게 매기의 산책에 동승한다. 과거 연인이었던 절친과 인공수정 얘기를 나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친구는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각자 사는 인생 우리가 걱정해주고 챙겨줄 수 있는 건 딱 입 냄새 정도니까. 기꺼운 마음으로 손을 흔드는 두 사람.

영화는 뉴욕 지식인 사회를 거니는 이들을 마주한다. 생계와 치열한 노동 현장과는 거리가 멀다. 사유와 의미 싸움에 골몰한 지식층이 주인공이다. 먹물이 모이니 대화를 듣는 재미가 있다. 가령 무엇 같다는 건 언어적 콘돔이라는 표현은 지식 사회를 비트는 유머다. 가설과 가정으로 일상에 산적한 문제와 거리를 두는 학자는 고답적이다. 하지만 정작 연애와 결혼, 이혼과 출산에 속출하는 사소한 문제는 학문과는 거리가 있다. 영화는 인공수정이라는 낱말 안에 마스터베이션과 사족보행(?)이 있다는 걸 상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대체로 낙관적이다. 내일 굶어 죽는 문제는 아니다 보니 생각만 많고 절실하지 않다. 이런 분위기는 우디 앨런과 동류로 보이게끔 하지만 30대 초입 매기의 밝은 기질에 말미암으니 싱그럽게 보이기까지 하다.


계획은 불시에 날 습격한다


매기의 첫 번째 계획은 남편 없이 애 낳고 사는 거다. 서른 살 넘게 살면서 6개월 이상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남자가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아직도 학생 같은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매기는 인생에 비교적 명확한 답을 가진다. 알록달록한 타이즈를 신고 유니온 스퀘어를 활보해 정액을 제공해 줄 동창생을 만난다. 누군가는 그녀의 이런 과단성을 문제시하지만, 내가 보기엔 경쾌하고 맑아 보인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니 그녀는 제 선택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다. 도망갈 것 같지도 않고 그녀 주위엔 그녀를 도울 친구들이 든든하다. 어린 여성의 선택을 한심하고 철딱서니 없게 바라보는 우디 앨런과 달리, 제 인생을 예측 가능한 테두리 안에서 챙기려는 확고함을 본다. 매기는 대학 카운슬러이자 강사이며 매사 선량함으로 무장한 능동적인 사람이다. 그녀라면 계획이 어그러져도 마땅히 허리에 손을 짚고 미소를 머금을 것이다. 그녀가 사는 공동체는 도드라진 그녀를 받아줄 선의가 가득하다.


그녀의 계획은 끝내 어그러져 원치도 않았던 결혼생활에 이른다. 그리고 2년 정도가 흘러 권태에 맞닥뜨린다. 매기는 계획을 다시 정정한다. 나는 애초에 아기만 필요했으니 남편을 다시 전처에 돌려놓자. 이 오만한 결정이 다소 맘에 안 들어도 조금만 더 지켜보자. 매기가 보기엔 존의 전처 조젯은 근사한 사람이다. 존은 조젯을 챙기는 걸 인생의 사명쯤으로 안다. 정작 재혼한 자기 가정엔 무관심한 놈이 전처 말엔 중요한 회의마저 취소한다. 사랑도 식었겠다 존도 원하니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매기는 조젯을 찾아가서 두 번째 계획을 조심스레 내놓는다. “조젯, 당신은 애정 결핍에 자기도취가 심하지만, 존한테는 그게 필요해요. 남을 돌보지 않으면 자기 생각만 한다고요.” 영화는 결국 어긋한 사랑의 묘약을 원래대로 꿰맞추며 끝을 맺는다. 전통적인 가족도 비전통적인 섹스도 아랑곳없이 매기의 선택을 지지한다.


납득 가능한 수정안


내 주변 지인은 모두 날 위한다. 그들은 결혼과 양육의 고충을 늘어놓으며 날 만류한다. 그거만 안 하면 네 인생 편할 거라며 스스로 선택을 부정한다. 하지만 인생은 우연과 우발로 빚어지는 판가름이다. 그럴싸한 계획을 세워봤자 말짱 도루묵이다. 비이성적 충동이 평소 세워둔 지론을 외면한다. 비슷한 예로 모든 예술은 인정투쟁이다. 고고한 척해봤자 예술가는 결국 세상에서 내 위치를 가늠한다. 사랑이라고, 삶이라고 오죽할까. 결국 모든 결정은 내 마음이 상대에게 어떤 방식으로 닿느냐의 문제다. 타인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생각하다 삼천포로 빠진다.


내게 연애란 세상이 날 거둬들인 최초의 경험이다. 내 일 인분을 고스란히 보장받는 환희다. 내가 그를 살피고 보살필 때 얻어지는 만족은 상대를 위하는 마음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내 존재를 더 강화시키는 게 상대를 위하는 속내다. 그러니 사랑은 권력의 싸움이며, 불균질 한 애정이 오간다. 나를 내세우려 해도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속출해 무릎을 꿇는다. 매기에게 정액을 제공한 피클맨은 수학이 아름다워서 좋다고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속성을 가진 수학과 달리 피클은 전통 방식으로 만들면 최고 품질에 다다른다. 그는 수학에 머물면 불행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불가지론에 취하기보단 확고한 피클의 세계를 택했다. 그는 노동자 차림으로 유니온 스퀘어를 거닌다. 스케이트를 어깨에 걸치고 말이 말을 만드는 세계와 거리를 둔다. 내게 <매기스 플랜>은 수학과 피클의 점이지대에 놓인 영화다. 그럴싸한 가정을 제쳐두고 우발적 선택에 머문다.


내게 영화는 모든 우발에 대한 예시다. 상상을 통한 모의 시뮬레이션이다. 만약 영화를 몰랐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살아가는 게 꽤 힘들었을 거야. 선생 말대로 좋은 기업에 취직해서 퇴근에 목매며 살았을까. 시네큐브를 몰랐을 테니 종종 주말에 멀티플렉스에서 지구를 가루로 만드는 슈퍼히어로에 열광했겠지. 그새를 못 참고 핸드폰에서 날 찾는 이를 확인하며 팝콘이나 집겠지. 만약 영화를 몰랐다면 잠들기 전 가끔 떠오르는 생각을 노트에 적지도 않았겠지. 회사에서는 답이 없어 술이나 먹고 여자 뒤꽁무니나 쫓았겠지. 창밖을 마주해도 달리 할 얘기가 없었겠지. 독서를 좋아하지도 회색 소음에 숨어 단어에 골몰하지도 않았을 거야.

이전 17화 슬픔의 위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