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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pr 13. 2021

따르릉따르릉 비켜나세요

운동 <자전거>

 요즘 주말에 따릉이를 탄다. 걸어가다가 내킬 때 주워 탈 수 있다는 게 좋다. 자전거를 소유하지 않으면서 경험에만 비용을 지불하는 공유자전거가 참 마음에 든다. 책은 어떻게든 사서 보는 내가 소유를 꺼리는 건 우스운 일이지만, 물건에도 책임을 질 필요가 있기에 뭔가를 늘리는 덴 늘 신중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내 부양의지가 충만한 데 비해 자전거는 확실히 그렇지 못하다. 과거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신문 1년 구독을 하고 자전거 한 대를 혜택으로 받았는데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타고 나가는 건 좋은데 세울 때 잠가줘야지 집에도 보금자리가 필요하니 애물단지였다. 특히 이사가 잦은 나로서는 차에도 들어가지 않는 걸 가지고 다닐 순 없었다. 그에 반해 공유자전거는 걷다가 지치면 타고, 내키면 바로 세울 수 있어서 사용이 용이하다. 부디 비용이 더는 올라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은 늘 걷던 최단 경로를 이탈해서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골목골목을 죄 누볐다. 몸으로 밀고 나가는 기분이 만족스러웠다. 학교 주변에 핀 봄꽃이 예뻤다. 종을 딸랑딸랑 울리면서 공원 아이들과 눈인사를 하며 포카리스웨트 광고를 흉내 냈다. 아이들 눈에는 내가 부모님이 주의를 단단히 주었을만한 낯선 아저씨겠지만, 난 발달치 못한 눈 주변 근육을 애써 구겨가며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이렇게 시커매도 너희에게는 결코 해코지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드려내려고 애썼다. 그렇게 자전거를 한참 타다가 한적한 카페에 세우고 내 몸에 가까운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봄 햇살을 즐겼다. 바야흐로 요즘 계절의 정점을 만끽하고 있다. 지금 이 날씨를 누려두지 못하면 일 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


 글을 좀 쓰다가 해가 질 즈음 나섰다. 나른함에 고개를 뒤로 젖히고 석양에 채색된 구름을 구경했다. 개천가에 다다라 자전거 도로로 진입하면서 페달을 힘껏 밟아 속도를 냈다. 부러 오르막길을 오르고 비탈에서 천천히 주행하면서 하체를 단련했다. 실바람이 코에 감기면서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는 이파리까지 다 보였다. 매년 보는 봄 날씨임에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산과 들에 가서 꽃과 나무 사진을 그렇게 찍어서 카톡 프로필에 찍어 올리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요즘에는 나도 불쑥 카메라를 꺼내 담으려고 든다. 날씨가 자아내는 느낌을 글로 쓰면 참 밋밋한데, 그건 내 필력이 형편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느낌 그대로를 담아낼 수 없는 게 날씨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뭐라고 말해지는 순간 이미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들이 있다. 아이폰은 찰칵하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녹생 광선을 이미지로 담아낸다. 말로 표현하길 원했던 감각을 영원히 유예시킨다. 이처럼 내게 있어서 날씨 변화와 자연 감각은 형언 불가능한 기쁨이다. 마음이 들떠 카페 창가에 앉아 묘사에 힘쓰다가도 어느 순간 힘이 잔뜩 들어간 게 느껴져서 다시 지우고야 마는 난공불락이다. 


 자전거를 타면 유독 생각이 많아진다. 대체로 회상에 잠겨 무작위로 필름을 영사한다. 난 병적으로 회한이 많은지라 기억을 곧이곧대로 놔두질 못한다. 시간을 돌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상상한다. 아마도 그게 백지 앞에서 어쩔 줄 모르면서도 계속 글을 쓰는 이유이리라. 이 역시 날씨에 관한 글처럼 요령부득이지만 고쳐쓸 때마다 조금씩 정확해지는 건 가능하다. 보통 내가 붙들고 싶은 과거 어느 한순간을 떠올리고 맘 내키는 대로 각색해서 현실에서 달음박질친다. 밑도 끝도 없는 쪽대본을 들고 슬레이트를 치며 컷을 외치는 꼴이지만 상상 속 나는 조금 더 잘생겼고, 조금 더 사려 깊어서 위안이 된다. 내가 저지른 얼토당토않은 실수를 더는 반복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된 걸 미리 알아채고는 혼자 멋진 척을 하고 사라질 수 있다. 정말 이런 엔딩이라면 속 끓이는 일 없이 잘 먹고 잘 수 있을 텐데. 내게 타임리프 능력이 없으니 오직 글로만이라도 회한에서 허우적대는 날 구해내는 것이다. 글로라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자전거 페달은 마치 필름처럼 내가 각색한 드라마를 재생시킨다. 그래서 자전거는 숨 가쁘게 타고나서도 전혀 힘들지가 않다. 기억에 불순물이 사라지고 개운해지니 오히려 상쾌한 마음만 든다. 


 난 평생 과거에 책잡혀 살았다. 남들이 다 현실주의자가 되라느니, 미래를 위해 전진하라고 공익광고처럼 입바른 충고를 늘어놔도 어쩔 수 없이 턱을 괴고 추억에 잠겼다. 후회는 여진이 길어서 벗어날 재간이 없다. 기억은 넋두리에 불과해서 왜곡하고 미화시키기 수월했다. 그래서 내게 회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즘이 아닌, 감상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감상주의에 가깝다. 보통 이런 식이다. 난 왜 그때 우둔하게 그를 놓쳤을까. 그때 전화를 하지 않았으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그때 그냥 가는 게 아니었는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길거리를 걷는 행인들이 죄다 조연 배우로 보인다. 내가 걷는 길이 고생고생 끝에 찾아낸 로케이션 장소처럼 느껴진다. 난 일인칭 단수로 적힌 대본을 들고 주인공의 희비극을 연기하는 셈이다. 이런 과거지향적인 성격이 어릴 때는 콤플렉스였지만 지금은 K드라마의 여파로 여기며 그러려니 한다.  


 이러니 난 어느 자리에서든 내 과거를 떠벌리고 다녔다. 내가 각색한 경험을 거의 최수종 배우가 한창때 갑옷 입고 나오는 50부작 대하드라마처럼 길고 지루하게 떠벌였다. 친구들이 수군거리다 하나둘 자리를 떠도 지치지 않았다. 성에 안 차면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해서도 잠들기 전에 백지에다 신세타령을 쏟아냈다. 하지만 기억은 어찌나 힘이 센지 내 필력으론 어림도 없었다. 기억에서는 힘들이지 않고 모든 연상이 시공간을 넘나드는데 내가 쓴 글은 항상 시제가 불분명하고 핍진성이 떨어졌다. 마치 의욕만 앞선 영화학도처럼 기교는 난무하지만, 알맹인 없는 글이었다. 카메라를 부감으로 빼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장중한 음악을 깔아도 극적 효과는커녕 진짜와는 점점 더 멀어졌다. 흔해빠진 전형성을 경멸하면서도 인위적인 문장 없이는 글에 구두점을 찍을 수 없었다. 회상과 글은 엄연히 다르기에 점점 더 답답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기억을 털어내서 글로 써왔다. 막연한 연상작용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도록 하기 위해 애썼다. 글을 쓰면서 점차 내 과거지향적인 성향도 인정하게 됐다. 내가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매일 스타벅스에서 죽치 지도 않았을 거고, 그럼 그 돈을 아껴서 적금을 더 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쓸 수는 없었을 거다. 후회 없는 삶이라고 자부하며 공원을 걸어 다녔겠지만, 사색에 잠겨 엉뚱한 길로 빠지지는 못했을 거다. 작가로 살기 시작한 이후로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게 축복처럼 느껴진다. 매일 밤 나를 들볶더라도 기억을 팔아서 쓸 수 있으니 다행이다. 뭐든 잘 쓰기만 하면 더할 나위가 없다. 


 여태까지 삶을 펼쳐보고, 깊게 파인 자국을 다 옮겨 적었다. 예기치 않게 비참한 순간에 몰렸던 경험도 글로 써놓고 보면 나쁘지 않았다. 날씨가 좋으면 평화로운 공원에 대해 적었고, 고요한 밤엔 되려 시끌벅적했던 밤을 세세하게 풀어냈다. 무엇보다 여러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지워지지 않는 얼굴과 이름이 있다. 미련 없이 잘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눌러앉은 얼굴에 관해 쓰면 행복해졌다. 그는 내가 단순하게 살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준 사람이었다. 그는 잊을만하면 나타나서 내가 마냥 속 편하게 희희낙락 거리지만은 않았다고 말해줬다. 여기에 오기까지 꽤 수고했다며 환히 웃어줬다. 그건 내가 글을 쓰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브런치에 수백 개 글을 올리면서도 가족에 관한 글은 드물었다. 내 기억 상당 부분을 차지한 가족을 외면했다. 다른 음습하고 누추한 일화는 용기 내서 적을 수 있었는데 가족을 언급하는 건 쉽지 않았다. 내가 올리는 글을 가족이 본다는 걸 알고 있다. 아버지 휴대폰에 깔린 브런치 앱도 봤다. 독자는 형체가 없지만, 가족은 엄연하니 쑥스럽다. 그런데도 어린 시절에 관해 적고 싶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부모님에 관해 적었다. 내 본령이자 정신의 소산인 그분이 내게 준 걸 상기했다. 가령 내가 생애 첫 기억으로 간직하는 게 엄마의 땀 냄새다. 어렴풋하지만 그 쿰쿰한 냄새가 떠오른다. 눈보다는 귀가 더 열려있던 영유아기 때가 아닌가 싶다. 처음엔 내가 어머니의 온기를 기억할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친구가 자궁 안에 누워있던 태아 시절까지 기억한다는 걸 듣고 나도 내 첫 기억이라고 우기기로 했다. 실감 나게 잘 쓰면 뭐든 진짜가 되는 법이다.  


 꼬맹이 시절 아버지에 관한 인상적인 기억은 자전거 뒷좌석에서 허리를 꼭 붙들고 겁에 질렸던 게 생각난다. 적어도 네 살은 됐을 때였는데, 그땐 자전거가 그렇게 무서웠다. 자전거가 덜컹거릴 때 엉덩이에 느껴지는 충격과 설렘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난 고개를 젖히고 아파트 단지를 빙빙 돌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걸 지켜봤다. 내리막길에 가속을 주체하지 못해 당황한 아버지 목소리도 들렸다. 당시를 떠올리면 그때가 순탄치만은 않았던 우리 가족의 화양연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창가에서 저녁이 다 됐다고 들어오라던 어머니의 외침이 꽤 청량했기 때문이다. 지금과 달리 기운이 넘치는 어머니 모습이 그립다. 


 인생에 있어서 첫 시작을 무엇으로 기억하느냐는 그 사람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초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진위와는 상관이 없다. 그 사람이 생의 첫 시작을 무엇을 명명했는지가 중요하다. 인생이라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작가로서 첫 문단을 선택할 때 작가의 야심이 드러난다. <모비딕> 첫 문장은 "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라."이다. 그는 자신을 명명하며 그 긴 이야기를 펼쳐냈다. 프란츠 카프카는 한 남자를 난데없이 벌레로 만들고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땀내와 아버지의 축축한 등판을 시작으로 정했다. 그리고 지난주 아버지와 산행을 하면서 그의 다리가 꽤 얇아진 걸 목격했다. 그 두껍고 튼튼하던 대퇴부가 다 어디로 갔는지 바지가 헐렁해졌다. 조금 슬프지만 그건 아버지의 인생사가 이제 그 힘들었던 위기와 절정을 지나 결말로 치닫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건 내가 손 쓸 수 없는 거대한 순환이자 가슴 언저리가 찔끔해지는 아픔이지만, 그의 서사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내 이야기는 어디에 이르렀을까. 뻐근해진 목을 주무르며 나는 행을 바꾸고 글을 계속 써 나갔다.


 자전거 페달을 한 시간 넘게 돌렸더니 허벅지가 뜨거워졌다. 한때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해서 이백 만원이 넘는 티타늄 소재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하던 때가 떠올랐다. 내 몸을 믿던 시절이었고, 허벅지는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몸이 부드럽게 대지를 굴러간다는 감각은 앞서 말한 대로 필름과 같이 삶을 재생시키는 행위와 같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도 된 듯 흐름을 역행하는 맛이 있다. 한강에서 양평, 여주, 문경, 동해안 그리고 도림천에서 북악스카이웨이까지 내 한창때가 있었다. 지금은 엉덩이에 탄력이 빠져서 안장에 오래 앉아있지도 못한다. 가끔 자전거를 주워 타고 도심을 누비기에도 버겁다. 물론 허벅지가 타는 듯한 통증은 수요일에 한 하체 운동의 여파다. 주말에 한 번 더 운동을 하러 가려고 했는데 게으름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후끈한 대퇴부와 함께 토요일이 무르익고 있었다. 내일은 약속 시간 전에 잠깐 공원 산책이나 하며 몸을 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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