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을 가보고 싶다고 말하면 엉뚱한 의심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해방 전 우리 소설 속에서 평양의 유적과 자연풍광의 아름다움은 아주 다반사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곳을 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돼버렸으니 가보고 싶은 마음은 더 굴뚝같다.
평양이 고향이기도 했던 김동인의 소설 <배따라기>(1921년)는, 이광수와 신소설과는 달리, 문학의 예술성을 추구하며 처음으로 단편소설의 미학을 구현코자 한 작품이다. 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무대가 삼월 삼질 봄날, 평양 대동강을 향해 나있는 모란봉 기슭이다.
이 날은 대동강에 첫 뱃놀이를 하는 날이다. 까맣게 내려다보이는 물 위에는, 결결이 반짝이는 물결을 푸른 놀잇배들이 타고 넘는다. 거기로부터 봄 향기에 취한 기생들의 노래와 함께 조선 아악의 느리고, 유창한, 그리고 또 애처로운 선율들이 날라 온다.
대동강에 흐르는 시커먼 봄물, 청류벽에 돋아나는 푸르른 풀! 동경 생활에 지쳐 고향에 돌아온 ‘나’는 평양의 봄에 취한다. 그때 기자묘 근처에서 어떤 사내가 부르는 유명한 서도창인 이별의 노래, ‘배따라기’가 들려온다.
‘나’가 이 배따라기 소리를 처음 들었던 건 망망한 황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영유의 어느 산에서다. 불덩이 같은 커다란 시뻘건 해가 남실남실 넘치는 바다에 빠질 듯 솟아오를 듯 춤을 추는 중, 가물가물한 먼바다로 떠나는 배에서 날라 오는 배따라기 소리를 들었다.
<배따라기>에 그려지는 평양 대동강과 낙조가 펼쳐진 영유는 지금은 북한 땅이니 그곳을 가볼 수 없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더 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라 불리는 주요한의 <불노리>(1919년) 역시 초파일날 대동강의 불꽃놀이와 뱃놀이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가 염상섭은 자신의 수필 <패성의 봄>(1929년)에서 평양의 봄이 단연코 아름답지만, 봄의 평양보다는 여름의 평양 역시 농후한 색채로 인심을 끈다고 했다. 대동강 능라도를 바라보고 연상을 해볼 제 암만해도 여름의 평양이 더한층 정취를 자아낼 것 같다고 했다.
서울 토박이인 염상섭은 밤기차를 타고 평양을 가곤 했나 보다. 이 차는 신새벽 평양에 떨어지는데, 그곳서 어복장국 한 그릇으로 배를 불리고 청류벽과 부벽루로 해 을밀대까지 오른다. 평양의 샤브샤브(?), 어복쟁반은 남한에서는 서울 을지로 남포면옥이 유명한가 보다.
이태준의 <패강랭>(1938년)은 중일전쟁의 발발과 함께 태평양 전쟁을 앞둔 시국 아래, 아름다웠던 평양이 쓸쓸히 변모해 가는 것을 안타깝게 그린다. 패강은 대동강의 옛 이름인데 제목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대동강 물이 차가워지는 늦가을이 배경이 된다.
소설가(현)은 친구 초대를 받고 평양을 방문한다. 현은 평양여인들의 명랑한 사투리를 사랑하고 그와 함께 여인들이 머리에 쓰고 다니던 흰 호접 같은 머릿수건과 장미처럼 한 송이 얹힌 댕기를 사랑했는데, 전시체제하 물자절약이라는 구실로 그것이 사라짐을 안타까워한다.
모란봉 을밀대에는 총에 창을 꽂아 든 병정이 비행장을 경계하며 서있고, 시뻘건 벽돌만으로 된 큰 분묘 같은 건물이 새로이 들어서서 이를 물어보니 경찰서라고 한다. 평양은 삭막해져 가고 있었다.
현의 친구 ‘김’은 실업가이자 평양의 부(府) 의원으로 일제 치하에서 출세의 길에 나선 자다. 현이 과거에 평양에 오면 그 친구가 능라도에서 어죽놀이를 차리곤 했는데 그때 따라 나왔던 기생 ‘영월’은 이번에도 자리를 같이 한다
현이 알았던 평양 기생 영월은 원래 손수건에 시를 써주고 장고와 ‘핏줄 일어선 목’으로 가사를 불러주던 여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류를 좇아 유성기를 틀어놓고 이에 맞춰 재즈 댄스를 춘다. 현은 술에 취하면서 부의원 친구와 시국문제로 시비가 붙는다.
술을 깨기 위해 현은 강가로 내려오는데 대동강에는 배 한 척 지나가지 않는다. 바람은 없으나 등골이 오싹해지는데 강가에 흩어진 나뭇잎들은 서릿발이 끼쳐 은종이처럼 번뜩인다. 현은 이를 보면서, “서리를 밟거든 그 뒤에 얼음이 올 것을 각오하라”는 주역의 말을 상기한다.
대동강 물이 차가워지면 곧 대동강 물이 얼 것이다. 이 장면만큼 일제 말의 암울한 앞날을 예고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장면이 더 암울하게 보이는 것은 ‘제일강산’ 평양의 풍광을 향한 작가의 애틋한 사랑이 있기에 더 그런 것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