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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Nov 23. 2019

겨울에 찾아온 손님

왓챠 <인사이드 르윈>

 하도 영화를 보니 사무실 선배가 내 취미의 쏠림에 대해 몇 마디 하더라. 젊은 놈이 영화관에 처박혀서 다채로운 생의 즐거움을 방기한 게 아니냐는 그런 우스갯소리. 뭐 그런 것까지 참견하나 싶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엔 보폭을 좀 넓히려고 한다. 미술관, 목공소, 공연, 근교 여행 같은 것들. 오랜만에 동기를 만나 고기도 굽고, 달밤에 조깅하며 코에 찬바람도 좀 넣는다.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축구도 뛰고, 책장에 묵혀둔 흑사병에 관한 책과 씨름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겨울엔 영화가 그립다. 카페에서 막 로스팅된 원두커피를 마시며 칙칙거리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보는 것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최근 개봉한 영화를 살펴보고, 예고편만 봐도 설렌다. 영화를 보고 나와 몰스킨에 감상을 적는 것도 기껍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화보다 더 즐거운 건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난 극장의 공간성이 좋다. 컴컴한 스크린을 노려보는 행위만으로 일상을 차단할 수 있다. 누군가가 만든 세계로 접어드는 희열을 맛본다. 인위적으로 의식을 차단해서 다른 세상을 보면 마치 메트릭스의 네오가 된 기분이다. 파란 약을 집어삼키고 심연을 떠다닌다. 2시간의 딴청으로 도피와 방기라는 비난을 잠재운다.


 겨울 하면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이 먼저 떠오른다. 뉴욕의 시린 겨울과 통기타 소리가 쩡쩡하다. 코트 하나 없이 기타 하나 달랑 매고 매일 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민폐를 끼치는 르윈은 밉상이다. 무일푼 뮤지션에 얼마 전 같이 그룹을 하는 절친한 친구마저 죽어버렸다. 사랑하는 여자는 아는 녀석과 동거 중이고, 솔로 앨범은 팔리지 않은 채 재고만 잔뜩 쌓여있다. 이 가치 없는 남자의 노랫소리는 어두운 술집을 울린다. 우연히 맡은 고양이 한 마리와 다를 바 없는 이 구슬픈 인생은 암흑과 같다.


 르윈 데이비스는 유독 실수가 잦고, 인생의 고비마다 미끄러지는 친구다. 그런데도 <인사이드 르윈>의 여정에는 시궁창 같은 삶에서 건져 올리는 희미한 낙관이 있다. 난 끝없이 비루한 르윈의 일상을 구경하며 가차 없는 위로를 받았다. 난 결국 르윈처럼 모두 가치 없다고 손사래 치는 곳에 인생을 탕진하겠구나. 내겐 이 글이 그렇고, 우리 형에겐 그 비싼 옷들이, 르윈에겐 그가 푹 빠져있는 기타 선율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위로가 되는 그런 것들 말이다. 타자의 무시와 기만을 꿋꿋이 견디는 르윈은 승산 없는 인정 투쟁에 몰두한다.


 실패의 냄새가 진득하니 베인 <인사이드 르윈>에서 뉴욕 허름한 술집 공연 장면을 좋아한다. 마지막 공연 장면에서 몇 곡을 부른 르윈은 자신의 다음 차례인 밥 딜런의 공연을 뒤로하고 밖을 나선다. 어두컴컴한 뒷골목에서 괴한을 만난 르윈은 참혹한 폭행을 당한다. 일말의 빛도 없이 그를 훼손시키며 영화는 끝이 난다. 우연히 본 영화가 좋을 때가 있다. 그저 포스터의 느낌이 좋아서, 우연히 마주친 배우에 끌려, 주말에 빈둥대다가 피카디리 극장을 들렀다가 시간이 맞아서 본 영화와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불현듯 겨울이 오면 더하다. 커피가 맛있고, 종종걸음으로 지하철에서 나와 영화관을 들어설 때 풍요로움을 느낀다. 세탁소에서 두꺼운 옷을 찾을 때처럼. 골목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녹아드는 얼음을 발로 툭 칠 때 바스러지는 감각처럼. 르윈의 삶을 상상해본다. 어디선가 조롱 섞인 휘파람을 못 들은 척하며 구슬픈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가 떠오른다. 지금도 난 일상을 깨우쳐줄 영화를 기다린다. 오늘 들어가는 극장에 막연히 뭔가가 있기를 바란다. 그래 봤자 결국 늘 가던 북촌을 거닐 테지만, 뭐라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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