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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Feb 27. 2021

직장상사와 그럭저럭 지내는 게 가능할까

#30 차마 단추 하나 달지 못한다고는 말을 못 꺼냈다

 초등학교 가정 시간에 바느질을 배웠다. 옆 짝이랑 시침질을 하며 웃고 떠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난 여태 바느질을 못한다. 그 흔한 단추 하나 떨어져도 달지 못한다. 대체 뭘 배웠는지 바느질이라는 원리 자체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 당시 수업시간에도 삐뚤빼뚤한 박음질로 모양만 흉내 내서 그냥 제출했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대충 수습하는 건 여전하다. 처음 사회생활을 하며 독립했을 때 난감했던 순간 중 하나가 외투에 떨어진 단추를 어쩌지 못했을 때다. 난 황폐한 자취방에 어두커니 서서 내가 이룬 고요한 아침과 내가 놓친 어머니의 보살핌을 동시에 느꼈다.


 나는 여태껏 바느질처럼 살아왔다. 한 성인이라면 응당 해내는 나잇값마저 대충 흉내 내는 정도에 그쳤다. 내실이 없으니 표정만이라도 의연하게 지으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눙치기 일쑤였다. 일이나 관계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겼다. 겉치레에 가까운 방식을 터득해 되려 뻔뻔하게 굴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그렇게 요령만 늘다 보니 비난도 많이 받았다. 특히 일을 할 때 꼼꼼하지 못했다. 평생 공무원으로 사신 우리 아버지가 어려서부터 기술을 배우라고 잔소리를 했던 게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물론 대충 수습하는 일도 쉬운 건 아니었다. 그럭저럭에도 품이 들고 스트레스가 있기 마련이다. 남들이 그쯤 하면 된다는 정도에 그치니 마음이 켕길 때가 많았다. 최선을 다하지 못해 마음이 쓰이는 게 아니라 남들이 노력을 안 한다고 욕할까 봐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참을 만했다. 퇴근 후 세 시간은 꽤나 달콤하니까. 5일을 버티면 평화로운 주말 아침이 날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런 정신머리로 운 좋게도 살아남았다.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걱정이다.


 한때 모셨던 직장 상사가 내 교묘한 태도를 간파했다. 그는 출중한 경력과 감식안으로 변방에서 어슬렁거리던 나를 사자처럼 덥석 물었다. 그간 잘 속여왔는데 하이에나가 임자를 만난 셈이다. 그는 내 정신머리를 바꾸겠다고 나섰다. 은퇴를 코앞에 두고 마치 인생의 마지막 과업이라도 만난 듯 굴었다. 정신 개조라는 말을 자주 썼고, 이런 말도 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검색창에 쳐보니 이 말은 중국 남송시대에 편찬된 주자어류(朱子語類)라는 책에 나오는 소리란다.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어떤 일이든 이루어진다는, 이소룡이나 할 법한 소리다. 나긋나긋하게 조언해주는 안철수 같은 멘토라면 좋았을 텐데, 그는 내 머리 위에 올라타 사사건건 개입했다. 심지어 운동을 심하게 하면 다음날 지장이 가니 헬스장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라는 말도 했다. 그의 얼굴엔 철두철미한 인생을 살아온 자의 자부심과 결격된 자를 바라보는 증오가 뒤섞여있었다. 잘 다려진 근무복을 입고 다리를 꼰 채 내가 출근하기를 기다렸다. 난 그에게 불려 가 억지웃음을 한 바가지 하고서는 머리를 긁적이는 일이 잦았다. 죽상을 짓다가 네 부르셨습니까, 하며 걸어가는 내 모습은 가관이었다. 표정 관리가 안돼서 입꼬리 근육이 바르르 떨렸고, 파티션 아래서는 제발 오늘 아침엔 나를 찾지 않기를 기도하며 숨죽였다. 난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만 한다는 스피노자의 말을 왜곡하는 그가 싫었다. 내가 일을 다해야 한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는 끝까지 몰랐을 거다. 내가 회사 앞 커피숍에서 버티다 정시에 딱 맞춰 출근하는 이유를.  


 난 이년 연속 부서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그의 덕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누가 보다라도 그의 케어 덕이었다. 성과급도 최상위로 받고 표창도 받았다. 주위에서도 나라는 존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살던 나를 에이스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사내 게시판에 오르내렸고, 내 목소리는 점차 커져만 갔다. 조금 건방져지고 허풍을 떨기도 했다. 나도 내가 달라졌다고 믿었으니까. 그는 나를 성장시켰다는 기쁨과 자부심을 가지고 은퇴했다. 회사를 떠나기 전에 내게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 조금 더 노력하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진취적인 메시지였고, 난 그에 화답하는 답신을 보냈다. 하지만 그가 떠나자 그 시절도 끝이 났다. 나를 지켜봐 주던 사람이 사라지니 대충 수습하는 내 버릇이 도졌다. 이 년 내내 조여온 나사가 어쩜 그렇게 하루아침에 풀릴 수가 있지. 난 결국 더 티 나지 않게 수습하는 방식을 터득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난 타자에 의한 변화를 믿지 않는다. 요즘 말하는 선한 영향력도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런 말은 그냥 듣기 좋으라는 하는 김난도 작가가 쓸만한 말로 치부한다. 결국 나는 내 기질에 맞게 살아간다. 반성하지 않는 어설픈 어른이라는 캐릭터를 메서드 연기로 소화한다. 싫은 걸 억지로 하기엔 인생은 짧지만 하는 척이라도 해야 생계를 지탱할 수 있다. 사사건건 신경 쓰고 살기에도 인생은 짧지만 체면치레는 해야 버틸 수 있는 직장 생활은 너무 길다. 그래서 난 어중간한 위치에 서서 딱 오늘 무사히 퇴근할 수 있을 정도로만 한다.


 내가 아는 독특한 전쟁 영화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태평양 전쟁 2부작이다. <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에서  편지>. 이오지마 전투를 배경으로 공격하는 미국 시점과 그걸 받아내는 일본 시점을 각각 다룬 영화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입장에  <이오지마에서  편지>. 2006 이오지마 땅속에서 발견된 수백 통의 편지에는 61   섬에서 싸웠던 사람들이 가족에게 남긴 이야기가 있다. 미군에 맞서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중장의 지휘 아래에 있던 일본 장병의 분투가 영화 얼개다. 우린 전쟁을 영웅이 만든 세계관으로 받아들인다. 승리엔 리더십이 패배엔 무능한 오판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투에 참가한 개개인에게 물어보면 전혀 다른 소리가 들린다. 전쟁이란 멋모르고 소총 하나 들고 뛰쳐나간 아수라장에 불과할 때가 많다. 전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이놈이 소리 지르면 저리 뛰고, 저놈이 윽박지르면 이리 뛰며 욕이나 하는 식이다. 위키백과가 기억하는 전쟁의 목소리는 명망 높은 으르신 말씀뿐이지만, 개개인이 죽어나간 사연은 이렇게 영화로나마 우리 앞으로 다가선다. <이오지마에서  편지>에서 사이고는 빵가게 주인인데 태평양 전선이 위태로워지자 차출된다.  봐도 병약하고 울보인  친구는 총도  쏘고 목소리마저 작아서 상관의 미움을 산다. 그래서 그는 자기 방식대로 적절히 타협하면서 전장을 버틴다. 동료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적진을 향해 뛰쳐나갈 때도 가장 뒤에 있고, 다들 졌다고 자살할 때도 퇴각을 선택한다. 그에게 명예로운 죽음은 개죽음일 뿐이다. 사이고의 머릿속에서는 처자식 생각이 가득하다. 대의명분 따위 가족 앞에서 통하지 않는다. 반면에 사이고와 달리 목소리를 드높이던 놈들은  죽었다. 명예가 어쩌고 제국이 어쩌고 황제폐하가 어쩌면서 영웅이라도 된 듯 멋진 말을 골라하던 녀석들의 말로를 보라. 야스쿠니 신사에 묻힐  있다고 좋아했지만, 역사는 그들을 전범으로 부를 뿐이다.  사이고의 생존에  안도를 느끼면서 영화를 껐다. 그래 사는  가장 위대한 명분이지. 가늘고 길게라도   있을 만큼만 무리하지 않고 남한테 민폐나 끼치지 않으면서 사는  내겐 미덕이다.


 아침에 코트 단추가 떨어져서 근처 수선집에 가 달았다. 평생을 바느질만 해오셨을 분위기를 띈 사장님이 천 원에 해주셨다. 그는 내게 단추 하나 달려고 여기까지 왔냐며 한 마디 하셨다. 난 쑥스러워 머리를 긁적이고 귀찮아서 왔다고 대답했다. 차마 단추 하나 달지 못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단추 따위 달지 못해도 살 수 있는 이 속된 도시는 이런 나를 그런대로 잘 받아준다. 오늘도 티 나지 않게 대충 수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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