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를 기다리며

사는 맛 레시피(신호의맛)

by 달삣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내릴정류장을 놓쳐서 몇 정거장을 지나쳐 내렸다.


겨울 날씨치곤 햇볕이 따뜻하여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가다 보니 5차선 교차로 횡단보도 위에 서게 됐다.


차선이 복잡하여 횡단보도가 거미줄 같이 얽혀있는데 차들이 제 나름대로의 질서로 신호를 받고 달리 있었다.


타이어와 아스팔트의 마찰음이 시끄러웠고 '뿌와왕'하며 덤프트럭이 무서운 속도로 신호 차선을 빠져나간다. 차창과 햇볕이 눈에 반사되어 어지러웠다. 왜 그런지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눈부심 속에

김사인 시인의 귀가라는 시가 생각이 났다.


귀가

자동차 굉음 속


도시 고속도로 갓길을


누런 개 한 마리가 끝없이 따라 가고 있다.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말린 꼬리 밑으로 비치는 그의 붉은 항문


ㅡ김사인




차선이 많으니 횡단보도 많고 거미줄 같이 얽힌 횡단보도 마다 건널 사람들이 많은데 무들처럼 초록 신호를 기다리 서있다.


만약에 이 많은 차들이 신호를 지키지 않는다면 대형사고가 나겠지 신호를 잘못 보거나 '나는 괞쟎겠지 '하며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건넌다면

반드시 사난다. 하지만 신호는 왜 그리 길게 느껴지는지 낯선 이들과의 시선도 어색하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난다. 횡단보도가 있는데 그 옆으로 재미 삼아 찻길을 건너고 또 건너고 동생과 같이 건너 다니다가 아버지에게 걸렸다. 그날 정말 눈물 쏙 들어가게 혼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일이었다.


빨간불이 켜지면 건너서는 안된다. 달리는 차속에 치일 수 있다. 남의 신호를 보고 건너서도 안되고 꼭 내 앞의 신호를 보고 길이 열릴 때 걸어야 한다. 당연한 규칙이지만 안일한 생각으로 건널 때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삶도 그런 것 같다. 신호가 올 때 움직여야 한다. 난 괞쟎아 하며 무한 긍정으로 사는 것은 아닌 듯하다.


아프거나 실직을 하거나 이별등 사람에게 상처 받을 때는 인생의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조선시대 팔문장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 이산해

문장가와 친구 황응청의 대화에서도 느낄 수 있다.


임진왜란 직후 평해로 유배 간 이산해는 친구 황응청을 만난다.


황응청은 움직일 때와 가만히 있을 때를 말한다.


"무더운 여름날 좁은 방안에 있더라도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땀이 안나지... 만약에 참지 못하고 미친 듯이 달리며 시원한 정자를 찾았더라면 정자도 없을뿐더러 찾을 수도 없고 내 몸은 병들었을 것이네... 이것은 가만히 있는 힘으로 움직임을 이기는 것이네"

이산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이 외진 고을로 유배 온 것도 처지를 모르고 함부로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ㅡ한국 산문선 ㅡ



초록불이 켜지자

횡단보도 하얀 선의 피아노 건반처럼 보이고 신호등이 명랑한소리 소리를 내며 건 가게 소리를 내준다.'또르릉 또르릉'


매 순간 한 개의 신호를 준다. 신호는 맛있는 음식이거나 끌리는 책이나 영화로 시작될 수도 있다.


초록불과 빨간불이 교차하는


5차선 횡단보도앞


12월의 정오의 햇볕은 복사되어


횡단보도의 흰 막대 선에 안착된다.


사람들은 스텝이 엉키지 않게 제갈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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