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대디 대신 외벌이로
워킹대디의 삶은 어제부로 끝났다. 아내가 회사를 그만 두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아내는, 육아휴직에서 복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 승진 못하면, 회사를 그만 둘거야."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오늘 당장 회사를 그만둔다 해도 난 아무 말 하지 않을 거야.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했던 남편(당시는 남자친구였지만)이, 아내가 퇴사하는 결정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얘기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직도 아내와 나는 커리어를 바라보는 관점이 극과 극이라고 할 정도로 다르다. 대신에 아내가 내 커리어에 대해 (마음에 들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의 존중을 해 주듯이, 나도 아내가 그 회사에서 커리어를 이어가는 데 있어 내리는 결정을 지지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 회사가 멀다 보니 다섯 시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했고, 야근도 정말 많이 했다. 건강검진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승진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회사에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온 날, 아내는 나를 붇잡고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이미 1년 전부터 모든 이야기가 다 되어 있었지만, 막상 그만 두는 건 괴로웠을 것이다. 일단 괜찮다고, 아내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미안할 필요 없다고,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회사와의 인연이 여기까지인 거라고 생각하라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이야기했다.
직장인이 월급하고 때에 걸맞은 승진 아니면 뭘로 보상받겠나?
드라마 <미생>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대사 중 하나였다. 아직 때가 아니거나 내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승진을 못한다면, 회사를 그만 둘 이유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옆에서 내가 봐도 이번에는 그게 아닌 것 같아, 그만 두는 결정은 잘 한 것이라고 위로했다.
아내를 재우고, 새벽까지 혼자 일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회사를 다녔을 때, 퇴사는 그저 다음 단계를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만 두는 회사에서 함께 했던 좋은 분들과 함께 생활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았었지만, 아쉬움은 그게 다였던 것 같다.
하지만 아내는 지금의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15년 이상을 다녔다. 나처럼 길어봐야 3년 정도를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는 것과, 15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한 회사에서 1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는 건, 유치원 3년을 다니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도 다녀야 하는 시간이다. 15년이나 내렸던 뿌리를 한 순간에 드러내는 건, 분명히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자기 몸의 한 부분을 도려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려울 것이다. 회사를 나가지 않는 삶, 그건 감이 잘 잡히지 않을 거다. 물론 나 때문에 간접 경험은 했을 것이지만, 본인이 직접 경험하는 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그만두면 몇 달 동안은 일 걱정 하지 말고 푹 쉬라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할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말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워킹대디의 삶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일에 주력한다고 해도 그동안 육아를 전담한 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된 이상, 시간이 될 때 어린이집 등원 정도는 함께 준비할 것이다.
이제는 육아의 무게 대신 외벌이의 무게를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무게보다는, 아내가 내린 결정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