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자국씩 물러나며 거리를 둔다

#17 명절에 스스로 고립을 택한 사람의 변

by 박민진

스타벅스엔 나 말고도 뭔가에 치중한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다들 저리 심각한 표정들을 하는 걸 보니 확실히 스타벅스는 부동산 임대업이 맞았다. 우리 모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아이폰을 외면한 채 고개를 처박고 열심히 뭔가에 몰두했다. 난 옷차림과 탁자에 올려진 책 그리고 표정만으로 그들의 삶을 추측할 수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오해와 억측을 반쯤 섞은 그들의 사정을 상상했다. 곳곳에서 들리는 화기애애한 소리를 피해 귀를 틀어막은 저들을 보라. 뭣들을 하는 건지 알 수는 없다만 다들 힘내시길. 난 그들과 연대 의식 비슷한 걸 느끼면서 다시 내 글에 몰두했다.


단단하게 굳어있는 경추 부근을 주무르며 잠시 쉬는데, 구석 자리에 앉은 늙수그레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십 년은 넘게 쓴 것 같은 구형 노트북으로 뭔가를 쓰고 있었다. 기지개를 켜며 힐끔 훔쳐보니 분명히 글을 쓰는 사람으로 보였다. 중간에 한숨을 푹푹 내쉬며 허공을 응시하는 게 딱 나랑 비슷한 종자였다. ‘주의가 산만할 때 옆 사람을 빤히 지켜보는 것도 딱 나네.’ 자세히 보니 노트북 옆에는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이 놓여있었다. <가면의 고백>이네. 부모에게 학대당하고, 평생을 병약하게 살다가 할복자살로 삶을 마감한 미친 인간의 소설이다. 타인의 시선에 못 견뎌 가면을 쓰지 않으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는 병적인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옆에 놓인 두툼한 노트엔 뭘 적었는지 글씨가 빼곡했다. 저 양반은 대체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창밖을 보니 비가 온다. 늘 보던 동네가 더 어여삐 보인다. 커피도 맛있고 정리할 원고까지 산적하니 유능한 도시 남자가 된 기분이었다. 읽지도 않는 책을 잔뜩 꺼내놓고 늘 비슷하지만 미세하게 다른 글을 이리저리 고치면서 작가 흉내를 냈다. 표정만큼은 존스홉킨스대 의과대학 연구원처럼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이런 삶의 방식이야말로 내가 택한 중대한 결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기꺼이 택했지만 어디 가서 털어놓기는 어려운 생각이었다.


난 월급을 모아 적령기에 식을 올리고 직장생활에 전념하며 적금을 붓고 아이를 둘쯤 낳는 삶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친지들의 결혼 타령도 이제 멎었고, 세간의 말에도 콧방귀를 뀔 만큼 삐뚤어진 지 오래다. 살짝 비껴간 느낌으로 아메리카노에 샷이나 추가해 마시면서 자족한다. 난 미끄러진 게 아니라 살짝 티가 안 날 정도로 보폭을 달리하며 걷고 있다고 강변하는 글을 쓴다. 그걸 아무도 몰라주니 문제긴 한데, 현재로선 아무리 주판을 튕기며 값을 구해봤자 엉뚱한 값이 나올 뿐이다. 값이 딱 떨어지지는 않아도 근사치라고 믿고 산다. 누군가 앞으로 계획이 뭐냐고 물으면 곤란한 듯 입술을 씰룩대며 눙친다. 나 하나쯤 궤도를 이탈해도 괜찮지 않을까. 세상은 뭐가 됐든 잘만 굴러가니까. 고라니처럼 풀숲 아래 숨어 티 안 나게 자취를 감추고 살면 그만일 것이다. 한산한 스타벅스는 조용히 풀을 뜯기에 적당한 은닉처다. 풀이 좀 비싸서 문제지 나랑 비슷한 고라니들이 수두룩하다.


창가 자리에서 애정 행각에 한창인 한 쌍의 고라니를 노려보는데 동네에 사는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잠시 보자고 해서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귀찮기도 했지만, 입에 단내가 날 지경이라 차나 한잔 하면서 떠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너무 고립되면 외곬으로만 치닫기 쉬우니까. 난 집에 도착하자마자 향기로운 예가체프 원두를 내리고 녀석을 맞았다. 동생은 나 못지않게 대책 없는 고라니가 걱정이 크다. 일 번 고라니인 내가 은닉형이라면 동생은 막내 고라니처럼 생각이 너무 많아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다. 녀석은 요즘 여자 친구와 관계가 소원해졌단다. 단점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면서 연애 초기의 감정이 식어가고 있단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아니 그게 당연하지. 시간이 지나도 계속 예뻐 보이기만 하면 그게 김태희지. 난 온갖 고민을 늘어놓는 녀석을 바라보며 꽤 즐거워졌다. 저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내게 해주는 이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우리 대화는 이렇게 단출하다. 일상의 온갖 것을 늘어놓고 시시덕거리는 게 다다. 우린 술도 안 먹고, 게임도 안 하고 그렇다고 같이 영화를 보지도 않는다. 딱히 할 게 없으니 서로의 처지를 들어주며 얘깃거리를 만들어낸다. 녀석은 내 집을 참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계속 사다 놓는 신간 서적과 드립 커피를 부러워한다. 누추한 곳이지만 오막살이집일망정 내 공간인지라 녀석의 시샘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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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레데릭 바지유라는 작가의 <콩다민가의 화실>이라는 그림을 좋아한다. 몇 년 전에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후, 생각날 때마다 구글에서 찾아본다. 1870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내가 느끼기에 바지유가 작업실을 자랑하려고 그린 것 같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넘쳤던 바지유는 모네, 마네, 르누아르, 시슬레 같은 화가들을 자기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즐겼다. 그의 작업실은 창문이 높고 벽에는 건강한 여자들의 나체화가 걸려 있다. 어쩜 예술가들에게 꿈과 같은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창문으로는 파리의 값비싼 주택이 눈에 들어오고, 그는 왕성한 창작욕이 자랑하듯 벽마다 그리다 만 그림을 세워놓았다. 초대받은 바지유의 친구들은 그의 화실에서 저마다 뭔가에 열중해 있다. 오른쪽에선 피아노를 치고, 바지유 본인은 이젤 옆에 서서 쉴 새 없이 떠든다. 그 옆에 수줍은 두 남자는 층계를 사이에 두고 속삭이듯 바지유 흉을 본다. ‘저 돈 많다고 자랑하는 부르주아를 봐봐, 역겹지 않냐’ 당시엔 인스타그램 같은 대놓고 자랑할 공간이 없었을 테니 이해해줄 만하다.


프레데릭 바지유는 저녁 늦게 친구들을 배웅하고 뭘 했을까. 실컷 떠들었으니 다시 커튼을 치고 그림을 그렸을까. 밤마다 찾아오는 그녀와 달콤하게 키스를 나눴을까. 커피를 내리고 작업실 구석에 놓인 이젤 앞에서 끊어졌던 흐름을 이어 붙였을까. 어쩌면 걱정이 앞섰을지도 모른다. 아까 얘기를 나눈 세잔과 마네의 특출 난 재능에 불안감을 느꼈을지도. 내가 걔들보다 나은 건 이 번지르르한 화실뿐이잖아. 바지유는 내심 초조해하며 창작을 이어갔을 것이다. 난 구글로 바지유가 생전에 그렸던 그림을 구경했다. 내가 보기에 바지유는 널찍하고 화려한 작업실에서 녹록지 않은 세상사를 그려냈다. 소란한 세상에서 몇 걸음쯤 떨어져 사물과 풍경 하나하나를 공손하게 묘사했다. 그는 29살의 약관의 나이에 보불전쟁에 참전해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사망했다. 그와 그의 작업실은 이제 그림으로만 남겨진 셈이다.


동생을 집에 보내고 바지유처럼 쓰던 글을 다시 펼쳤다. 언어에 어떤 패턴을 만들기 위해 문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유머도 몇 스푼 첨가하고, 위악은 두 스푼 덜어냈다. 확 지울까 하다가 그간 들인 공을 생각해 어렵사리 글을 마무리했다. 50세면 나는 작가로서 떳떳할 수 있을까. 60엔 굶주리지 않고 어디 가서 글 좀 쓰네 하며 뻐길 수 있을까. 바지유처럼 넓은 작업실까진 아니더라도 지금 사는 집 정도는 유지할 수 있다면 좋겠다. 청약통장이 기적을 일으키기를 바라야 하나. 지금처럼 동생과 커피 한잔할 수 있으면 족한데. 그러려면 다시 자리에 앉아 빈 페이지를 마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