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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Mar 21. 2021

11. 한풀이

온 동네가 나의 집

나는 이사의 달인이다. 타지에서 혼자 학교를 다니며 매 학기마다 이사를 다녔고 대학 동네에서도 이곳저곳에서 살았다. 방학 동안에도 일을 하기 위해 바쁘게 옮겨 다녔다.


어떻게 그런 기회가 있는 것을 알게 되어서 한 두 달 남의 대학교 기숙사에 입주하여 노원구에 살기도 하고, 동생이 살던 인천에 잠시 얹혀살기도 하고 메뚜기처럼 거처를 옮겨 다녔다.


그런 것에는 애초에 한 학기 단위로 집을 계약한 것도 있지만 보상심리로 비롯된, 나의 넘쳐나는 방랑벽도 한몫했다. 어차피 고정된 거처가 없으니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그 일이 어느 지역에서 벌어지든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내가 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한때는 자원활동을 한다고 종로 일대를 뻔질나게 드나들었으며, 교육을 듣는다고 마포를 내 집처럼 자주 방문하기도 했었고, 방화동에 있는 연구원에서 일을 하느라 서울 서쪽 끝자락에서 인천까지 횡단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사당동에서 함께 살게 되었던 룸메이트가 전에 살았던 구로의 오류동과 사촌동생이 있었던 동대문을 서울에 올라갈 때마다 염치 불구하고 방문하고는 했었다.


나는 서울의 작은 지선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노선을 다 돌아다녀 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좋아하는 노선도 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선은 7호선이었다. 가장 깔끔하고 내가 주로 다니는 구간에서는 출근 시간에 사람들이 덜 붐비는 노선이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 이사한 것만 벌써 10번이 훨씬 넘는다. 심지어 프랑스에서 교환학기를 보냈을 때도 지내던 기숙사가 건물 보수를 이유로 갑자기 공사를 하게 되어 의도치 않게 이사를 한번 했다. 10번까지만 세고 이제는 더 이상 이사하는 횟수를 세지 않고 있다. 


하도 이사를 다니다 보니 언제든지 떠날 것을 염두에 두고 간단하게 살았다. 4년 동안 혼자 살면서 만든 살림살이가 겨우 승용차 한 대에 다 들어갈 정도였다.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게 될 줄은 나조차 몰랐는데 그동안 떠나고 싶었지만 떠나지 못해 맺혔던 한을 원 없이 풀었다. 정착하지 못했지만 온 동네가 나의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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