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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Feb 28. 2021

등짝으로 만든 세계관

운동 <데드리프트>

 내가 글쓰기보다 수월하게 생각하는 건 헬스다. 다른 말로 근력운동이면서 파워리프팅이고 어쩌면 보디빌딩이면서 그냥 약수터에서 웃장 깐 아저씨의 몸 푸는 운동이다. 글쓰기가 추상의 세계라면 헬스는 중세 기사의 마상시합처럼 승패가 명백히 드러나는 싸움이다. 드느냐 혹은 못 드느냐. 가령 오늘 120kg 바벨을 8회씩 6회 들었는데, 간단한 산수로 내가 들어낸 중량을 수치화할 수 있다. 그래서 난 글을 쓰다 허공에 아웃복싱하는 기분에 시달릴 때면 헬스장으로 간다. 헬스는 글쓰기와 달리 결괏값이 거울에 비친 내 몸뚱이에 고스란히 드러나니까. 저녁에 제육볶음을 먹으면 한걸음 뒤처지고, 자기 전에 냉동실 비비고 군만두를 외면하면 조금 더 나아질 뿐이다. 내가 두 시간을 공들여 쓴 글은 클릭 한 번에 휴지통으로 사라지지만, 헬스장에서 시간을 할애하면 근력은 틀림없이 살아남는다.


 월요일이 가슴을 하는 날이라면, 화요일은 뒤태를 관리하는 날이다. 등짝과 엉덩이, 허벅지에 가장 효율적인 운동은 단연코 데드리프트다. 처음 데드리프트를 할 땐 죽을 듯 힘이 들어서 '데드'라고 부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쇳덩이처럼 죽은 물체를 들어 올리는 운동이라서 붙여진 호칭이란다. 가슴을 단련하는 벤치프레스가 가슴 위로 밀어 올린다면, 데드리프트는 대퇴사두근과 둔근, 척추기립근을 써서 쇳덩이를 바벨을 땅에서 뽑아 올리는 동작이다. 데드리프트는 트레이너가 꼽는 가장 효과적인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전신을 자극하는 데다 고중량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시간이 부족할 때는 곧잘 데드리프트만 하고 나온다. 강호동 몸무게를 훌쩍 넘는 쇳덩이를 몇 번 들었다 내리면 온몸에 부하가 걸리는 걸 느낄 수 있다. 점점 더 목 짧은 덩치가 되어가는 기분이지만, 단 30분 만으로도 속이 메슥거릴 정도의 높은 운동 강도를 느낄 수 있다.


 오늘은 오전 내내 회의네 면담이네 보고서네 정신이 없었다. 녹초가 돼서 점심시간엔 커피잔에 코 박고 쉬려 했지만, 어제 먹은 치킨이 아직도 뱃속에서 포화지방을 양산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억지로라도 헬스장에 출근해야 했다. 이를 꽉 물고 싫은 티를 숨기며 데드리프트를 했다. 죽어있던 세포가 일제히 봉기하면서 송장 신세를 면했다. 중세 기사는 십자군 전쟁을 위해 갑옷을 걸쳤지만, 나는 벨트와 가죽끈을 몸에 묶고 기껏해야 단백질 음료나 마시면서 앓는 소리를 낸다. 계단을 오를 때 조여 오는 엉덩이 근육만으로 승리의 함성을 내지른다. 쇳덩이와 물아일체 된 내 몸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강렬한 힙합 비트가 귀에 쫙쫙 달라붙는다. 세트가 끝나면 허리에 손을 올리고 헬스장에 붙어있는 고통을 단련하라는 문구를 읽어본다. '참 멋있으면서 무시무시한 말이야.' 난 파워에이드 광고라도 찍듯 몸을 웅크리며 숨을 몰아쉬다가 샤워장으로 향했다. 이건 자기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전 뱃살과 싸움이 아닐까.


 데드리프트는 웨이트 트레이닝의 3대 운동임에도 대다수에게 생소한 운동이다. 그래서 그 중요성에 비해 잘 다뤄지지 않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주연 배우 '브래들리 쿠퍼'가 데드리프트를 하는 장면이 짧게 나오지만, 그다지 멋진 장면으로 보이진 않는다. 촬영을 위해 몇달을 고생했을 배우의 근육은 근사하지만 왜 데드리프트가 영화에서 인기가 없는지 잘 보여준다. 데드리프트는 다른 운동에 비해 역동성이 부족하다. 그냥 앉았다 무거운 걸 들고 일어서는 동작 뿐이라 볼 게 없다. 같은 등 운동 중에서도 턱걸이나 로우 운동은 멋진 몸매를 뽐낼 수 있는 자세가 나오지만 데드리프트는 폼이 안 나서 그런지 대체로 찬밥 신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처음 데드리프트를 접할 때 목적은 단순했다. 여성 평균 체중이 50~60쯤 될 테니 그 정도 무게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척추기립근을 갖고 싶었다. 영화 <마담 뺑덕>에서 정우성이 여배우 이솜을 번쩍 들어 올리고 침대로 향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한 치 미동도 없는 편안한 표정으로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현대 과학은 에이스침대가 아니라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꾸준한 운동으로 다져진 정우성의 넓은 등짝에 있었다. 마치 라오콘 조각상처럼 육감적인 정우성의 뒤태는 매주 화요일마다 내 허리를 곧추세웠다. 


 넷플릭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프랜시스(케빈 스페이시 분)는 고위 정치인으로 권력에 대한 야심에 매일 혈전을 치르며 산다. 살인과 음모, 배신과 암투, 묘략과 획책 등 내가 아는 무서운 짓만 일삼는 피곤한 인생이다. 가까스로 집에 돌아와도 아내인 클레어(로빈 라이트 분)가 힐러리를 능가하는 야심을 가진 인물이라 숨통을 조여 온다. 게다가 프랜시스는 그 바쁜 와중에도 워싱턴 헤럴드의 야망 있는 젊은 기자 조이 반스(케이트 마라 분)와 바람까지 피운다. 이렇게 안팎으로 피곤한 프랜시스의 스케줄은 드라마 <24>의 잭 바우어 못지않게 촘촘하다. 이쯤에서 시즌을 다섯 개 치르고도 건재한 프랜시스의 체력관리 비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처럼 홍삼이나 녹용 같은 보양식을 먹나 했더니 비결은 로잉머신에 있었다. 그는 새벽에 귀가한 후에도 잠자리에 들기 전 로잉머신에 올라탄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노령의 정치인이 어쩜 그렇게 정력적일 수 있는지 변명이라도 하듯이 매화마다 빠짐없이 로잉머신 장면을 넣었다. 시간을 쪼개서라도 근력을 관리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메시지일까. 그만큼 등 근육은 노화에 무너지기 쉬운 허리와 승모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하우스 오브 카드> 방영 이후에 미국에서 로잉머신이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기사가 나왔다고 하니 시청자는 프랜시스의 지칠 줄 모르는 야욕의 비결로 로잉머신으로 다져진 탄탄한 등 근육을 떠올린게 아닐까.  


 로잉머신은 올림픽 종목이기도 한 조정 훈련 장비다. 조정 동작 자체가 로잉 머신의 움직임과 유사하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 분)에게 거액의 소송을 거는 윙클보스 형제(아미 해머 분)도 실제 미국 조정 국가대표 선수였다. 윙클보스 형제는 얼굴도 잘생겼고, 명망 높은 집안 출신인 데다 부유하고 공부도 잘하는 엄친아 금수저에 몸짱이다. 그에 반해 마크는 딱 보면 하루종일 컴퓨터나 끼고 사는 찐따에 약골처럼 보인다. 윙클보스 형제는 페이스북 초기 아이디어를 마크에게 제공했지만, 마크가 개발 과정에서 형제를 따돌리면서 갈등을 촉발시킨다. 페이스북이 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며 승승장구하는데 마크는 왜 굳이 학교 친구들이기도 한 이들을 배신했을까. 그들은 아무리 봐도 저커버그의 친구들보다는 동업하기에 적합해 보인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마크 저커버그가 지닌 열등감이 윙클보스 형제와 멀어진 이유라고 지목한다. 영화는 페이스북으로 억만장자가 되고도 윙클보스 형제에게 미묘한 열등감을 느끼는 장면을 곳곳에 삽입했다. 마크가 절친 왈도 세브린과 멀어지고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집착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그놈의 외모콤플렉스! 심지어 무리를 해서까지 페이스북을 통한 사업 확장에 나선 이유마저 마크의 열등감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천재 개발자는 모든 걸 가진 듯 보였지만, 형제의 우월한 피지컬은 닮지 못했으니까. 누구나 이름을 아는 셀럽이 되었지만 왈도의 너그러운 성격과 잘생긴 얼굴까지는 갖지 못했으니까. 여자 친구가 자신을 차버린 이유마저도 자신의 볼품없는 외모 탓으로 돌렸으니까.(극 중 저커버그는 제 말투가 얼마나 무례한지 잘 모른다) 무엇보다 윙클보스 형제의 떡 벌어진 등판은 그가 매일 헬스장에서 살다시피에도 금세기에는 만들 수 없는 피지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마크의 마음을 알아주고 댁에 로잉머신이라도 놓아 드렸다면 페이스북 사업 과정에서 벌어진 대규모 소송 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지난주처럼 등 운동을 무사히 마쳤다. 윙클보스 형제 못지않게 등이 넓어진 기분이다. 운동 후에 꼼꼼하게 스트레칭도 마쳤다. 김종국이 식사까지가 운동이라기에 저녁으로 연어 초밥을 먹었다. 유튜브 짐종국 채널에서 물회에 회를 말아서 맛있게 먹는 김종국을 보면서 나도 연어 초밥을 두 조각 더 주문했다. 카페에 가서는 근육통을 삭히려고 카페인이 잔뜩 든 커피도 마셨다. 짐종국 채널 다음으로 넷플릭스 피지컬 백을 켰다. 세상에 이렇게 등이 멋진 사람이 많단 말인가. 난 잠시 열등감에 시달릴 뻔했다가 저커버그처럼 노트북이나 붙들고 글이나 쓰기로 했다. 자, 등짝은 이만하면 됐으니 내일은 하체를 단련할 생각이다. 일주일의 한 복판, 지치기 마련이니 각오를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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