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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Nov 25. 2019

계획은 늘 어그러진다

왓챠 <화장>

 올 연말에도 어김없이 이동진 작가는 '시네마 리플레이' 행사를 진행한다. 해가 지나기 전에 그해 영화 중 다시 볼만한 작품 10편을 선정해 상영한다. 영화가 끝나면 관객과의 대화가 열리는데 난 이 행사에 매년 참석하고 있다. 행사가 끝날 즈음 어김없이 이동진 작가는 자신의 전매특허가 된 영화 퀴즈를 낸다. 난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기어코 한 문제씩은 맞힌다. 이동진 작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필사적이다. ‘저기 맨 뒷줄에 검은 옷 입으신 분.’ 그러면 난 마이크를 건네받고 '영화 <화장>이요'라고 대답한다. 작가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네 정답입니다. 저분에게 상품 전달해주세요.’라고 말해준다. 그렇다. 그게 다다. 그래도 난 작가님과 뭔가 통했다는 생각에 벅차올라 내년에도 더 영화를 열심히 봐야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신년계획은 영화관 맨 뒷좌석에서 시작되는 셈이다. 더 맹렬하게 극장을 찾아서 내년에도 이동진 작가와 통하기를 염원한다. 어쩌면 또 누가 아나. 작가님이 매년 나타나는 나 같은 덕후를 기억하곤 ‘저 남자분은 올해도 오셨네요’라고 말해줄지. 어쩌면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난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답할 것이다. ‘당신처럼 멋진 글을 쓰는 지성인이 되고 싶어서요.’


 처음 사회생활을 하던 시절엔 선승 같은 사람을 따랐다. 눈은 음침하고 매사 오서독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정답을 내놓는 선배. 술자리에선 세상을 향해 일갈하며 주위의 중생들을 긍휼히 보는 상남자. 그의 사이다 같은 통찰을 동경했다. 종종 술자리에서 먹태를 뜯으며 그를 보노라면 눈이 확 뜨이는 기분이 들었다. 보기 드문 장광설에 코웃음을 치다가도 이내 자세를 가다듬고 빠져들었다. 그는 내 복잡한 머릿속을 가지런히 다졌고, 때론 미처 생각지 못한 깨달음을 주었다. 요즘엔 그런 사람을 멘토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어른이랍시고 하는 말이 고깝다가도 어쩐지 위로가 된다. 난 매사 허둥대며 오늘 하루 수습하기 급급한데, 그는 늘 정답을 확신하며 말을 한다. 주저하고 고민하는 건 실패자의 특질이라는 듯 거침이 없다. 난 종종 쉽사리 단정 짓는 말투에 의구심을 가졌으면서도 쫄래쫄래 그를 따랐다. 정답을 말하는 이 옆에 있으면 스트레스가 적으니까. 선배는 늘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떠벌렸다. 선배는 훤칠하고 말솜씨가 좋아 인기가 많았다. 그는 취업 후에도 여전히 기회만 되면 밤거리를 쏘다녔다. 자유로운 연애관을 설파하며 애당초 결혼 생각이 없다고 속단했다. 늘 불확실한 미래에 긍긍하는 나완 달리 계산이 딱 떨어졌다. 미심쩍은 마음 한구석도 그의 화법에 언제 그랬냐는 듯 맞장구를 쳤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 다른 그를 구경했다. 아 저렇게 사는 인생도 재밌겠구나. 일종의 경외였을까. 형과 나 사이에 놓인 맥줏집 테이블만큼 거리를 두고 그를 바라봤다.


몇 주 전 선배가 결혼을 통보했다. 청첩장엔 서울 외곽 결혼식장 약도와 촌스러운 신랑 신부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한복을 입은 두 사람은 어쩐지 못나 보인다. 참 전형적으로 가는구나. 순간 어안이 벙벙했으나 어색하지 않게 축하해줬다. 속으로는 영문 모를 분기를 품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어떤 감정인지 모르므로 묵인했다. 언제 봐도 정이 안 가는 강남대로를 걸으며 생각해보니 내가 선배에게 일방적인 유대를 품었음을 깨달았다. 단독자의 삶 같은 거창한 말 따위를 늘어놓으며 구속받지 않겠다는 그의 호기를 따랐다. 나는 할 수 없기에 내심 응원했던가. 어떤 여자이기에 형을 변하게 한 걸까. 그의 단호한 일갈에 흥겨워하며 좋아했던 시간이 사그라듦에 처연했다. 그래 다 가버려라. 내 그 구태의연한 예식에 오만 원짜리 봉투를 내밀고 누구보다 태연하게 축하해주리라. 

 계획은 늘 어그러진다. 철석같이 믿었던 생각이 사그라들고 항상 새 국면을 맞는다. 그래서 매사 어떤 일이든 쉽게 단정 짓지 않으려 한다. 세상은 이렇다는 명료한 말을 불신한다. 세상 쉬운 답은 대부분 거짓이며 어렵사리 내린 결론도 손바닥처럼 뒤집힌다. 오히려 답을 찾지 못해 주저하는 시간이 더 귀하다. 재고하는 과정에서 얻는 게 있다. 사색의 시간, 밤의 뒤안길은 캄캄하고 지루하다. 누군가의 삶을 상상하고 그 마음에 들어가 보려한다. 내게 그런 상상은 삶이 존재하는 까닭으로 느껴진다. 기만적 위로가 아닌 내 삶의 가치는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안도다. 저물어 가는 올해와 들이닥칠 새해를 위해 기도한다. 이 삭막하고 폭력적인 세계에서 누군가의 불행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매사 나를 살피고 다듬어 자족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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