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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r 29. 2021

콧수염과 허벅지

운동 <스쿼트>

 수요일은 하체를 하는 날이다. 수요일에 하체를 해야 하는 이유는 딱히 없다. 뭐 억지로 찾아보자면 느슨해지기 쉬운 일주일의 복판에 가장 고된 운동을 껴 넣어서 정신을 차리자는 의미다. 바쁜 직장인이라면 주 3일 운동도 버거운 일이니 하체를 마지막으로 주말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월요일은 가뿐한 가슴 운동을 하고, 화요일엔 등을 잡아줬으니 남은 게 하체뿐이기도 하다. 나머지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유산소 운동을 하거나 어깨나 복부 팔처럼 작은 근육들을 단련한다. 즉, 수요일이 주간 헬스의 하이라이트라는 말이다. 하체를 얼마나 가혹하게 하느냐에 따라 운동의 질이 판가름 난다. 근육의 7할이 하체에 있으니 두말할 거 없다.


 하체 운동으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다 닳아 떨어지게 자극하면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가장 짜릿한 순간은 자고 일어나서 목요일 아침 사무실 계단을 오를 때다. ‘내 엉덩이가 거기 붙어 있었구나. 하도 조용해서 없는 줄 알았지.’ 걸을 때마다 엉덩이가 중력에 저항하며 봉기하는 광경이 그려진다. 종일 사무실 의자에서 짓눌렸던 지방 덩어리가 찢어지고 그 자리에 단백질 알갱이들이 콕콕 박힌다. 그걸 초과 회복이라고 하던데, 단순히 근력 운동을 넘어선 노화에 대한 거스름이자, 몇 조각 뜯어먹고 방치된 파전처럼 눅눅해진 자존감의 회복이다.


 최근 동네에 새로 생긴 체육관에 들렀다. 평소 가던 곳이 지겨워지던 차에 개업 소식을 듣고 염탐 차 갔다. 최근 부침을 겪고 있는 하체 운동을 증강할 기회로 삼고 싶었다. 등록비는 비쌌지만, 오픈 기념 할인 중이라서 큰 맘 먹고 등록했다. 난 몸의 변화가 미미하고 무게를 드는 게 더뎌질 때 주로 장비 탓을 한다. 근데 최근에 장갑, 벨트를 새로 뽑고도 별 진척이 없어 다른 핑계가 필요했다. 이걸 나이 탓으로 돌리면 억울하니 장소라도 바꾸면 좀 낫지 않을까 기대했다. 장비 탓 대신 장소 탓을 하는 셈인데 노화가 아닌 정신력에서 이유를 찾고 있다. 늙은 게 아니라 조금 권태로울 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다니는 싸구려 클럽에서 족히 삽 십년은 운동을 했을 것 같아 보이는 베테랑 어르신들과 섞여서 운동을 하다보면 나까지 힘에 부치는 기분이다. 시설 좋은 곳에서 스판덱스 운동복을 입고 몸매를 자랑하는 회원들의 청량한 기운을 느끼고 싶었다. 약물 사용이 의심되는 거대한 근육을 가진 청년들 사이에서 운동하면 당연히 더 큰 자극이 온다.


 새 헬스장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조명이었다. 단백질 셰이커를 흔들며 어깨에 복압 벨트를 걸친 내 모습이 지큐 화보에나 나올 것처럼 근사해 보였다. 의기양양해진 나는 몸도 안 풀고 바로 쇳덩이를 어깨에 얹혔다. 쇳덩이라고 부르기에는 딱 봐도 값비싸 보이는 엘리코 제품이었다. 스테인레스 스틸을 어깨에 얹고 한 세트를 마치자마자 몸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내가 많이 약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작 140킬로에 이렇게 통증을 느끼다니. 한 해 한 해 들어 올리는 무게가 줄어들고 있다. 이제 어디 가서 삼 대 오백 친다고 허풍은 못 치겠다. 사면에 붙어 있는 거울이 내 몸을 적나라하게 비췄다. 지큐 화보는커녕 나약한 사내의 당혹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알던 강인하고 날렵한 몸뚱이는 온데간데없고 굼뜨고 느려 터진 아저씨가 거울 속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난 성급히 내 눈을 피했다. 표정을 가다듬고 단백질 파우더의 달곰씁쓸한 맛을 음미했다.


 다음 세트를 준비하는데 어쩐지 멀찍이서 한 무리가 내 운동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자존심상 바벨을 빼서 무게를 덜어낼 수 없었다. 하체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 괄약근과 배에 힘을 꽉 주고 다시 리프팅을 시작했다. 고통스러우면서도 저항이 불가능한 공개적인 시험대에 나를 내맡겼다. 나는 힘이 빠지는 걸 가까스로 참아내며 10개를 채웠다. 근데 나를 지켜보는 줄 알았던 무리의 시선이 내 옆자리에 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 나보다 바벨을 30킬로쯤 더 끼우고도 조용히 열 개씩 해대는 청년이 있었다. ‘여긴 자기반성을 불러일으키는 유형의 체육관이로군.’ 세상에는 강한 자들이 너무 많다. 헬스장 곳곳에서 날고뛰는 청년들이 가슴 등 어깨를 과시하는 게 보였다.


 개업한 헬스장의 가장 큰 장점은 최신식 웨이트 기구가 즐비하다는 점이다. 노 젓는 로잉머신도 벤츠처럼 고급스러웠고, 바이크 기구는 내 몸의 바이오리듬을 수치화해서 그래프로 보여줬다. 심지어 산소호흡기가 달린 러닝머신도 있었다. 심장 모니터 전극과 대형 텔레비전 스크린이 달린 장비였다. 퇴근하고 헬스장에 들른 열 명 안팎의 직장인들이 산소호흡기를 끼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모습을 상상이나 한 적 있던가. 조지 오웰이 여기 왔으면 이들이 바로 빅 브러더의 노예들이라고 호통을 쳤을 것이다. 머릿속에 하등 도움될 거 없는 우스갯소리나 집어넣으며 유산소 운동을 하는 꼴이라니. 그래서 나도 한 번 러닝머신에 올라타봤다. <고등래퍼> 재방송을 보며 러닝을 하니 무릉도원에서 신선놀음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운동이 아니지. 쇳덩이 없이 설렁설렁하는 건 나랑 어울리지 않아.’


 다시 랙 장비로 돌아가서 누가 볼세라 10킬로 바벨을 빼내고 세 번째 세트를 시작했다. 벌써 허벅지에 감각이 없는 것 같았다. 옆자리에 아리따운 여성분이 있었지만, 힘이 드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제 허세가 통하지 않는 나이로군.’ 힘이 빠지는게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가빠지는 호흡을 진정시키느라 저 멀리서 몸을 푸는 한 무리의 회원들을 지켜봤다. 제발 스판덱스만은 입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은 사람들이 요란한 트레이너와 함께 몸을 풀고 있었다. 거울 위쪽을 보니 일일 피티 가격이 무려 한 시간에 십만 원이나 했다. 온갖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젊고 잘생긴 트레이너가 우람한 근육을 뽐내며 사람들의 자세를 잡아주고 있었다. 저렇게 느슨하게 하면서 레슨비를 받다니! 어쩌면 나도 더 열심히 노력해서 트레이너를 해볼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느니 운동에 올인했어야 했는데.’ 안 돌아가는 머리를 붙잡고 책상머리에서 씨름할 게 아니라 쇳덩이와 마주하는게 내 운명이었을지도. 


 한때 체육인으로 사는 삶을 상상한 적이 있다. 육체적인 실감이 세상의 모든 문학적인 수사보다 더 현현할 때, 만약 노동이 운동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했다. 랩 하면서 돈을 버는 래퍼들보다 행복할 것 같았다. 골을 넣으면서 매주 수억씩 버는 손흥민보다 재밌을 것 같았다. 그러면 출근해서 운동하고, 일하면서 운동하고, 퇴근할 때도 운동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럼 가책 없이 저녁엔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다음 날엔 해장으로 임연수어를 흡입했을 텐데. 그럼에도 내 몸은 점점 더 조각처럼 단단해져서 밤에 유용하게 쓰였을 텐데. 문학은 무슨 문학이고, 내 경험상 밤에는 육체만 현현하다. 치솟는 테스토스테론은 사무실 노동과는 거리가 멀다. 쓸데없는 잡념이 끼어드는 걸 보니 운동을 마칠 때가 온 것 같다.


 네 번째 세트를 시작할 때 옆자리 여성분이 휙 가버렸다. 얼마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어쩐지 야속함이 느껴졌다. 힘이 빠지는 속도가 가팔라졋다. 내게 가해지는 중력 가속도가 9.8㎨를 초과해서 나를 주저앉힐 것처럼 굴었다. ‘그래 짐 챙겨서 나가자.’ 짐을 챙기려던 차에 스판덱스 여신이 사라진 자리로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덩치가 물통과 벨트를 내려놓았다. 다 값비싼 장비들이었다. ‘뭐든 장비 탓으로 돌리고픈 그 마음 내가 잘 알지.’ 그는 태닝 기계에 초벌구이 한 몸처럼 까무잡잡했다. 무슨 식용유를 처발랐는지 번들거렸다. 머리를 바짝 세웠고 콧수염을 길렀지만, 관리가 안 되어 김흥국과 닮았다. 콧수염은 몸을 풀면서 지나치게 인위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건 분명히 누군가를 의식한 표정이었다. 그의 팔뚝 안쪽에 달팽이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민트 그린 색 나이키 트레이닝 상의에 언더아머 쫄쫄이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나처럼 130을 끼우고 스쿼트를 시작했다. ‘옆자리에서 하체 운동을 하고 있으면 삼가는 게 예의인데, 이거 선 넘네.’ 어느새 분위기는 다시 시합의 장으로 변해버렸다. 미련한 경쟁이 시작됐다. 그가 한 번 하면 내가 그보다 한 개 더하고, 그가 다음 세트에 무게를 늘리면, 나도 오 킬로를 더 끼워서 우위를 점했다. 그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이었다. 어디서든 경쟁을 모토로 삼고, 내가 응하지도 않았는데 싸우려고 들었다. 그는 세트마다 인위적인 포즈로 날 메슥거리게 했다. 거울을 보면서 자가 만족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변태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아무도 사진을 안 찍는데도 끊임없이 포즈를 취하는 게 나를 도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싸움을 걸면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오늘 인생을 건다.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난 내일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다행히 콧수염은 에어팟을 귀에 꽂고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남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큰 목소리로 애인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스무고개를 시작했다. 그가 하는 이야기란 놀랍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다. 자신이 운동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오늘 자기를 괴롭힌 상사가 얼마나 역겨운지, 요즘 산 롤렉스 시계를 어떻게 구하게 되었는지, 대학 시절 룸메이트를 최근에 만났는데 자신과 달리 폭삭 늙어버렸다든지, 실내 인테리어 견적을 뽑았는데 얼마라든지, 마무리는 구색을 갖추려고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뽀뽀로 끝맺었다. 절로 타이레놀 두 알을 찾게 하는 자의식 과잉이었다. 난 아니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스쿼트 중량을 더 늘려서 150을 끼웠다. 그는 점점 더 크게 떠들기 시작했다. 헬스장 음악 소리를 압도하는 떠버리였다. 내 하체는 분노로 점점 더 부풀었다. 그의 요란한 기합 소리와 신음 섞인 말을 다 견뎌내는 통화 너머의 여성분은 신사임당인가. 아무리 애인이라도 그렇게 낑낑대는 걸 듣고 싶을까. 콧수염은 지치지도 않고 몹시 심각한 표정으로 하나도 안 궁금하고 안 중요해 보이는 소리를 줄줄 이었다. 그 결과 나는 생각보다 그에 관해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관세음보살에 가까운 초탈한 표정으로 그의 요즘 일과를 주워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 블로그에 어제 올린 글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저 콧수염이 공공장소에서 떠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공해에 가까운 잡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수화기에 대고 떠들어대는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과도한 자의식으로 점철된 신변잡기야말로 내 글의 총체 아닌가. 그래도 난 부끄러운 걸 알아서 글로 쓰니까 정당방위인 셈이다. 


 콧수염 덕분에 평소보다 운동을 삼십 분 더 했다. 나는 결국 허리의 통증이 와서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장비를 챙겨 조용히 자리를 떴다. 다음에 보자 콧수염. 샤워실로 향하는데 내 뒤로 보이는 거울 속의 콧수염이 허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미움이 사그라들며 그가 안쓰러워 보였다. 다 먹고살려고 하는 건데 내 속은 왜 이리도 비비 꼬였는지. 그와 농담 한마디 나누지 않은 게 후회됐다. 알고 보면 다 귀여운 사람들 아닌가. 그가 늘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탈모 관리를 잘해서 휑한 머리가 더는 날아가지 않기를. 늘 근육질의 몸을 유지하길.


 새로 개업한 곳이라 그런지 샤워실은 비누마저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 이런 거대한 바우하우스풍 헬스장을 짓는다는 게 말이 되나. 역시 돈은 없는 사람만 없지.’ 샤워실 거울을 보니 내 하체가 보기 좋게 부풀어 있었다. 복부는 굳이 눈여겨보지 않았다. 오늘 밤은 진짜 사과 한쪽만 먹고 자야지. 콧수염 아저씨를 보니 예전처럼 짝을 이룰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같이 닭가슴살도 먹고 운동하고 걸어서 산책도 하고 샤워할 때 수다도 떨 친구가 그리웠다. 나는 요즘 소란이 필요하다. 하체의 중요성을 글로 쓸 게 아니라 운동 끝나고 맥주 한잔에 치킨을 하면서 떠들 연인이 필요했다. 어디 운동  잘하는 사람 없나. 


 집에 돌아와서 몸을 뉘었다. 다리에 힘이 없는데 뜨거운 물까지 들이부었으니 몸이 늘어질 수밖에 없다. 왓챠에서 <데브스>라는 드라마를 틀었다. 미래 사회를 그린 SF 장르인데 다들 몸이 날씬했다. 나는 등을 뒤로 기댄 채 모니터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아몬드와 요구르트를 저녁 대신 늘어놓고 흐리멍덩한 눈동자로 8화 짜리 드라마의 첫 화를 끝냈다. ‘저 미래사회에는 체중 조절도 기계가 해주겠지. 아몬드는 하루에 25알까지만 먹는 게 좋다고 하던데.’ 나는 동공만 열어두고 쩝쩝거리면서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머릿속은 차츰차츰 뒤로 물러났고 풀려가는 눈은 하루의 끝을 반겼다. 그러다 퍼뜩, '아 제기랄. 단백질 셰이크 먹는 걸 까먹었다. 운동하고 삼십 분 내에 먹어야 하는데!' 나는 용수철처럼 의자에서 몸을 튕겨내고 급히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낸 후에 초콜릿 맛 단백질 가루를 두 스푼 넣어서 벌컥벌컥 마셨다. 아이허브에서 유기농이라고 7만 원 넘게 주고 산 가루였다. 돈을 좀 들이니 비린내도 없고 소화도 잘된다. 누가 이런 건 선수들이나 먹는 거라고 했지만, 자고로 운동은 먹는 게 다라서 나도 샀다. 웃통을 벗고 거울을 보며 몸을 체크했다. 이전에 내가 당연한 듯 누리던 몸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걱정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어쨌든 오늘 내 하체는 수요일을 버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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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필코 운동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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