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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Feb 09. 2021

월요일에는 한가로이 벤치에 눕자

운동 <벤치프레스>

 월요일엔 가슴을 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변 헬스인은 죄다 월요일은 가슴이라고 힘주어 말하곤 했다. 정확하게는 가슴이라기보다 벤치프레스를 하겠다는 말이다. 유튜브에서도 트레이너들은 월요일엔 벤치프레스를 가르친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왜일까. 벨트를 챙기고 손목 스트랩을 끼고 신발을 갈아 신는 모든 과정이 똑같은데 왜 일주일의 첫날은 가슴이란 말인가. 내 추측건대 우선 누워서 시작하는 운동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벤치프레스는 누워서 바벨이 달린 무거운 봉을 가슴 위로 있는 힘껏 밀어내는 동작이다. 피곤한 월요일 아닌가. 다들 죽을 것만 같은 얼굴로 천근만근 몸을 일으켜서 아침부터 회의에 참석했을 것이다. 주간에 해내야만 하는 일을 잔뜩 수첩에 적고 퇴근했을 게 뻔하다. 이렇게 혹독한 월요일에 용기를 내서 헬스장에 왔다는 사실만으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헬스장은 동네마다 있지만 고작 길 하나만 건너도 직장인에게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보다 멀게 느껴진다. 그 모든 시련을 무릅쓴 나를 치하하는 의미로 누워서 시작하는 운동으로 스타트를 끊는다. 벤치프레스와 함께 3대 운동이라고 불리는 데드리프트(등), 스쾃(하체)은 모두 서서 하는 운동이지만, 벤치프레스는 몸을 누이고 잠시 눈을 감을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오늘 나도 가슴을 하려고 헬스장을 찾았다. 운동 전 몸을 푼다는 구실로 벤치에 누워서 여러 생각을 했다. 그 짧은 시간에도 꽤 구체적인 상념에 빠졌다. 우선 운동이 끝나고 저녁식사로 뭘 먹을지부터 고민했다. 양질의 단백질이 있는 메뉴는 다 비싸니까 고민이 깊어졌다. 그리고 밥 먹고 들를 커피집을 정하고, 내일 출근하고 나서 상사에게 보고할 내용도 생각해뒀다. 그렇게 벤치 위는 한숨 돌리기에 적당한 공간이다. 공원 벤치보다 훨씬 편하고 아늑하다. 다리를 달달 떨면서 몸을 풀며 마음의 준비에 공을 들였다. 시작이 반이라고 첫 세트를 시작하기가 그렇게 어렵다. 준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트레칭을 하며 요즘 꽂혀있는 곡을 켰다. 기분 좋은 음악은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는다. 첫 세트를 잘 해내야 전체적으로 운동이 잘된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바니까. 오늘은 재달과 소마가 부른 ‘HOME’을 들었다. 경쾌하거나 신나는 비트는 아니었지만, 서정적인 멜로디가 심신을 이완시켰다.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넌 높은 담을 넘어 벽을 부수고 날 들어 올려 한 손에 쥐어 들어. 난 숨을 참고 바닥을 향해 허우적대. 너는 나를 뒤집어 돌려, 내게 입을 맞춰주네. 내 사랑아, 내 목을 조르고 터질 듯한 숨을 불어넣어 줘. 내 사랑아, 내 온몸을 찌르고 세게 껴안아 피를 멎게 해 줘." 난 달곰한 두 사람의 목소리에 취해 가사처럼 벽을 부술 기세로 바벨봉을 들어올렸다. 있는 힘껏 숨을 참고 가슴팍에 힘을 준 채 온 힘을 다했다. 종일 늘어지기만 했던 몸에 피가 오르내리면서 관능적인 기분을 느꼈다. 

 한 세트가 끝나면 삼 분 휴식을 갖는다. 쉴 땐 몸을 푸는 게 좋지만, 보통은 스마트폰을 붙들고 인스타그램을 한다. 해시태그로 #benchpress를 검색하면 전 세계의 헬스장에서 벤치프레스로 한 주를 시작하는 무수한 헬스인을 만날 수 있다. 다들 나보다 많이 들고 더 큰 근육을 뽐내고 있다. 내가 가는 헬스장보다 좋은 시설에 회원들 성비도 이상적이다. 내 주변에는 온통 골격근 냄새가 진동하는 회원뿐인데. 난 글로벌하게 자극을 받아 바벨을 더 끼우고 다음 세트를 이어갔다. 조금 무리했다 싶더니 욕심을 부리다가 하마터면 바벨봉에 깔릴 뻔했다. 난 이런 상황을 위해 유튜브 <피지컬 갤러리>에서 깔렸을 때 빠져나오는 법을 외워뒀지만, 막상 깔리니 쪽팔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영상에서 트레이너는 능숙한 조교처럼 날렵하게 그 부분을 피해 빠져나오던데 난 그만큼 유연하지 않아서인지 목숨이 위태로울뻔 했다. 고중량 벤치프레스는 잡아주는 짝이 있으면 수월하다. 혼자서 하다 보면 깔리지 않고 최대치까지 운동량을 끌어낼 수 없다. 


 작년엔 같이 운동을 하던 짝이 있었다. 경찬이는 나랑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후배였는데 싹싹하고 활기차며 젊고 의욕이 넘쳤다. 혈기에 무리하다 다치기도 했지만, 파트너로서 궁합이 잘 맞았다. 운동은 짝이 있으면 무조건 이득이다. 서로를 의식하고 끌어주면서 수행능력이 올라간다. 자기와의 싸움은 이세돌 9단의 몫이지, 알파고가 아니고서는 혼자서는 의욕이 떨어진다. 내가 부서 이동을 하며 경찬이와 떨어진 후로 짝을 잃었다. 게다가 요즘엔 점점 더 짝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내 운동 시간과 맞으면서 수행능력까지 비슷한 짝을 찾기란 듀오가 와도 어려울 것 같다. 나이를 먹다 보니 운동을 하는데도 따지는게 많아졌다. 전에는 짝을 구하려고 내가 상대에 다 맞춰냈는데, 이젠 나만의 운동 방식이 확고해지니 누군가와 일상을 섞는게 부담스럽다. 예술 취향이라면 점점 더 예민해지고 까다로워지는 걸 당연히 여기지만, 운동에서마저 이러니 육체적인 노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폼을 좀 잡자면 나 같은 고독한 헬스인에게 운명 지어진 불가피한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전적으로 내가 택한 외로움이기에 불만은 없다. 오히려 헬스를 혼자 할 때 생각하는 것들이 글쓰기에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운동을 하다 잠시 쉴 때 강렬하고 순수한 생각이 불쑥 떠오르곤 한다. 또한 헬스장은 겉보기에는 먼지만 날리는 누추한 공간이지만 한구석에 앉아서 쇳덩이와 끙끙하다보면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감정을 삭일 수 있다. 


 연초에 바닷가가 보이는 소도시에서 일하는 경찬이에게서 안부 전화가 왔다. 별말은 나누지 않았다. 녀석은 편안해 보였고 대체로 새로운 삶에 잘 적응한 것처럼 보였다. 난 느닷없이 물었다. 가슴은? 오늘은 월요일이고 내가 가장 궁금한 건 녀석이 오늘 운동을 했는지 여부였다. 녀석은 낄낄거리며 요즘은 운동을 쉬고 있다고 했다. 시골이라 근처에 헬스장이 없다나. 세계 3대 거짓말 중 하나다. 벤치프레스의 가장 큰 이점은 어느 공원을 가나 하나쯤 기구가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마당에, 뒷산 약수터에, 공원 어느 한 편에 벤치프레스 기구는 꼭 있다. 하다못해 덤벨로만 해도 충분한 게 가슴 운동이다. 그냥 가서 눕기만 하면 된다. 녀석도 아마 짝이 없으니 의욕이 떨어진 것이리라. ‘너도 자기와의 싸움을 좀 해야겠다.’ 전화기 속에서 희미하게 파도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 물었다. '바다 경치는 어때?' 머릿속에 뱃머리가 솟아있는 항구가 그려졌다. ‘지금 바닷가로 나온 거냐?’ ‘아뇨 지금 세탁기 돌리는 중인데요.ㅋㅋㅋ’


 내가 벤치프레스를 좋아하는 다른 이유는 즉시성에 있다. 닭을 산 채로 잡아먹을 것 같은 표정으로 가슴에 힘을 주면 조금 더 커진 흉부를 확인할 수 있다. 다른 부위에 비해 가슴은 눈에 잘 띄는 근육이다. 거울을 보면 내가 비로소 근육을 얻었다는 실감에 신이 난다. 평소 입던 티셔츠가 타이트해지고, 웅장한 가슴에 자신감도 넘친다. '샘 멘데스'감독의 영화 <아메리칸 뷰티>를 보면 매사 무기력하고 직장에서 무시당하는 집안의 가장 레스터가 운동하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그는 어느 날 무시당하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딸 친구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삶의 활력을 얻는다. 아내는 돈 잘 벌고 몸 좋은 남자랑 바람이 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소녀를 위해 웃통을 까고 벤치프레스 기구에 눕는다. 그녀를 향한 욕망에 피가 돌고 상승을 향한 욕구가 다시금 솟아난다. 대마를 쭉 들이마시며 윤리적인 걸림돌을 가뿐히 집어던진다. 레스터는 누군가의 월요일처럼 빵빵해진 가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세 가족의 가장이라는 짐을 벗어던지고 고지식한 세상을 비웃는 악당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비슷한 내용을 가진 한국 영화 <우아한 세계>의 송강호가 연기하는 중년의 아버지는 결국 일을 그만두지 못한 채 스스로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는 것과 비교하면 파멸적이고 전복적인 전개가 아닐 수 없다. <아메리칸 뷰티>는 미국 중산층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지만, 내겐 근육 성장이 인간의 자존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영화로까지 보인다. 레스터가 대마 대신 단백질 보충제 두 스푼을 저지방 우유에 넣고 흔들었다면 바디빌딩 권장 영화로 손색이 없다.


 난 어린 조카가 있는데 누워서 비행기 태워줄 때 벤치프레스의 효용을 느낀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방바닥부터 천장까지 오르락내리락해줄 수 있다. 상체에 근력이 부족하면 다이내믹한 연출을 할 수 없고 곧 지쳐서 지갑에서 지폐나 꺼내서 나가 놀라며 조카의 등을 떠밀 게 뻔하다. 나는 지갑도 지키고 운동도 하면서 재밌는 삼촌 역할을 도맡는다. 헬스 근육은 실생활에 아무 쓸모도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난 가빠가 주는 정신적인 감응과 조카의 행복을 거론하곤 한다.


 오늘도 월요일이라 벤치 옆에 수많은 헬스인이 모여 있었다. 다들 월요일은 벤치지, 하는 얼굴로 차례를 기다렸다. ‘참 성가시군.’ 난 애써 신경을 끄고 팔과 흉부가 동시에 자극하면서 횟수를 채워나갔다. 몸일 달달 떨릴 정도로 부담스러운 중량을 매달고 밀어 올리면 전신에 부하가 걸린다. 머리가 띵해지면서 얼굴이 벌게졌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어.’ 내가 일어나자 곧바로 머리가 짧은 청년이 벤치에 발라당 누웠다. 오르락내리락 끝없이 반복하는 시시포스처럼 운동은 끊이는 법이 없다. 월요일에는 세상의 모든 무게를 짊어진 것처럼 심각한 얼굴로 벤치에 누워보자. 당신의 가슴은 여전히 월요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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