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와 병어회
"복숭아 좋아하시는 분?"
딱딱한 복숭아를 누가 보내줬다며 먹으러 오겠냐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한여름날의 번개 모임이 성사되었다.
내 머릿속 여름 하면 무조건 수박이었는데 요즘에는 복숭아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새콤달콤한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 때의 기분이란. 왜 복숭아를 신선이 먹는 선과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초대해준 집주인이 잘 닦아 잘라내준 복숭아를 아삭아삭 먹는다. 달콤한 향과 단단한 과육이 후각과 미각을 모두 자극한다. 스파클링 와인 한 병을 금세 비워내자 한 달 반여 동안 스페인 일대에서 여행을 하고 온 집주인이 포르투갈에서 사 온 레드 와인을 따주었다. 잘 여문 향긋한 와인과 함께하니 이곳이 바로 무릉도원이다.
초대 받은 사람 하나는 매달 서는 아파트 장에서 닭강정을 사왔고, 나는 동네 단위의 맛집 정도는 되는 곳에서 톳김밥을 사와 함께 먹으며 금방 와인을 비워냈다. 다녀온 스페인 이야기며, 키우는 강아지들의 이야기,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 등등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그 사이 스파클링 와인에 화이트, 레드 와인은 착실히 비워져 갔다.
딩동. 초인종 소리가 갑자기 들리니 집주인이 밖으로 나간다. 어깨춤을 추며 들고 온 것은 오늘회에서 주문했다는 병어회. 병어회는 세꼬시로 먹는데, 즐길 수 있는 기간이 짧다고 한다. 여름인 지금 이때가 아니면 먹기 힘들다며 마침 오늘회에 있길래 주문했다고 설명하는 집주인의 얼굴은 싱글벙글 문자 그 자체였다. 병어회와 개불을 먹으며 내어준 사케도 한잔 홀짝거렸다. 병어회 세꼬시는 가시가 다소 센 편이라 세꼬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먹기 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회맛은 매우 좋았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끊기지 않고 계속 나오던 집주인의 복숭아는 우리가 더는 못 먹는다며 백기를 든 후에야 멈췄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 손에는 핑크색의 맑고 예쁜 복숭아가 담긴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다음 날 아침 물릴 정도로 먹었다 생각한 복숭아를 깨끗이 닦아 예쁘게 잘라먹었다. 맛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행복한 여름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