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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Sep 19. 2021

베를린의 연방의회 의사당과 한국문학 속의 비스마르크

1.

오래전부터 나라의 정치와 문화가 집약되어 융성했던 도시인 파리나 런던에 비해, 베를린은 그 발전이 훨씬 더뎠다. 독일은 19세기 말이 되도록 수많은 제후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제후국이 많았던 시절에는 그 숫자가 무려 3백 개가 넘었다. 1871년에서야 독일은 비로소 통일된 제국을 이루는데 그때 베를린이 독일의 수도가 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연방의회 의사당과 가까이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


독일은 통일을 이룬 직후 제국의 위엄을 과시하듯이 베를린 도시 한가운데 엄청나게 우람한 건물을 지어 놓는다. 지금의 연방의회 의사당이 바로 그것이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있는 그 의사당의 전체 모습은 거의 프로이센 시절 그대로의 모습이다. 


단 차이점은 제국의 권위를 상징하던 돔 지붕이 지금은 의사당 내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유리 돔으로 개조돼있다는 점이다. 현재 유리 돔은 관광객이 올라가 둘러보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바꿔 놓은 유리 돔은 예전의 건물이 가졌던 권위적인 느낌을 상대적으로 감쇄시킨다. 


연방의회 의사당  


1900년 준공된 베를린 돔 교회는 그 돔 때문에 교회임에도 아주 위풍당당하게 보인다. 여의도 우리 국회의사당도 권위를 드러내 보이고 싶었는지, 짝퉁 파르테논 신전 건물에다 베레모 씌우듯 돔을 올려놓았는데, 이 경우는 권위는커녕 다소 코믹하게 보인다.  


어떤 건축가는 우리 경복궁 앞에 있다 철거된 조선총독부 건물이, 이 독일의 연방의회 의사당 건물을 닮았다고 한다. 의사당 정면의 그리스 신전 식 건물과 유리 돔을 빼면 진짜 총독부 건물 같아 보이기는 한다. 실제 조선총독부와 서울역을 설계한 일본인 건축가가 이 연방의회 의사당을 설계한 독일 건축가의 제자라고 한다.  


의사당 건물 안쪽의 나치에 희생된 집시들의 추모 연못. 의사당 건물 상층부의 유리 돔이 살짝 보인다.(좌),  푸른색 돔 지붕의 베를린 돔 교회(우)


2.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사람들의 독일에 대한 선망이 대단했고 모든 것을 독일을 쫓아하려고 했는데 이는 아마도 독일이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비록 후발 국가였지만 아주 급속하게 강대국화를 이뤄나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독일의 그런 강대국화를 주도한 중심인물이 바로 군국주의적 색채가 아주 강한 프러시아 제국의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이다.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통일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이며, 이 장애를 제거하는 길은 군사적 행동밖에 없다고 본다. 그는 독일의 중대한 문제들은 국회에서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피와 철”로써 결판날 사안들이라 연설한다. 그래서 그는 의회가 국방예산을 거부하는데도 정부 측에 증세를 하도록 강하게 밀어붙이기도 한다. ‘철혈재상’은 이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또한 세계 최초의 노령연금을 만드는 등 나름 사회복지 정책에도 힘을 기울이는데, 사실 비스마르크의 안은 일흔 살 생일을 맞은 노동자들에게 연금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런 움직임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선동을 이왕이면 돈을 덜 들이고 막아내기 위해 계획된 것으로, 당시 그만큼 지긋한 나이를 지나서까지 오래 사는 독일인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3.

이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이미 개화기 당시 우리에게도 잘 알려졌고 아주 인기가 있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앞서 얘기한 <이태리 건국 삼걸전>과 같은 해인 1907년에 <비사맥전>이라는 전기소설이 출간됐다. 여기서 ‘비사맥’은 바로 ‘비스마르크’를 가차 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난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이 책은 개화기 당시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언젠가 강릉의 전통가옥 선교장을 찾은 적이 있는데 그 집의 서재인 열화당에 이 <비사맥전>이 비치돼 있는 것을 보았다. 개화기 당시 이 집주인도 이것을 읽어 봤다는 얘기가 아닌가? 비단 <비사맥전>뿐 아니라, 비스마르크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인 이인직의 <혈의루>(1906)에서도 중요한 국면에 등장한다.  


<혈의루>의 줄거리를 간단히 살펴본다면 1894년 청일전쟁의 평양성 전쟁터에서 고아가 된 어린 소녀 김옥련은 일본인 군의관에 입양되어 일본으로 건너간다. 옥련은 그곳서 소학교를 마치고 지내던 중, 일본을 둘러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조선인 청년 구완서를 만나 그와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난다. 


옥련은 미국의 여자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그곳 신문에 소개된다. 마침 딸을 잃었다 생각하고 미국 유람을 와있던 옥련의 아버지 김관일이 이 신문 기사를 발견하고 부녀간의 극적인 상봉을 한다. 작품의 마지막은 이들 부녀와 구완서 세 명이 화성돈(워싱턴)의 한 호텔에 모여 귀국해서 펼칠 자신들의 포부를 얘기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옥련이 조심스럽게 조선의 여자 교육에 힘쓰겠다고 밝히는데 비해, 구완서는 자못 격앙되어 자신은 “조선의 비사맥”이 되겠다고 한다. 웬 뜬금없이 비사맥!? 비스마르크가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던 독일을 통일해 강력한 연방 국가를 만들었듯이, 자신도 일본, 만주, 조선을 합하여 연방 국가를 만들어 나라를 부강케 하겠다는 것이다.  


구완서의 연방 국가란, 서양에 맞서 일본이 정점이 되어 동양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일본의 식민 이론에 동조하는 꼴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대동아공영’, ‘동양평화’, ‘아시아 연대론’을 외치는데 이 발언의 연원은 이리도 오래된 것이다.  


<혈의루>의 작가 이인직은 이후 이완용의 정치 비서가 되어 일본과 합병 조약을 맺는데 막후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해나간다. 통일된 독일 제국의 비스마르크는, 1864년 메이지 유신 이후 부국강병을 추진코자 하는 일본의 롤 모델이 될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이런 식으로 이상하게 전유되어 한국문학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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