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박민진 May 09. 2021

정치적인 테니스

운동 <테니스>

 오늘은 어버이날인데 부모님 댁이 아니라 스타벅스에 앉아있다. 알리바이는 밀린 일이지만 난 한 시간째 허공을 훑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다. 내 핑계 없는 무덤은 어제 드린 용돈이 전부다. 예년 같으면 흰 봉투에 담아 직접 내밀었을 텐데 카톡만 삐죽 내밀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디지털 봉투엔 내 죄스러운 마음만큼 액수를 더 보탰다. 그럼 왜 이런 궁색한 마음을 방치하고 여기 머물까. 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불효를 감수하기로 했다면 뭔가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부모님의 다 이해한다는 카톡에 아무런 대답도 못 했다. 나도 날 이해할 수 없기에 겸연쩍은 이모티콘만 보냈다.


 오늘은 이상하게 졸음이 쏟아져서 독서를 못 했다. 평소와 달리 스타벅스에는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았다. 화기애애한 수다 소리를 백색 소음처럼 귀에서 웅웅댔다. 졸음을 쫓느라 양 뺨을 손바닥으로 치니 옆자리 학생이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눈도 흐리멍덩했다. 우린 '좀처럼 공부하긴 어려운 분위기다.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사이 낮이 기울고 따사로운 봄볕이 누그러져 있었다. 노을의 찬란한 향연이 스타벅스 실내를 가득 채웠다. 늘 보던 카페가 일류 건축가가 만든 공간처럼 멋스러워 보였다. 안국역 근처에 자주 가던 카페와 아지트가 그리워졌다. 저 창으로 보이는 가로수길과 넓게 펼쳐진 하늘을 비추는 구도 하며 여러모로 완전한 순간이었다. 십 분 정도 지나면 더 농밀하게 달궈진 노을빛이 쏟아질 것이다. 에어팟으로 노이즈를 차단하고 빌 에번스의 <포트레이트 인 재즈> 앨범을 들으면서 한참 동안 창밖만 바라봤다. 바삐 스러져가는 황혼의 조짐이 내 심란함을 위로해줬다. 더는 노을을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카페를 나왔다. 분주히 걸어서 땀을 쭉 빼고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이렇게 어버이날도 끝나가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불효자는 여름휴가를 기약합니다.


 외출 전에 몸무게를 쟀더니 76까지 떨어졌다. 요즘엔 매일 밤 샤오미 체중계에 오르는데 한 근 덜어내기도 힘에 부친다. 그래도 오늘 퇴근하고 테니스를 열나게 쳐서 지방 함유량을 낮춘 모양이다. 쉽지 않은 랠리였다. 나름 우리 회사 박 페더러인데 상대는 윗분들이라 제대로 한 번 휘두르지도 못했다. 네트 위로 넘어오는 연두색 테니스공에 힘은 덜고 예우와 존경을 담아서 넘겼다. 상대가 아무리 세게 쳐도 나는 스펀지처럼 완충해서 살포시 받아냈다. 그의 포핸드 각도에다가 나 좀 잡아먹어 주세요, 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떨궈줬다. 지는 것도 자연스럽고 능숙해야 한다. 상사는 마치 자기가 라페엘 나달이라도 된 듯 체중을 싣고 힘차게 공을 넘겼다. 나는 표정 하나 구기지 않고 나자빠졌다. '오늘 컨디션 너무 좋으신데요? 따라갈 수가 없네요.' 내 너스레는 잘 먹혔는지 그는 힘 좀 내라고 날 격려했다. '빨리 집에나 갑시다.' 성질 같아선 그의 미간에 내 강력한 백핸드를 먹이고 싶었지만 내 근육은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 앞에선 파우더일 뿐이다. 목구멍이 포도청까지는 아니더라도 구치소나 파출소 정도는 되니까. 직장생활 13년 차 관록으로 다시 랠리를 시작했다. 어설픈 척 못 치는 척 안 배운 척. 어머니 아버지, 오늘 아들은 비 오는 클레이 코트에서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을 느꼈답니다. 랠리는 두 시간 넘게 이어졌다. '댁들은 오늘 편안하게 사무실에서 앉아 쉬었겠지만, 난 어제 새벽까지 글 쓰고 오늘 회의를 세 건이나 주재했다고.' 배가 너무 고파서 참을 수 없을 때쯤 마침내 끝이 났다.

 끝나고 메기 매운탕에 소주 한잔하자는 걸 뿌리치느라 애 좀 먹었다.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어버이날 핑계를 댔다. 지금 어머니가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하나뿐인 막내아들이 오길 코가 빠지라 기다리고 계신다고. 속으로는 매운탕은 사랑하지만 그걸 댁들과 머리 처박고 먹기 싫은 거라고 되뇌었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차로 바삐 걸어가는데 뒤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쟨 술 안 마셔. 우리 같은 노땅이랑 금요일 밤에 놀겠냐.' 그렇게 잘 알면 테니스 코트에 부르지도 말았어야지! 오늘 어깨운동 하는 날인데 하지도 못했잖아! 치미는 화를 누르고 자리를 떴다. 차에 오르자마자 구슬픈 발라드를 따라 불렀다. 당치 않은 이유로 부모님을 팔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한 번 더 술 먹자고 하면 나라까지 팔아먹을 생각이니, 제발 나 좀 부르지 마쇼.' 발작적으로 액셀을 밟고 4천 아르피엠을 찍고 달렸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단속 카메라를 보고 다시 속도를 줄였다. 요즘엔 어디서도 홧김에 말을 뱉기 어렵다. 내 화는 오직 헬스장에서 쇳덩이와 씨름할 때만 뿜어져 나온다. 사무실만 가면 바로 18도로 차갑게 식어버린다. 파티션 밑에 다소곳이 웅크린 나는 놀랄 것도 기쁠 것도 없는 미생이다. 늘 북유럽 날씨처럼 싸늘한 표정을 짓다가 기어이 칼퇴근을 감행한다.


 배가 너무 고파서 근처에 사는 친구를 불러 고기를 먹었다. 오래간만에 먹는 삼겹살이었다. 곧 멀리 떠날 친구와 정겨운 대화를 나누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외톨이인 나와 놀아주던 친구가 떠난다니 서글펐다. 그간 옆에 있어 줘서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뉘앙스를 전달했다. 노곤한 몸을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고 최근 우리에게 생겼던 일들을 하나하나 복기하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는 대화에 굶주려서 충동적으로 사람들에 관한 깜짝 놀랄 비밀을 털어놨다. 농담 반 진담 반 과장을 섞어서 어디까지나 믿기 어려운 얘기를 꺼냈다. 지난 몇 달간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식당에는 가족 단위 손님으로 가득했다. 다 좋은 아들 좋은 딸 노릇 하려고 사진도 찍고 맛있는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다시 마음이 쓰였다. 역시 집에 갔었어야 했나. 나는 친구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부모님 댁으로 내비게이션을 찍었다가 취소했다. 그냥 내 방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금세기에 효자 노릇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생각하느라 바쁘다는 말을 이해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내 맘.


 집에 도착하니 얼마 전부터 키우기 시작한 내 반려 식물 붓꽃이 발아한 게 보였다. 난 너무 놀라서 소리를 빽 질렀다. 어버이인 날 위한 효도인가. 옆에 있는 또 다른 화분도 곧 싹을 틔울 모양이다. '내가 너희들 밥 주려고 집에 안 간 거 알지?' 날 물을 흠뻑 적시며 새삼스럽게 내가 독거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간 내 마음에서 사라졌던 반려 식물에 감동해서 한동안 멍하니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샤워를 하고 난 전에 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 사람 기분이 작은 싹 하나에도 이렇게 바뀔 수 있다니. 오 놀라워라.


 샤워를 하고 다시 노트북을 켰다. 최근 홍대 작은 재즈바에서 연주하는 뮤지션을 조명하는 글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았다. 가난한 연주자로 이뤄진 작은 바에는 피아노와 몇몇 목관악기가 놓여있었다. 고료를 요구하기도 뭐할 만큼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역병으로 한동안 공연을 못 한 데다 소속 뮤지션은 죄다 투잡을 뛰며 간간이 먹고산다고 했다. '그러니까 홍보를 위해 '인간극장'식 글을 써야 한다는 거지.' 내가 그들을 어떻게 설명해낼 수 있을지 막막했다. 또 고료를 얼마나 받아야 할지도 잘 몰라서 거절을 놓으려고 했다. 근데 귀에서 울리는 '빌 에번스' 연주곡을 듣고 있자니 갑자기 마음이 돌변했다. 어버이날 집에도 안 가는 놈이 일이라도 해야지. 비밥처럼 즉흥성 넘치는 글은 어떨까.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덜컥 수락 메일을 보내버렸다.


 얼마 안 있어 재즈바에서 보내준 자료와 영상이 메일로 도착했다. 난 일류 연주자를 목표로 하루하루 바삐 사는 젊은 뮤지션들 모습을 구경했다. 큰 공연장에서 연주도 하고 음원도 내서 큰돈을 벌고픈 그들의 꿈을 응원하는 글을 적기 시작했다. 아니 일류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연주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에 관해 썼다.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예술가의 삶이 시시해지지 않도록 정성껏 문장을 꾸며냈다. 하지만 완성된 글을 읽어보니 가당치 않았다. '누가 누굴 평가하듯 쓴단 말인가.' 아침에 출근하고 점심에는 졸음을 참으며 뭔가를 만들어내는 가난한 예술가의 초상을 내가 이렇게 막 써도 괜찮은 걸까. 여기 이렇게 앉아서 내 맘대로 각색하는 건 누구 아이디어일까. 이건 상상인가 허구인가 거짓말인가. 값싼 동정심과 속 편한 낙관만 가득한 글이 의미가 있을까.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도통 원고에 자신이 없었다.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니 끝도 없었다. 작성 간에 어떤 터치도 안 하겠다는 청탁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애초에 이런 제안을 받는 게 아니었어.' 내 글 속에서 화사한 청춘이 사그라들고 있어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더 이어가지 못하고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차라리 로저 페더러의 우아한 백핸드에 대해서라면 잘 쓸 수 있는데.' 페더러와 스위스 융프라우의 붉은 노을 배경으로 랠리를 하는 단편 소설이라면 기막히게 적을 자신이 있다.


 잠이 오지 않아 폰으로 옛날 사진을 꺼내 봤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엔 동의할 수 없지만, 습관처럼 남겨진 옛 사진을 들춰본다. 손가락으로 쓱쓱 넘길 때마다 감상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그다지 그리운 것도 미련이 남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아련해진다. 사실 난 지난 연인 사진도 다 보관하고 있다. 난 왜 사람들이 과거 연인을 잊으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좋았었던 일도 많았을 텐데 그걸 부정하려 드는 건 또 뭔가 싶었다. 그게 현재 연인을 위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정말 맞는 걸까. 난 항상 숨김없이 내 과거를 밝혀왔다. 그게 싫어서 헤어지자고 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도 나에겐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내 과거는 핸드폰 속 사진첩에 있지만, 아직 글로 풀지 못한 감정의 응어리는 내 블로그 서랍 안에 담겨있다. 이걸 다 모아서 나만의 독특한 연애담을 쓰고 싶다. 흥미진진한 '알랭 드 보통'식 연애소설로 출간하고 싶다. 과거를 부정하기보단 누구나 알아줄 만한 한 잔의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널 만나서 기뻤고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진심으로 고맙다고 적을 생각이다.


 잠들기 전에 톡 창에 뜬 메시지 숫자를 읽지도 않고 지웠다. 대부분 볼 필요도 없는 허튼소리라. 아이고 어머니 메시지도 있네. 난 오늘 잘 챙겨 먹었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요즘 좋다고 어머니도 건강관리 잘하시라고 답장을 했다. 눈웃음치는 이모티콘에 안부를 담았다. 마지막 숫자가 지워지기 전에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다. 기대했던 연락이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종일 휴대전화기를 손에 쥔 기분마저 든다. 먼저 연락할 할 용기는 없고, 너무 오랜만에 온 메시지에 야속했다. 요즘 근황을 매개로 이어질 깊은 대화를 기대했다. 1이 지워지고 1을 생성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늦은 밤이 야속하고 불효자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귀에서는 빌 에번스가 고개를 처박은 채 담배를 꼬나물고 연주하는 마지막 트랙 <Like someone in love>가 흘러나왔다.

이전 04화 별생각 없이 힘껏 달리기로 해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기필코 운동하러 가야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