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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pr 13. 2021

자전소설 쓰듯 자전거 타기

운동 <자전거>

 요즘 주말에 카카오 바이크를 탄다. 걸어가다가 내킬 때 주워 탈 수 있다는 게 좋다. 늘 걷던 최단 경로를 이탈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골목골목을 죄 누빈다. 오늘도 종을 딸랑딸랑 울리면서 하굣길 아이들과 눈인사를 하며 포카리스웨트 광고를 흉내 냈다. 그렇게 한참을 타다 한적한 카페에 세우고 내 몸에 가까운 커피도 한 잔 마시며 봄 햇살을 즐겼다. 바야흐로 요즘 계절의 정점을 만끽하고 있다. 지금 이 날씨를 누려두지 못하면 일 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


 자전거는 해가 질 때 타는 게 제맛이다. 나른함에 고개를 뒤로 젖히고 석양에 채색된 구름을 구경한다. 개천가에 다다라 자전거 도로로 진입하면 페달을 힘껏 밟아 속도를 낸다. 실바람이 코에 감기면서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는 이파리까지 다 보인다. 매년 보는 봄 날씨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사실 날씨가 내게 주는 느낌을 글로 쓰면 참 밋밋하고 재미없다. 내 글솜씨가 형편없어서 그 느낌 그대로를 담아낼 수 없다. 하지만 무엇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대답을 얻을 수 없는 대상도 있는 법이다. 내게 있어 날씨의 변화와 자연의 감각이야말로 형언 불가능한 기쁨이다. 마음이 들떠 문장을 적어나가다가도 어느 순간 글에 힘이 잔뜩 들어간 게 느껴져서 다시 지우고 만다. 단어를 고르는 중에 녹색 광선이 텍스트 바깥으로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


 자전거를 타면 유독 생각이 많아진다. 대체로 회상에 잠겨 무작위로 필름을 영사한다. 난 병적으로 회한이 많은지라 기억을 곧이곧대로 놔두질 못한다. 시간을 돌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상상한다. 내가 붙들고 싶은 과거의 어느 한순간을 재생시켜서 맘대로 각색한다. 밑도 끝도 없는 쪽대본을 들고 슬레이트를 치며 컷을 외치는 꼴이다. 상상 속의 나는 조금 더 잘생겼고, 조금 더 사려 깊다. 내가 저지른 얼토당토않은 실수를 더는 반복하지 않는다. 시간이 다 지나서야 깨닫게 된 걸 미리 알아채고는 혼자 멋진 척을 하고 사라져 버린다. 정말 이런 엔딩이라면 속 끓이는 일 없이 잘 먹고 잘 수 있을 텐데. 내게 타임리프 능력이 있다면 정말 잘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미련투성이를 붙들고 살다 보니 난 평생 과거에 붙들려 살았다. 남들이 다 현실주의자가 되라느니, 미래를 위해 전진하라고 공익광고처럼 입바른 충고를 늘어놔도 턱을 괴고 추억에 잠겼다. 후회는 여진이 길어서 벗어날 재간이 없었다. 기억은 넋두리에 불과해서 왜곡하고 미화시키기 수월했다. 그래서 회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실주의 소설이 아닌, 감상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수필에 가깝다. 보통 이런 식이다. 난 왜 그때 우둔하게 그를 놓쳤을까. 그때 전화를 하지 않았으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그때 그냥 가는 게 아니었는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길거리를 걷는 행인들이 조연 배우처럼 보인다. 내가 걷는 길이 고생고생 끝에 찾아낸 로케이션 장소처럼 느껴진다. 난 일인칭 단수로 적힌 대본을 들고 주인공처럼 희비극을 연기하는 셈이다.


 난 술자리에 과거를 떠벌리고 다녔다. 거의 최수종이 갑옷 입고 나오는 50부작 대하드라마처럼 길고 지루하게 떠벌였다. 친구들이 귓속말하며 하나둘 자리를 떠도 지치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해서도 백지에다 신세타령을 쏟아냈다. 하지만 기억은 어찌나 힘이 센지 내 필력으론 어림도 없었다. 기억에서는 힘들이지 않고 모든 연상이 시공간을 넘나드는데 내가 쓴 글은 항상 시제가 불분명하고 핍진성이 떨어졌다. 마치 의욕만 앞선 영화학도처럼 기교는 난무하지만, 알맹인 없는 글이었다. 카메라를 부감으로 빼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장중한 음악을 깔아도 극적 효과는커녕 진짜와는 점점 더 멀어졌다. 흔해빠진 전형성을 경멸하면서도 인위적인 문장 없이는 글에 구두점을 찍을 수 없었다. 회상과 글은 엄연히 다르기에 점점 더 답답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기억을 털어내서 글로 써왔다. 연상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도록 하기 위해 애썼다. 글을 쓰면서 점차 내 과거지향적인 성향도 인정하게 됐다. 내가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매일 스타벅스에서 죽치 지도 않았을 거고, 그럼 그 돈을 아껴서 적금을 더 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쓸 수는 없었을 거다. 후회 없는 삶이라고 자부하며 공원을 걸어 다녔겠지만, 사색에 잠겨 엉뚱한 길로 빠지지는 못했을 거다. 작가로 살기 시작한 이후로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게 축복처럼 느껴진다. 매일 밤 나를 들볶더라도 기억을 팔아서 쓸 수 있으니 다행이다. 뭐든 잘 쓰기만 하면 더할 나위가 없다.


 여태까지의 삶을 펼쳐보고, 깊게 파인 자국들을 다 옮겨 적었다. 예기치 않게 비참한 순간에 몰렸던 경험도 글로 써놓고 보면 나쁘지 않았다. 날씨가 좋으면 평화로운 공원에 대해 적었고, 고요한 밤엔 되려 시끌벅적했던 밤을 세세하게 풀어냈다. 무엇보다 여러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지워지지 않는 얼굴과 이름이 있다. 미련 없이 잘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눌러앉은 얼굴에 관해 쓰면 행복해졌다. 그는 내가 단순하게 살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준 사람이었다. 그는 잊을만하면 나타나서 내가 마냥 속 편하게 희희낙락 거리지만은 않았다고 말해줬다. 여기에 오기까지 꽤 수고했다며 환히 웃어줬다. 그건 내가 글을 쓰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블로그에 수백 개의 글을 올리면서도 가족에 관한 글은 드물었다. 내 기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가족들을 외면했다. 다른 음습하고 누추한 일화는 용기 내서 적을 수 있었는데 가족을 언급하는 건 쉽지 않았다. 내가 올리는 글을 가족들이 본다는 걸 알고 있다. 아버지의 휴대폰에 깔린 브런치 앱도 봤다. 독자는 형체가 없지만, 가족은 엄연하니 쑥스럽다. 그런데도 어린 시절에 관해 적고 싶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부모님에 관해 적었다. 나의 본령이자 정신의 소산인 그분들이 내게 준 것들을 상기했다. 가령 내가 생애 첫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추억은 엄마의 땀 냄새다. 어렴풋하지만 그 쿰쿰한 냄새가 떠오른다. 눈보다는 귀가 더 열려있던 영유아기 때가 아닌가 싶다. 처음엔 내가 어머니의 온기를 기억할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친구가 엄마의 자궁 안에 누워있던 것까지 기억한다는 걸 듣고 나도 내 첫 기억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아버지에 관한 첫 기억은 자전거 뒷좌석에서 허리를 꼭 붙들고 겁에 질렸던 게 생각난다. 적어도 네 살은 됐을 때였는데, 그땐 자전거가 그렇게 무서웠다. 자전거가 덜컹거릴 때 엉덩이에 느껴지는 충격과 설렘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난 고개를 젖히고 아파트 단지를 빙빙 돌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걸 지켜봤다. 내리막길에 가속을 주체하지 못해 당황한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렸다. 당시를 떠올리면 그때가 순탄치만은 않았던 우리 가족의 화양연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창가에서 저녁이 다 됐다고 들어오라던 어머니의 외침이 꽤 청량했기 때문이다. 지금과 달리 기운이 넘치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립다. 


 인생에 있어서 첫 시작을 무엇으로 기억하느냐는 그 사람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초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진위와는 상관이 없다. 그 사람이 생의 첫 시작을 무엇을 명명했는지가 중요하다. 인생이라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작가로서 첫 문단을 선택할 때 그의 야심이 드러난다. <모비딕>의 첫 문장은 "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라."이다. 그는 자신을 명명하며 그 긴 이야기를 펼쳐냈다. 카프카는 한 남자를 난데없이 벌레로 만들고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땀내와 아버지의 등판을 시작으로 정했다. 그리고 지난주 아버지와 산행을 하면서 그의 다리가 꽤 얇아진 걸 목격했다. 그 두껍고 튼튼하던 대퇴부가 다 어디로 갔는지 바지가 헐렁해졌다. 조금 슬프지만 그건 아버지의 인생사가 이제 그 힘들었던 위기와 절정을 지나 결말로 치닫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건 내가 손 쓸 수 없는 거대한 순환이자 가슴 언저리가 찔끔해지는 아픔이지만, 그의 서사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내 이야기는 어디에 이르렀을까. 뻐근해진 목을 주무르며 나는 행을 바꾸고 글을 계속 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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